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소설] 5분 - 2편

in #kr-pen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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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의식이 돌아온 것과 동시에 M은 꼬리뼈에서 정수리까지 꿰뚫는 소용돌이를 느꼈다. M은 아주 좁고 끝을 알 수 없는 원통이 된 기분이었다. 몸을 관통하는 강력한 힘을 견디느라 입술을 꽉 깨물고 싶었지만 20년 전에 박아넣었던 임플란트나 자신의 입술, 몸을 구성하고 있는 기관들 중 그 어느것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으므로 엄청난 공포감과도 싸워야했다. 이 현상에 대해서 답변을 해 줄 수 있는 존재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이미 죽은 상태가 아닌지 스스로에게 조심스러운 질문을 던져야할 판이었다.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노쇠하고 말라비틀어진 몸뚱아리가 시간여행의 충격을 감당하지 못해서 심장마비 따위로 죽어버렸다는 가정이었다. 시간여행회사 직원들은 난감해하며 좁은 캡슐안에 널부러진 자신의 변변찮은 시체를 끌어낼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죽었는데, 의식이 있다는 것은 말이 되는걸까. 죽은 몸을 보지 못했는데 죽었다는 단정을 내려도 될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그럴수록 의식은 더욱 또렷해졌다. 오랜 시간-사실 그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결코 알 수 없었다-을 숙고한 그는 결국 받아들였다. 자신의 몸이 없어져버렸다는 사실 하나를. 그리고 K없이 혼자 여생을 보내는 괴로움보다 더 괴로운 상태에 봉착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음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탄에 잠긴 M의 의식은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되든 상관없었다. 그러나 라 뒤레 앞에 있을 K를 꼭 만나고 싶었다. 'K를 꼭 만나고 싶어. 포기하지 않을거야.' 암흑속에서 M은 주문을 외듯이 그 말을 반복했다. 그에겐 입도 혀도 성대도 없었기때문에 검은 도화지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고 상상했다. 가상의 푸른형광펜으로 자신의 의식을 끝없이 적기 시작했다.

K를 꼭 만날거야. 난 포기하지 않아. K를 꼭 만날거야. 난 포기하지 않아. K를 꼭 만날거야. 난 포기하지 않아. K를 꼭 만날거야. 난 포기하지 않아. K를 꼭 만날거야. 난 포기하지 않아. K를 꼭 만날거야. 난 포기하지 않아. K를 꼭 만날거야. 난 포기하지 않아. K를 꼭 만날거야. 난 포기하지 않아. K를 꼭 만날거야. 난 포기하지 않아. K를 꼭 만날거야. 난 포기하지 않아.

 어느 순간 그는 밤하늘의 별자리같이 빽빽하게 박혀있는 수백억개의 글씨들을 보았다. 그것들은 그의 의식이 만든 아름다운 세계가 되어있었다. M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전자기장의 속도가 점점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그는 롤러코스터가 멈추듯이 조용히 정지했고 라 뒤레 간판을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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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 뒤레 진열장 앞에는 젊은 K가 있었다. K는 눈물이 쏟아질만큼 예뻤다. 파란색 바탕에 흰 도트무늬의 여름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보기좋게 전시된 달콤한 디저트의 물결을 바라보느라 넋이 나간 듯 보였다. 곧 한 무리의 사람들이 K를 에워쌌다. 금발머리 여자가 오페라 공연의 표를 팔기 위해 K에게 바짝 붙어서 설명을 했고, 그 사이에 갈색머리 남자가 재빨리 K의 핸드백을 열었다.
 M은 묵묵히 K가 지갑을 도둑맞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배가 고픈 K를 위해 돈을 주고 싶었지만 시간여행할 때 가져온 10유로 역시 몸과 함께 사라졌다는 걸 기억해냈다. M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의식을 한군데로 모은 후 마음속으로 외쳤다.
 'K, 조심해! 소매치기야.'
 K에게 아무리 외쳐도 M의 의식은 K에게 닿지 않았다.











연재가 좀 늦었죠?
파리여행 중에 라 뒤레 사진을 찍어두었는데 찾아보니 썩 잘 나온게 없네요.
혹시 1편을 읽지 못한 분을 위해 5분 1편을 링크합니다.

[스팀소설] 5분 -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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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보고 갑니다.
이전 글도 역시나..
행복한 하루 되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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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운 스티밋!!!

오치님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

과연 M의 의식이 K에게 닿을 것인가... M은 현재 어떤 상태인가! 역시 다음 편이 궁금해지는 전개군요.
그리고 한 가지...

K는 묵묵히 M이 지갑을 도둑맞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배가 고픈 M을 위해 돈을 주고 싶었지만 시간여행할 때 가져온 10유로 역시 몸과 함께 사라졌다는 걸 기억해냈다. K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 부분의 K와 M이 바뀐 것 같습니다.

오 감사합니다^^ 역시 예리하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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