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끄기의 기술 1
몇 달 전 서점 매대 위에 놓여 있던 이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간 기억이 있습니다. 그만큼 흡입력이 있는 책이고, 무엇보다 인지행동치료의 제3물결이 강조하는 마음챙김과 가치/의미를 일상적인 용어로 알기 쉽게 풀어놓았다는 데 큰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인지행동치료(이하 CBT)는 생각, 행동, 감정이 밀접한 상호연관이 있다고 보는데, 이 중 생각에 주로 초점을 맞춥니다. 생각을 변화시켜서 감정과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려고 합니다.
생각의 세 가지 층위가 있는데, 기회가 되면 나중에 설명을 하도록 하고요. 가장 깊은 층을 보통 핵심 신념 혹은 핵심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우울한 사람의 핵심 신념을 하나 예로 들면, '이번 생은 망했고, 앞으로 나는 아무것도 이루어내지 못 할 것이다' 정도가 될 것입니다.
CBT는 한 인간이 지닌 이러한 비.합.리.적 신념 혹은 믿음이 이 사람을 그림자처럼 좇아 다니면서 삶을 나락으로 이끈다고 보기 때문에 이를 수정하는 데 주안점을 두게 됩니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는 것이 우울을 완화시킬까요? 네. CBT는 우울증, 불안증에 특히 효과가 좋고 다른 몇몇 정신장애에도 효과적인 치료라고 알려져 왔습니다.
하지만 CBT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죠. 모든 장애에 효과적인 것은 아닐 뿐더러 우울이나 불안증에서도 CBT가 안 통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약물치료에 CBT까지 병행하고 있음에도 재발이 잦은 환자 집단이 생기자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하나 치료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게 됩니다.
더욱이 CBT가 효과적일 때조차 치료자들은 사람의 생각을 변화시킨다는 게 쉽지 않은 일임을 절감합니다. 치료 효과 평가라는 것이 대개 내담자나 환자의 언어적 보고에 의존하게 돼 있는데, '난 이제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됐어요'라고 말할 수 있지만, 여전히 자신에 대해 혐오감을 지닌 채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인간이죠. 표면적으로는 개선을 보고하지만 퇴원한 지 얼마 안 돼 다시 재입원하는 경우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비합리적 핵심 신념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핵심 신념이 형성되기까지 수많은 강화 요인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번 생은 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실제로 인생에서 큰 좌절을 많이 경험했을 수 있습니다. 의욕적으로 무언가를 해보려 시도하려 할 때보다 이번 생은 망했다고 생각하면서 무기력하게 있을 때 주변의 관심과 지지를 더 많이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 세상, 미래에 관한 부정적 생각들이 처음엔 모래알 같았을지라도 자기 생각을 확증할 만한 경험을 몇 번 하게 되면 나중에는 반증 경험에 주의를 기울이기 어렵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된다는 것이죠. 이를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하는데요. 확증 편향이 지속되면 모래알 같던 생각들은 어느새 바위, 즉 핵심 신념으로 변하게 마련입니다. 핵심 신념의 비합리성을 논하기 어렵게 된다는 것이죠.
이런 이유로 CBT를 치료적 지향으로 삼는 치료자들은 성공만큼이나 좌절 경험에 빈번하게 처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 인지행동치료의 제3물결이라 일컬어지는 치료들입니다. 마음챙김에 근거한 스트레스 완화 프로그램(Mindfulness Based Stress Reduction: MBSR), 수용 및 전념 치료(Acceptance & Commitment Therapy: ACT) 등이 제3물결의 일부이죠. 이 두 치료 접근은 삶이란 고통이 디폴트라는 대전제를 공유합니다. 신경끄기의 기술을 쓴 마크 맨슨이 줄곧 주장하는 바이기도 하죠.
신경끄기의 기술이 어떤 식으로 인지행동치료의 제3물결과 관련성을 갖는지 다음 글에서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특히 ACT와의 연관성에 관해서요. ACT에 대한 설명은 @vimva님이 연재해 놓은 적이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습니다. 쭉 이어서 쓰고 싶지만 점심 시간은 너무 짧네요.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제목만 보고는 다른 자기 개발서와 같은 종류라고 생각했는데 제 판단이 틀렸네요.
꼭 한 번 읽어 봐야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예. 제목에 낚여서 무심코 읽었는데 최근 심리치료 트렌드의 핵심이랄 만한 것이 담겨 있습니다. 무엇보다 읽기 쉽고, 저자가 한 번 나락으로 떨어져 봤던 사람이라 그런지 몰라도 블랙유머랄까? 위트가 있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보팅 팔로우하구 가요! 자주 놀러오겠습니다~_~
감사합니다.
꾸욱 들렸다가요
감사합니다.
slowdive14님, 이런 책만 계속 읽어시면 정말 힘드시겠어요. 산에도 좀 다니세요.
그러게요. 백대명산 누비고 다니던 사람이 육아살림서포터모드로 산에 못 가게 되니 꽤 힘듭니다. good21님 글 보며 대리만족이라도 해야죠. ㅜ
Excellent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