[정신과 임상심리전문가의 정신장애 이야기 #10] 사회불안장애 part 1: 수줍음도 지나치면 병이다

in #kr-psychology6 years ago (edited)

알코올 사용 장애에 관한 글 이후 3주만에 올리는 정신장애 연재글입니다. 글을 연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님을 실감합니다. 꾸준히 연재하시는 스티미언들 정말 대단하십니다. 오늘은 사회불안장애를 다뤄 보고자 합니다.

임상심리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은 셀프 진단을 내려보곤 합니다. 자기가 DSM-5에서 어떤 장애에 가장 근접해 있을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데요. 저는 대학원 시절에 사회불안장애가 내 증상을 가장 잘 설명하지 않나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성격장애보단 불안이나 우울 같은 장애가 받아들이기 쉽죠. ㅋ

저는 지금은 제가 사회불안장애에 근접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은 성격장애 챕터를 사랑하죠. A군이나 B군보다는.. 사회불안장애의 가까운 사촌격인 회피성 성격장애라든지 성실함의 극단인 강박성 성격장애 등이 위치한 C군이 심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쉬운데, 저는 C군은 아닌 것 같고요. 각설하고. (쿨럭.)

사회불안장애는 동양보단 서양권에서 좀 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문화에 따른 차이보다 문화 내 차이가 더 크다고는 하지만 자기표현을 잘 하는 것이 미덕인 문화에서 수줍음이 지나치다는 것은 겸손이나 ‘자기를 내세우지 않음’을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에 비해 병리적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높죠. 오죽했으면 내향성을 지녔다는 것의 강점을 부각하는 책들이 아마존 같은 데서 베스트셀러로 오를까요(ex, 콰이어트. 언젠가 소개하겠습니다.)

사회불안장애는 쉽게 말하면 수줍음이 지나친 것입니다. 누구나 수줍음을 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일상적인 대인관계 상황에서조차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걱정하고 이로 인해 일상생활을 저해하는 수준의 신체적, 정서적, 행동적인 증상들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수줍음의 극단에 SAD가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100명 중 10명이 이 장애에 해당할 수 있다고 통계가 나와 있고, 한국에서는 제가 대학원 시절에 본 바로는 1000명 중 5명 정도가 SAD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차이가 확연하죠?

사회불안장애, 영어로는 Social Anxiety Disorder(이하 SAD)라고 하고 예전에는 Social Phobia라고도 불렸던 장애입니다. Phobia라는 단어에는 무언가를 극도로 무서워한다는 뜻이 내포돼 있는데요. 누구는 뱀을 누구는 새를 누구는 피를 누구는 높은 곳을 극도로 무서워하여 그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SAD를 지닌 사람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주시하게 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주시라고 쓰니 뭔가 어려운데, 남들이 나를 쳐다보게 되는 그런 상황에서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길가다가 옛 직장동료를 우연히 만나서 대화를 나눌 수 있겠죠. 직장동료와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SAD를 지닌 사람은 비교적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옛 동료와 그렇게 면대면으로 대화해야 하는 상황이 두렵게만 느껴집니다. 대화를 하더라도 불편감이 크죠. 그런 상황이 너무 불편하기 때문에 멀리서 옛 직장동료를 보게 되면 가던 길을 돌아가거나 마주치지 않게끔 다른 길로 피해갑니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죠. SAD를 지닌 사람은 그렇게 면대면 대화 상황뿐만 아니라 남들 앞에서 무언가 수행을 해야 하는 상황을 극도로 회피하려 합니다. 대학 수업이나 직장에서의 발표가 흔히들 드는 예고, 그렇게 어떤 목적이 있지 않은 상황도 가정해 볼 수 있습니다.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혼자 밥 먹는데 누가 나를 보겠습니까? 보통은 핸드폰 보면서 밥 먹거나 뭔가 자기 할 일을 하며 밥을 먹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SAD를 지닌 사람은 그런 상황에서조차 누군가 자신을 주시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행동이 어색해지게 됩니다. 이건 정신병에서의 관계사고와는 좀 다른 것인데요. SAD를 지닌 사람은 누군가 자신을 주시한다고 느끼지만 특정 누군가가 자신을 본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자신이 필요 이상으로 그 상황에서 남을 의식한다는 것에 대한 자각이 있습니다. 이게 정신병에서의 ‘관계사고’와 SAD에서 ‘주시 당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의 차이죠.

예를 하나 더 들 수 있습니다. 남자들은 화장실에서 서서 오줌을 누죠. SAD를 지닌 사람은 이런 상황도 매우 불편합니다. 옆에 있던 사람이 의식돼 나오려던 오줌도 들어갑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을 피하고자 애초에 변기로 가기 쉽죠.

주시 당하는 것을 피하고자 하는 마음에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것이라는 데 대한 공포(Fear of Negative Evalution: FNE)가 있습니다. SAD의 핵심적인 인지는 부정적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고, 실제로 SAD가 의심되는 경우 부정적 평가에 대한 두려움을 측정하는 자기보고식 질문지로 선별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 사람이 이렇게 부정적 평가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었는지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부모가 비판적이고 과잉 통제적인 성향을 지녔을 수도 있고, 그런 게 아니더라도 기질 자체가 위협회피적인 성향이 강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둘 모두의 결합일 수도 있고, 정상적인 발달 과정에 있었다 하더라도 왕따나 집단 따돌림 혹은 가랑비에 옷 젖는 듯한 은따 경험이 반복된 결과일 수 있습니다.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기억은 왜곡될 때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죠.

이것 때문에 SAD가 발병했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아무튼 FNE가 SAD의 핵심적 인지이자 SAD를 유지시키는 요인이라면 치료는 이 인지를 수정하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비디오피드백이든 인지재구성(cognitive restructuring)이든 뭐든 간에, 지금까지 SAD에 대한 인지행동치료(CBT)가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시키려 했던 것이 이 FNE라는 녀석이죠.

CBT가 약빨이 잘 받는 장애 중 하나가 SAD를 포함하는 불안증 계열입니다. 하지만 일전에 ACT 관련 글에서 언급하였듯이 CBT는 만병통치약이 아니고 약물치료 + CBT를 해도 잘 치료가 안 되는 SAD 환자들이 생기자 치료자들의 한숨이 깊어지게 됩니다. 어떻게 치료하는 게 도움이 될까 고심하다가 PTSD 환자들을 대상으로 사용되던 치료 기법인 심상재구성 및 정서재처리(Imagery Rescripting and Reprocessing Therapy: IRRT)을 차용해 오게 됩니다.

사실 히스테리, 지금으로 말하면 전환장애(Conversion Disorder)를 치료하기 위한 방법으로 Pierre Janet라는 사람이 백 년 전쯤 심상을 활용한 바 있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프로이트가 Pierre Janet의 최면과 히스테리 치료에 일부 영향을 받아 무의식이나 억압이라고 하는 인간 정신세계의 구조에 관한 경이로운 가설을 만들어내기도 했죠.) 하지만 치료에서 심상의 역할에 관한 과학적 검증 과정은 2000년대 이후에나 이뤄지게 됩니다. IRRT는 그 선구자격인 셈이죠.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음 글에서는 심상이 대체 무엇이고 FNE를 어떤 식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인지에 관해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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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에 속하는 환자들이 실상은 병인이 다 같진 않기에 결국 다른 치료의 기법들을 끌어올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론으로는 분류가 되지만 임상에서는 아주 골치가 아파지구요. 심상에 대한 부분은 몰라서 기대가 됩니다.

심상에 관해 모르셔도 치료 프로세스 들어보시면 그냥 상담에서 일반적으로 하고 있는 것들이라 금방 이해되실 거예요. 경험적으로 다들 하고 있던 것을 과학적 연구결과를 토대로 포장만 좀 다르게 한 것이죠.

인간이 결국 메타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기에 생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우리를 상상하면서 말이지요 :)

아주아주 중요한 부분을 짚어주셨습니다. 제가 qrwerq님 이 답글은 다음 글에서 꼭 인용을 하도록 하죠. ㅎ

이거 진짜 중요한 거네요. 인간의 뛰어난 능력이 심리적 장애의
씨앗이 된다는 점이 아이러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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