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대로 쓰는 소설 2

in #kr-pen6 years ago (edited)

5 . 겨울에는 원래 일이 없다. 마당에서 소일하고 고양이 사료를 뿌린 뒤 쉬고 있는데 동남아 여자 하나가 우리집 마당으로 내 눈치를 보며 들어왔다. 살려주세요. 내 일꾼은 아니었다. 어디서 왔니 너? 내가 물었다. 대충 훑어보았을 때 이십대 초중반 밖에 되지 않은 아이였다. 아이는 내 친구 이름을 댔다. 이제 일이 없다고 갑자기 내 쫓았다고 했다. 내 친구는 원래 일꾼을 붙들고 쓰진 않는데.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였다. 친구는 나와 같은 처지로 농사를 하고 있는데, 나처럼 일꾼을 직접 쓰지 않고 다른 농장 일꾼들을 데려다 쓰고 일당으로 처리하곤 했다. 숙식까지 해결해주어야 하는 부담이 싫어서 그러는 경우가 농촌에는 더러 있었다.

6 .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지 않고 말했다. 걔는 원래 일꾼을 안 데리고 있는다니까. 아이는 못 알아듣는 척을 했다. 나가라. 내가 말했다. 아이는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눈을 깜빡였다. 저는 여기서 나가면 갈 곳이 없어요. 아이가 나에게 불쌍한 척을 했다. 예쁘지 않았는데 예쁜척을 했다. 나는 그런 일을 싫어했다. 이런 아이는 처음이었다. 나는 일어났다. 찬바람이 불었다. 빨리 들어가고 싶었다. 오빠 저좀 살려주세요. 아이가 말했다. 그러면서 한발짝 다가왔다. 나는 뒷걸음질 쳤다. 내가 움직이자 더 급하게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내쪽으로 뻗은 팔이 조금 있으면 닿을 것만 같았다. 나는 서둘러 아이의 배를 찼다. 날카로운 비명소리를 내며 아이가 넘어졌다. 나는 발을 내리고 멈춰섰다. 배를 부여잡고 바닥에 고꾸라진 아이가 언제 또 다가올 지 몰랐다. 신음소리를 내며 내 발아래를 바라보는 아이는 내가 움직이면 또다시 움직일 것 같았다. 문까지는 열걸음만 가면 되는데.

7 . 내가 천천히 움직이자 아이는 내 눈을 보았다. 오빠, 내가 밥할게요. 청소할게요. 잘해요. 오빠랑 잘게요. 재워만 주세요. 내가 더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을 본 아이는 후다닥 내 쪽으로 기었다. 나는 얼른 문 쪽으로 뛰어 눕혀둔 삽을 집었다. 삽을 본 아이가 소리를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그러면서 더 큰 소리로 외쳤다. 오빠 내가 진짜 밥하고 청소하고 오빠랑 자고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 아 오빠. 한번 더 말할 것만 같아서 나는 아이의 머리로 삽을 내리쳤다. 한두번은 팔로 막아서 비명소리가 컸지만 그 뒤로는 조용했다. 여섯 번 뒤로는 확인차 몇 번 더 머리를 쳤다. 추워서 그런지 피도 늦게 났다. 추운데 갑자기 운동을 하니까 어깨가 아팠다. 나는 빈 사료봉투로 아이를 덮어 두고 일단 집으로 들어갔다.

8 . 씻고 나왔을 때 누나의 전화를 받았다. 봄방학때 학교 학생들을 데리고 농촌체험교실을 하려고 하는데 내가 사는 쪽 어떻겠냐고 물어보았다. 마을사람들에게 물어보겠다고 했다. 봄방학 땐 일을 안하는 데 뭘 보여줘야 할 지 생각이 안났다. 갑자기 마당에 있을 동남아 아이가 생각이 났다. 창문 너머로 내다 보았다. 그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아까보다 추워보였다. 내가 누나에게 아까 있었던 일을 말했다. 누난 그럴 것 까지 있었냐며, 그냥 고양이들 하우스에 자리 좀 주면 될 일을 뭐 그렇게 박하게 굴었느냐며 나무랐다. 보고 살아있으면 깨워서 하우스에 데려다주고 죽었으면 사람들 불러서 치우라고 했다. 주말에 희정이, 조카도 갈텐데 볼썽 사납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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