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실패한 직장인이다 | 6 끝도 없는 불이익 학력차별

in #kr-pen6 years ago

1번째 회사 : 개발 엔지니어링
2번째 회사 : 디지털 도어록
3번째 회사 : 의료 미용기기
4번째 회사 : 버스용 통합 계수기
5번째 회사 : 개발 엔지니어링

억울함을 뒤로하고 저는 실업자 되자마자 바로 새 회사에 들어갑니다. 사장이 신실한 기독교인에, 독서광에 저를 평소에 탐내던 분이셨습니다. 반드시 직원으로 데리고 올 거라고 하셨던 분인데, 실업자 되자마자 데리고 갔습니다. 직급도 사장 바로 밑인 책임자급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뻐할 수가 없었습니다. 상장회사에 들어갈 수 있는 인생 일대의 기회를 놓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옵니다. E 회사 연구소 기구설계 책임자라며 전화를 한 겁니다. 반드시 저를 데리고 오라고 했는데 왜 정리해고 대상에 포함됐는지 모르겠다며 이력서를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전 연구소장이 뺀 것 같다고 말하자 '아, 그분은 입사하자마자 바로 퇴사했다. 회사에 없다.'라고 하더군요. 바로 채용될 테니 이력서부터 넣고 기다리라고 해서 이력서를 보냈습니다. 한 주가 지난 후에 연락이 왔는데요, 최종학력이 고졸 맞냐고 묻더군요. 맞다고 했더니, 연구소장(E 회사의 연구소장)이 입사를 거부했다고 하더군요. 연구소에 고졸을 들일 순 없다며, 버스용 통합 계수기 개발하는데 ㅇㅇ이가 꼭 필요하냐고 다른 사람 채용하라고 했답니다. 아~~~ 뭐 이런...

정말 제 평생을 따라다닐 끝도 없는 학력차별. 억울함을 넘어 이제 분노로 변하더군요.

제가 앞에 말씀드렸듯이 이 통합 계수기는 세계 최초였습니다. 버스에 달아놓고 테스트해본 사람은 세계에서 저 하나뿐입니다. 당연히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아는 사람도 저 뿐이었습니다. 게다가 서울시도 인천시도 수원시도 계수기를 버스에 다시 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즉, 저 없이 샘플을 만든다고 해도 테스트를 해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테스트를 해본 유일한 사람은 저 뿐이었습니다. 저만 문제점들을 알고 있었고, 저만 경험자였습니다. 물론 제가 없어도 개발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개발비와 개발기간을 줄일 최선의 선택인 저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구 책임자는 저를 필요로 했던 것이죠. 하지만 학력 때문에 연구소장이 채용을 거부하고 저는 입사에 두 번이나 실패합니다.

5번째 회사에선 책임자로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새 제품도 개발하고 사장과도 잘 지냈죠. 하지만 개발 엔지니어링 업종이 죽어가는 시기였고 제가 근무하는 회사에도 일이 떨어집니다. 겨우 몇 개월 만에요. 저는 일이 없어 노는 기간이 길어집니다. 그러던 중 E 회사에서 다시 연락이 옵니다. 그러니까 10여개월 만이었던 것 같습니다. 개발을 외주 용역을 줬는데 조립도 안 되고 동작도 안 한다고 와서 조언 좀 해달라는 연락이었습니다. 저는 안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구 책임자가 하도 부탁을 했고,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길래 조립도 안 되고 동작도 안 되는지 궁금해서 가봤습니다. 기구 책임자는 저를 보자마자 살려달라고 하더군요. 제발 도와달라고요. 개발을 외주로 줬더니 6개월 만에 샘플을 만들어 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립도 안 됐다고 하네요. 용역비는 6천이나 줬지만 결과는 실패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재설계 해서 샘플 다시 해오라고 했더니 두 달 더 해야 한다며 2천을 더 주면 하고 안 주면 못하겠다고 나오더랍니다. 그래서 2천을 더 줬고 재설계를 해서 두 번째 샘플을 만들어 왔는데, 이번엔 조립은 되더랍니다. 물론 동작은 안 되고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저를 부른 거라고 하네요. 제품을 보니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개판이었습니다. 저는 애초에 도와주러 간 게 아니었기에 대충 이 제품에 뭐가 문제인지 몇 개만 말해주고 나왔습니다. '그래 잘 해봐라. 8천이나 주고 개발한 게 저 꼬락서니라니. 차라리 나를 채용했으면 더 이득이었겠네.'

5번째 회사는 결국 폐업을 합니다. 제조업이 붕괴되고 있던 시절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저는 주위에서 프리랜서를 하면 일을 주겠다는 권유에 프리랜서를 시작합니다. 프리랜서는 학력이 필요 없으니까요. 프리랜서야말로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세계니까요. 그동안 주위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았기에 일은 쉽게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집에서 일하고 미팅할 때 외부로 나가는 등 자유롭게 삶을 만끽하며 제 실력에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첫 직장 선배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전화번호 그대로라 다행이라며 지금 어디냐고 당장 보자고 하는 겁니다. 왜 보자고 하지? 일 주려고 그러나? 제가 있는 곳으로 당장 오겠다는데 오지 말라고 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 선배는 저를 보자마자 매우 반가워하더니 '혹시 버스용 통합 계수기 네가 설계한 거니?'라고 묻더군요. 으잉? 그걸 어떻게 알았지? 맞다고 했더니 ㅎㅎㅎㅎ 사연은 이랬습니다. 새로 회사에 취직을 했더니 자기에게 떨어진 일이 바로 그 통합 계수기였다고 합니다. 정말 난감했다고 하더군요. 외주 줘서 결국 실패하고 사람을 채용한 겁니다. 와서 제품 파악을 하다가 도면에서 제 이름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보통 도면에는 드로잉 한 사람 이름을 적는 게 원칙)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제가 맞았던 것이죠. 그 선배는 자기 좀 도와달라며 제품에 대해 모든 걸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아~~~ ㅎㅎㅎㅎ ㅋㅋㅋㅋㅋㅋ ㅎㅎㅎㅎㅎ 그냥 웃음만 나오더군요. 아 뭐야, 또 계수기야? 그냥 처음부터 날 채용을 했으면 될 걸 왜 저러나 싶더군요. 그깟 학력이 뭐라고 ㅋㅋㅋㅋㅋ 참 너무 웃겼습니다. 첫 직장 퇴사 후 연락 한 번 한 적 없고 친하지도 않은 선배였기에, 물론 저는 대충 몇 개만 얘기해줬습니다. 진짜 중요한 핵심은 말을 안 해줬죠. 내가 왜 다 말해줘야 하지? 고졸이라고 채용 거부했는데! 저도 성격이 참 개같더군요. 뭐 성격이 어디 가겠냐만, 알려주기 싫었습니다. 나중에 4~5년쯤 후에... 인천버스에 달린 걸 봤습니다. 결국 개발 하긴 했더군요. ㅎㅎㅎㅎㅎ

프리랜서는 처음엔 괜찮았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50%, 일 마무리하고 50%. 이렇게 받기로 하고 일을 몇 개 했습니다. 그런데 잔금 받기가 힘들더군요. 그렇게 친했던 분들이 전화하면 받질 않더군요. 일부러 안 받는 거겠죠. 결국 저는 잔금 받지도 못하고 뜯기기만 했습니다. 사정이 안 좋아지자 주위에서 매우 안타까워했습니다. 실력은 절대 뒤지지 않음에도 학력 때문에 작은 회사만 전전하는 게 보기 안 좋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씨 좋은 여러 선배들과 아는 분들이 저를 상장회사에 입사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대기업에서 일할 충분한 실력이 되는데 너무 안타까웠던 거죠. 인켈(인터엠)에 다니던 한 분은 기구설계 자리가 빈다며 이력서를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연구소장이 '고졸을 채용할 순 없다.'라며 채용을 거부했다고 미안하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그래도 노력해줘서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한 분이 삼성에서 기구설계 경력직을 채용한다며 저를 소개했다고 합니다. 이력서에 대졸이라고 적어서 달라고 했습니다. 학력 속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뭐 어떠냐며, 나중에 졸업증명서 등을 요구하면 가짜로 만들어서 내자고 하더군요. 정말 갈등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남을 속이고 싶진 않았습니다. 제가 고졸이라는 학력 때문에 평생을 차별받고 억울함을 당하고 불이익을 당했지만 이력서에 거짓 학력을 쓰고 싶진 않더군요. 저는 사실대로 고졸로 이력서를 써서 줬습니다. 네, 물론 당연히 탈락됐습니다. 정말 시리즈 내내 징글징글 지겹도록 이젠 쳐다도 보기 싫고 '학력'의 '학'자만 보여도 독자님들도 짜증 나는 학력차별이 저도 참 징글징글 싫고 분노도 일고 억울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그런걸요. 에휴~~~

저는 잔금 받기 힘든 프리랜서를 해선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여기저기 이력서를 냅니다. 그리고 난로 회사에 입사하게 됩니다.

1번째 회사 : 폐업
2번째 회사 : 학력차별 싫어서 퇴사
3번째 회사 : 사장이 욕을 해서 퇴사
4번째 회사 : 폐업
5번째 회사 : 폐업
6번째 회사(프리랜서) : 폐업

나중에 시간이 흐른 후에 생각해보니 그냥 2번째 회사에 남아있을 걸 그랬습니다. 2번째 회사도 나중에 폐업하긴 했지만요. 사장이 욕을 해서 퇴사한 3번째 회사는 대박이 나서 엄청 성장했습니다. 얼마 전에 우연히 보니 사옥을 지어서 이전했더군요. 돈을 어마어마하게 벌어 미용기기 분야에선 유명한 회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냥 사장이 욕을 해도 참을 걸 그랬습니다. 프리랜서 포함 6번이나 이직을 하는 동안 이 두 회사를 빼곤 모두 망해서 퇴사했습니다. 제조업이 망해가는 시기였기에 어쩔 수 없기도 했지만, 고졸이라는 학력 때문에 작은 회사에 갈 수밖에 없었고, 회사가 작아 제조업 붕괴를 피하지 못했던 것도 같습니다.

7번째 회사는 짧게 3개월 다녔는데요, 여기 사장이 욕을 해서 그만뒀습니다. 욕하는 사장은 정말 너~~~무 싫더군요. 욕먹으며 월급 받을 바엔 차라리 굶고 말지. 하하하하하하. 사직서 쓰는 게 취미였나 봅니다.

7번째 회사까지 그만두고 나니 이제 더 이상 기구설계가 하기 싫어졌습니다. 현존하는 대한민국 기구설계자 중에 고졸은 아마 저 1명일 것입니다. 원래 이쪽 분야는 최소 전졸 아니면 신입사원 채용을 안 하거든요. 저는 첫 직장이 아는 분이 사장이어서 기구설계를 배운 독특한 경우였기에 고졸이었던 것입니다. 제가 전에 말씀드렸듯 머리가 나빠서 고졸이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고등학교 성적표가 수수수수수수수가수수수수수였는데요, '가'가 영어였습니다. 이 영어 때문에 총점은 1등이었지만 실제 등수는 항상 10등 언저리였습니다. 영어 단어가 도저히 안 외워지더군요. 저는 참 독특한 사람입니다. 다른 과목은 다 잘하는데 왜 영어 단어만 안 외워지는지 신기하지요. 결국 집안 형편 때문에 장학생이 아니면 대학에 갈 수 없는 조건임에도 영어 때문에 장학금을 못 받게 됩니다. 그렇게 대학과 인연은 끝나버리죠. 제가 머리가 돌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고졸임에도 전혀 고졸 같지 않고 대졸자와 대등하게, 아니 대졸자보다도 더 실력이 좋고 인정받으며 살고 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하기 싫어졌습니다. 지긋지긋 징글징글 짜증 나는 학력차별을 받고 싶지 않아졌습니다. 개같은 학력차별의 세상을 떠나 학력차별이 없는 세계로 다시 들어가고자 식당에 취직하게 됩니다.

그렇게 저는 기구설계라는 직업을 버리고 다시 조리사 생활을 시작합니다. 중졸이든 고졸이든 대졸이든 아무 상관없는 조리사.

(다음에 이어서...)


나는 실패한 직장인이다 | 0 프롤로그
나는 실패한 직장인이다 | 1 한식당 설거지부터 시작해서 칼질 고수가 되다
나는 실패한 직장인이다 | 2 화상 후유증으로 손이 마비되다
나는 실패한 직장인이다 | 3 내 18년 직업 기구설계의 시작
나는 실패한 직장인이다 | 4 학력차별 나이차별 성별차별
나는 실패한 직장인이다 | 5 재수가 없는 걸까 내가 재수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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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쿠~~~
돌고 돌아서 처음 자리로 왔네요.
그 좋은 실력을 포기하고...ㅠㅠ

퇴근은 하신 건가요?

앗,,, ㅎㅎㅎㅎㅎ

li-li님이 naha님을 멘션하셨습니당.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연결되용~ ^^
li-li님의 [Li & Li] 평론가들의 도서리뷰 # 50 / 18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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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 & list] 프로젝트 유급평론가들의 도서리뷰는 naha의 스팀잇 책리뷰 대회를 응원합니다.
최근 책리뷰대회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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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고 있습니다. 이제 현재까지 몇년 안남은듯 하네요.

네. 이제 몇 년 안 남았네요. ㅎㅎㅎㅎㅎ 반 남은듯요. ^^

읽으며 제 속이 꽉 막히는 느낌 ㅠㅠ
다음을 기다리며~

읽는 분들이 많이 답답할 것 같아요. 답답하라는 의도는 아니었는데. ㅠㅠ

저는 재미있게 읽었지만 본인은 그간 엄청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겠죠~
앞으로는 진심으로 좋은 일만 많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화이팅입니다.
힘내세요~^^

제발 좋은 일만 있어야 할 텐데요. ㅠㅠ

제가 @naha님이었다면 세상을 경멸했겠습니다.
제가 대학을 나오고 느낀 것은 내 자식은 검정고시로 빨리 기초학력을 이수하게 하고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빨리 찾을 수 있게 해야겠다는 깨우침입니다.
일 잘하는게 중요하지 학벌이 중요한가요. 세상이 참 비효율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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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경멸하고 있습니다. ㅎㅎㅎㅎㅎ

ㅠㅠ한국사회에 학벌 안따지는 곳이 어디있을까요...ㅠㅠ힘내십시옹

어디 가나 학벌이죠 뭐. ^^

새벽에 글을 쓰셨군요 바쁘실텐데ㅠㅠ 감사합니다.

아... 왜 제 일같이 마음 아프죠... 진짜 너무하네요. 바보들 아닌가요ㅠㅠㅠ 뭣이 중한지도 모르고
저같으면 세상에 대한 분노가 생길 것 같아요.

어차피 집에도 못 가고 일하고 있던 터라 자기 전에 썼지요. ^^

정말 개같네요ㅜㅜㅜㅜ 저도 지방대 나와서 차별이 있긴 했는데 나하님과 같은 잔문직이 아니라서 적당히 일 잘하면 그렇게 억울하누일은 안당했던거 같아요. 정말 아까운 경력을 두고 다시 조리사를 시작하실 때 심정은 오죽했겠나 싶네요

정말로 참 개같은 세상입니다. ㅎㅎㅎㅎㅎ 나중에 결국 E 회사도 망했어요. ㅋㅋㅋㅋㅋ

정말로 학력이 무슨 소용있을까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어느자리를 가던 적응하게 되어있는데...
그리고 열정과 능력만 있다면 그깟 학력따위 다 씹어 먹을텐데 안타까운 사회네요...

아인슈타인이 현대 한국에 태어났다면 절대 상대성이론 같은 건 발표를 못 했겠죠. ^^

그렇죠 아인슈타인 ㅠㅠ
나하님도 아인슈타인에 버금가는 업적을 남기실거에요!!!

저는 늦었고,,, 울 아들이... ^^

미리 사인 받아놓으면 되나요?? 저희 애는 커서 용이 될거라는데...ㅋㅋㅋㅋ

사인은 제가 받아야 할 것 같아요. 용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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