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일기 #3. 바보 집사라 미안해

in #kr-pet6 years ago (edited)

지난주 수요일, 해변에서 사진을 찍고 집에 돌아 왔을 때, 거실 군데 군데에서 토한 흔적을 보았다. 식탐 많은 둘째가 과식하고 토한 것이라 여겨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목요일 새벽, 첫째 고양이가 나를 밟아서 깨웠다. 배가 고파도 내가 일어날 때 까지 옆에 앉아 묵묵히 쳐다만 보는 아이라 이상했지만, 그 날 따라 너무 피곤해서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토하는 소리에 일어났다. 그 때 까지만 해도 심각성을 몰랐다. 갑자기 첫째가 방바닥에 오줌을 누고서야, 핏물이 보여 정신이 들었다. 자세를 봐서는 변비인 것 같은데 피가 흘러 아침부터 동물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는 억지로 꺼낸 피묻은 변을 검사하고 X-Ray를 찍더니 "장난감 쥐를 먹은 것 같다"며 나를 놀래켰다. 하얗게 질렸는지 "Don't panic"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어떤 엄마가 진정하겠니?

의사는 일단 관장, 수액 공급, 심할 경우 조영 엑스레이 검사가 필요하다며 하루 동안의 입원을 요구했다. 그리고 우리는 의사가 말한 인형이 집에 있는지 확인하러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인형은 집에 있었다. 병원에 전화로 알린 후, 하루종일 안절부절 못 하다가, 첫째가 좋아하는 참치 파우치를 갖다 준다는 핑계로 병원에 들렀다. 간호사가 얘기하길 다행히 장 중첩은 아니라며 장염과 변비가 있어 소염제와 락툴로오스를 급여 했고, 조영 X-ray는 스트레스를 가중 시킬까봐 일단 연기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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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보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던 우리 예쁜이. 처음엔 관장 하느라 사용한 진정제 때문이라고 했지만, 몇시간 후 진정효과가 풀렸을 시간에도 여전했다.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았다. 집에 데리고 오고 싶었지만 담당 의사는 퇴근 한 후였고, 심지어 금요일엔 비번이라 우리 애는 적어도 토요일 아침이 되어야 퇴원이 가능하다고 했다. 마침 1월에 발가락 수술을 맡았던 의사가 당직이어서 그 의사에게 요청했지만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뻔한 대답만 돌아왔다.

다음날은 이 곳의 휴일인 금요일이라, 아침, 점심, 저녁에 한시간씩 들렀다. 다행히 방문객도 많지 않아 눈치 볼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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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전 날 보단 훨씬 나았지만, 모두를 경계한다. 아침엔 마치 모르는 사람인 것 처럼 경계 하더니 점심때쯤 되어서야 내밀었던 손을 베고 누워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차트를 보니, 음식을 전혀 먹지 않고 있었다. 아무래도 낯선 환경, 전 날의 검사 및 치료, 주변 소음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서인 것 같았지만 역시 집으로 데려올 수가 없었다.

혈변, 장염, 스트레스.. 며칠 전 찍은 사진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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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백신 접종을 위해 일주일 전 들린 병원에서, 계속 핥아서 진물이 난 다리의 상처를 보며 소염제를 사용하자고 했다. 12월과 1월에 있었던 발가락 수술 때문에 이미 항생제도 많이 복용했던 터라 왠지 꺼려져서 괜찮은가 물어봤더니 그럼 그 대신 고깔을 씌우자고 했다.

의사가 얘기한거니 괜찮겠지 싶었는데 아니었나보다. 슬픈 표정의 첫째를 보면서도 렌즈 초점을 어디에 맞춰야 할지에만 고민했던 내가 미웠다.

그러고 보면 한국에선 수술 부위가 넓은 유선 종양 수술 후에도 고깔을 씌우지 않았다. 그냥 지켜보면서 핥지 못하게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그리고, 병원에 머무는 자체가 스트레스라며 마취가 풀리자 마자 집으로 보내 주셨다. 아부다비로 데려 오느라 이것 저것 검사가 필요했을 때에도 왠만한건 한 번에 처리하시곤 그 다음 부턴 나만 오라고 하셨다. 이제와 돌이켜 보면 한국에 있을 땐 운이 좋게도 고양이 입장을 먼저 생각해주는 좋은 의사 선생님들을 만났던 것 같다.

결국 토요일 오픈 시간 부터 기다려서 담당의사를 만나고 첫째를 데려왔다. 3일간 그 곳에서 아무 것도 먹지 않아 병원에서도 별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장이 약간 커졌다는 말과 함께 집에서 먹일 락툴로오스 시럽을 챙겨 주고, 목요일 예약을 잡은 후 집에 돌아왔다. 집에 온 후에는 피곤했는지 잠만 자고, 저녁이 되어서야 죽처럼 생긴 간식에 입을 댔다.

오늘은 수요일. 유투브를 보고 배마사지, 등마사지를 따라 했지만 아직 건강한 맛동산은 감감 무소식이다. 그간 뭘 먹는지, 화장실은 가는지, 토를 하진 않는지 24/7 내내 지켜보느라 나까지 예민하고 우울해졌다. (잘 때 옆에 자서 첫째가 깨면 나도 자동으로 눈이 떠지는 신기한 현상을 경험 중이다.) 그간 알아낸 것은, 더 이상 기존에 급여하던 사료와 참치 파우치는 먹지 않는다는 것. 그것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하나 보다. 씹을 살코기가 많은 참치도 부담스러워 하는 것. 그래서 참치캔을 갈아서 먹이고 있다. 아주 극소량의 묽은 변을 흘리긴 했지만, 인풋 대비 아웃풋이 너무 적어 걱정이다. 그나마 가끔 만져보는 귀의 온도가 높지 않고, 더이상 토를 하지 않아 위안으로 삼고 있다.

내일은 의사와 약속한 대로 병원에 데리고 가야한다. 사실 화장실에 못 가는 문제로 병원에 당장 가야할지 계속 고민 했으나, 월요일 저녁에서야 맘을 편하게 가지고 제대로 밥을 먹기 시작해서 꾹 참고 있었다. 내일 만나면 조영 X-ray를 찍자고 할까봐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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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낮에 찍은 사진. 팔 베고 고롱고롱 자는거 보면 건강한 고양이 같은데, 어서 빨리 맛동산 공장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인이 추천해서 고양이 스트레스 완화제인 Feliway를 주문 했는데 4월에야 배송 될 예정이다. 한국의 빠른 배송 시스템이 그립다.

첫째가 다리를 터는 행동이 갑자기 눈에 밟혀 검색을 해보았더니 '과잉 감각 증후군'이라는 얘기가 있다. 심지어 다리를 핥다가 깜짝 놀라며 갑자기 뛰어간다던지, 한 곳을 심하게 핥아 상처가 난다던지 하는 증상마저 일치한다. 그리고 그 원인은 스트레스일 것이라는 얘기가 쓰여있다. 그런 아이에게 스트레스 해소는 커녕 고깔을 씌워 스트레스를 가중 시켰다니, 바보같기 그지없다.


우왕 ㅠㅠ 드디어 첫째가 6일만에 그 어려운걸 해냈습니다!!!!!!!!!! 오늘은 축배의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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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과 1월에 있었던 발가락 수술 때문에 이미 항생제도 많이 복용했던 터라 왠지 꺼려져서 괜찮은가 물어봤더니 그럼 그 대신 고깔을 씌우자고 했다.

항생제로 체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까칠한 성격을 보유하신 첫째가 저걸 뒤집어 씌워났으니 극심한 스트레스로 장에 바이러스... 장염... 그리고 혈변...

맛동산은 크게 걱정할게 아니라고 보입니다.
많이 먹고 안나오면 문제겠지만..
조금먹고 안나오는건 그만큼 에너지를 회복하는데 쓰고 있다고 보셔도 될듯 하네요.

지지배~ 쫌.. 엄마가 걱정하니 이제 그만 툴툴 털고 일어나시지??

ㅜ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맘이 한결 편하네요. 평소엔 저녁부터 절 따라 다니는 편인데 요샌 거의 박스에 들어가서 쉬는걸 보며.. 아직 많이 아픈가 걱정만 할 뿐 에너지 회복이 덜 되었다고는 생각을 못했어요. 7년차 집사가 이렇게 서투르답니다 ㅠㅠ

이제 스트레스 받은게 조금 풀렸다는 겁니다..
그러니 왠만하면 내일 병원보다는 하루이틀 더있다가 가보시는게 좋을듯한데..

그래도 전문가에게 물어보시고...

으아아아아!! 안 그래도 금방 의사랑 통화하고 담주 수욜로 미뤘어요. 감사합니다 ㅠㅠ

누가보면... 내가 수의사인줄 알것네요 ㅠㅠ;

ㅋㅋㅋ 저와 페니에게 마음의 평화를 선사해주심.

이젠.... 수의사를 넘어... 사이비종교 교주를 만드시는 ㅠㅠ;

사이비종교 교주 흡혈귀

저는 캐나다에서 강아지와 같이 삽니다. 첫째가 치료를 잘 받아서 아픔을 딛고 곧 완쾌되길 바랍니다. 팔로우 합니다. 화이팅.

감사합니다!! 금방 드디어 해내어서 ㅜㅜ 내일 병원에서 확인하고 딱 끝냈음 좋겠어요.

에구구구,,,,냥이의 기운없는 눈빛이 너무 안타까워요 맘이아프네요ㅜㅜ
동물들이 밥만 안먹어도 진짜 맘 아프자나요..ㅠ

네 ㅠㅠ 게다가 고양이는 3일만 굶어도 지방간이 온다고 들어서 밥 거절할 때 마다 넘 우울해졌었어요. 그래도 금방 한번 해내서 으아아 넘 좋아요.

고깔 사진을 보니 너무 안쓰럽네요.. 그저 미안한 집사 마음이 이해가 갑니다 ㅠㅠ
해내었다니 너무 다행입니다 ㅎㅎ 앞으로는 건강하길 바랄께요! (팔로우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스트레스 덜 주도록 좀 더 신경쓰려고 해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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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저 조그마한 녀석이 얼마나 아프고 답답했을까요ㅠㅠ제가 다 마음이 아프네요ㅠㅠ그래도 리얼써니님이 정성껏 돌봐준 덕분에 나아졌다고 하니 다행이예요..!!이 녀석ㅠㅠ이제 아프지 말고 건강하거라ㅠㅠ

일주일 내내 집 분위기가 우울 했는데, 어제 저녁부터 급 밝아졌어요.
식욕이 왕성한 둘째도 요 며칠 동안 뭔가 이상한걸 알았는지, 잘 안 먹었거든요.. 어제 첫째가 회복하고 뛰어 다니니깐 그 때부터 둘째도 계속 밥먹으러 가더라구요. ㅋ
오늘 아침에도 다들 왔다 갔다 하는게 정말 행복한 하루예요. 저랑 남편도 계속 입이 :D 이렇게 ㅋㅋㅋ

많이 걱정 되셨겠네요.ㅠㅠ 냥이 빨리 나야할텐데요.ㅠㅠ

ㅠㅠ 감사합니다. 금방 참치 먹다말고 드디어 해냈어요 ㅠㅠ 완전 감동입니다.

스트레스가 참 무섭습니다 ㅠㅠ 특히 동물들은 말도 못하니 더하겠지요...
보팅 주사위 당첨 되셨습니다.
tip! 0.104

ㅠㅠ 네. 말이 안 통하니깐 뭘 원하는지 알기 힘들어서.. 애기는 시간이 지나면 말이라도 할 텐데, 동물은 시간이 지나도 대화는 안되는 반면, 아플 일이 많아져서 힘든 것 같아요.
얼른 스트레스 해소된다는 Feliway가 왔으면 좋겠어요. :)
길냥이들 밥줘서 정원에 오는 것도 첫째가 싫어하긴 해서 대문 앞에 줄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동네 고양이들 다 몰려 올까봐 좀 주저하고 있어요.

얼른 완쾌했으면 좋겠네요.
글에서 절절함이 묻어나서 참 저도 안쓰럽네요.

함께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 글 쓰고 한 3시간 쯤 지난 후에 드디어!! 바라던 그것이 나왔습니다. ㅠ_ ㅠ 기분이 정말 완전 좋아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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