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30일과 2018년 4월 29일의 일기.

in #kr-pen7 years ago

2017년 12월 30일 일기.

KTX를 타고 상봉역에서 내렸다. 기차는 작았지만 좌석 간 간격은 경부선보다 조금 더 넓은 것 같았다. 잠을 안 자고 만화를 봐서 그런지 내내 졸렸다. 십분 정도 잤는데 그게 정말 꿀잠이었다.

점심은 진미평양냉면. 만두 반 접시, 제육 반 접시를 시켰다. 반 접시를 주문할 수 있어서 좋다. 만두가 맛있었다. 적당히 두툼한 만두피에, 베어무니 육즙이 쭉 나왔다. 이북식 치고는 간도 간간한 편이다. 역시 음식은 간이 중요하다. 나트륨의 중요성을 또 깨닫는다. 냉면은 여전히 맛있었다. 메밀면은 적당한 찰기가 있어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거부감 없이 먹히고, 가슴 속까지 뚫어주는 감칠맛 나는 육수는 얼마든지 리필이 가능해다. 먹고 나서도 한동안 웃음이 떠나지 않는 그런 맛이었다.

서울집에 잠깐 들렀다가 머리를 자르러 미용실에 갔다. 세 시 예약이었다. 그동안 길렀던 머리를 과감하게 잘랐다. 꼬리뼈에까지 닿던 머리카락이 이제 겨드랑이까지 온다. 아쉽기도 했지만 속이 시원했다. 탈색과 염색으로 머리의 1/3은 이미 개털이었다.

단골 미용실의 미용사는 드디어 자를 결심을 하셨냐며 즐거워했다. 긴 머리를 자르면 기분이 좋단다. 나도 좋았다. 자른 머리가 마음에 든다. 머리를 감고 나서는 자꾸만 졸았다. 집에 가서 자고 싶은 걸 참고 스타벅스에서 스노우맨 돌체 라떼를 시켜먹었는데 스노우맨이 없었다. 스노우맨 돌체 라떼는 달디단 라떼 위에 스노우맨 모양 화이트초콜릿을 얹어주는 시즌 한정 음료였는데, 스노우맨이 다 떨어졌다고 화이트초콜릿 플레이크를 얹어준 것이었다. 실망하며 커피를 마셨다. 단 커피를 마시니 정신이 좀 들었다. 혼자 넋놓고 앉아 커피 한 잔을 다 마시고 강남 교보문고에 갔다. 걸어서 갔다. 금방이었다. 내일 만날 친구와 언니들에게 줄 선물을 사고 그림을 그릴 연습장도 샀다. 펜을 구경하다 예쁜 색깔이 있어 두 자루를 구입했다. 여러 책을 읽었다. 특히 뇌에 관련된 책은 재미있어서, 앉아서 반 정도 읽었다.

읽고 싶은 책을 메모해서 나오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눈이 온다더니, 따뜻해서 비가 된 모양이다. 자라에서 니트와 셔츠 원피스를 샀다. 사서 들고 가는 건 짐이 많아 귀찮으니까 재고가 있으면 인터넷에서 사려고 했는데 검색해보니 없어서 그냥 샀다.

집에 들어오는 길에 쁠로13에서 산딸기 크림치즈 크러핀과 아몬드 크루아상을 샀다. 에스카르고를 하나 끼워주었다. 인심이 좋네. 지에스25에서 덴마크 드링킹 요구르트를 사서 집에 들어와 씻고 크러핀과 함께 먹었다. 맛있었다. 2017 결산 포스팅을 끝냈다. 멋진 한 해였다.

내년도 힘내서 잘 살아야지.

2018년 4월 29일 일요일 일기.

지난 일기를 뒤적이다 작년 12월 30일의 일기를 발견했다. 거기에서 나는 2017년을 ‘멋진 한 해’였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울러 내년도 힘내서 잘 살아야지, 하는 다짐까지 적혀 있었다. 나는 2018년을 잘 보내고 있는가?

어느 때부터인가 모두가 나를 추월해 인생을 앞서 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조바심이 들면서, 원하지 않는 삶을 산다는 생각에 불안해 했었다. 몇 번이나 불안을 그만두어야지 생각하면서도 좀처럼 잘 되지 않았다. 언제나 이룬 것보다 이루지 못한 것을 생각했다. 그건 올해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랫동안 나는 진정한 삶이
곧 시작되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내 앞에는 온갖 장애물과
먼저 해결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아직 끝내지 못한 일들과
바쳐야 할 시간들과
갚아야 할 빚이 있었다.
그런 다음에야 삶이 펼쳐질 것이라고 나는 믿었다.
마침내 나는 깨닫게 되었다.
그런 장애물들이 바로 내 삶이었다는 것을.

알프레드 디 수자의 글이다.
그 모든 좌절과 실패와 열등감과 자괴감과 한심함으로 가득찬 나날들도 모두 내 삶이었다. 이룰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은 꿈이라도, 그걸 쫓는 인생은 행복하지 않은가? 뭐, 자기 합리화라고? 인간은 누구나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살지 않는가? 내가 나를 변호해 주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변호해 주겠는가?

그래서 이제 남은 8개월을 잘 살아볼 생각이다. 2018년의 마지막 날 일기에도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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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변함없이 있어줄 오늘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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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룬것을 되돌아보는 시간... 회사 그만둘 날이 한달 남았는데 남은 시간동안 생각해봐야겟어요. 글 잘 읽었습니다!

퇴사 한 달 전.. 가장 설레는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그 때 회사 관두면 막 뭐든 다 할 수 있을 거 같고 그랬는데요..
퇴사 준비 잘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싱숭생숭한 마음과 생각이 조금 정리가 되었습니다. 좋은하루 되십시오~

@lilylee님 글을 읽으니 제가 힘이 나네요. 저도 남은 8개월 잘 살아 볼래요. 그나저나 냉면 좋아하시나 봐요. 별안간 냉명이 당기네요. ㅎㅎ 알프레드 디 수자의 글, 공유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네 냉면 너무 사랑합니다.. 우리 8개월 힘내봐요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2017년 마지막날에 2018은 최선을 다하자며 다짐을 해보았지만
4월의 끝자락에서 한번 생각해보니 제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이네요ㅠ
그래도 아직 8개월이나 남은 2018년도 최선을 다해 보내고 싶습니다 !
바다사진을 보니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
저는 이제 막 시작한 뉴비인데요 앞으로 좋은분들과 소통하면서 지내고 싶네요 ^^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반갑습니다. 저도 뉴비입니다. 자주 소통하며 지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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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한 일기네요 ^^ 다들 남은 7 개월 화잇팅 하셔서 연말에는 훈훈한 일기로 마무리 하셨으면 좋겠네요. 올해 12월은 어떤 달이 될지 벌써부터 궁금합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현실은 오늘도 늦잠이네요 ㅎㅎ
화이팅하겠습니다.

언제나 "잘 살고 있는 중이다"고 스스로 다짐하며 살곤 합니다. '잘 살고 있는 중'이 켜켜이 모이게 되면 잘 살았다고 될 것 같기도 합니다 :)

사진을 보니 반짝거리는 맑은 날의 바다를 보러 다시 떠나고 싶네요-

한 해를 새로이 시작하는 글 같습니다.
이루지 못한 것에 불안해 하지 마시고, 이뤄야 한다는 의지를 가지시면 되겠네요.

다른이들도 다들 그렇게 산답니다. 화이팅 입니다 .

일기 투어 중에 들렸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우리는 과거나 미래에 매여서 현재에 충실하지 못하죠. 아주 간단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것이 현재에 충실하고 온전한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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