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간의 호흡

in #kr-pen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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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메모하는 모습을 보면 내 글이 메모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는 작가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이거나 내 글도, 내 메모도 읽어보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오해다. 내 메모는 글과는 거의 관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끔은, 아니, 가끔이 아니기 위해 노력은 하지만, 메모를 토대로 글을 쓰려고 시도 할 때도 있다. 그리고 대부분은 실패한다. 좋은 소재란, 좋은 표현이란 그 자체로 좋은게 아니라 이를 살릴 재주가 필요하다. 순간 번득이는 심상은 누구에게나 있다. 메모하는 습관을 강조하는 이들은, 이 번득이는 심상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 한다. 하지만 정말로 어려운건 그 심상을 문자로 기록하고 후에 풀어내어 그 심상을 살려내는 것이다.

누군가는 경험이 힘이라 한다. 내가 놓쳐버린 수많은 번득임, 이를 문자로 표현하려 노력했던 경험이 재산이라고 한다. 참 마음 편한 소리다. 나는 지쳤다고 누워 있을 때 누워 있어도 상관 없다며 위로하는 사람보다는 일어날 때까지 발로 차는 사람이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경험이 힘이 된다는 것도 참 우스운 소리이다. 경험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재능 있는 사람은 무얼 하는가? 재능 있는 사람도 숨을 쉬고 살아있는데 아무 경험도 하지 않겠는가? 노력과 성과를 가시적으로 볼 수 있는 활동을 해보면 격이 다르다는게 어떤건지 알 수 있다. 모든 분야가 그러한데 글쓰기라고 다르겠는가? 그래서 내가 좋은 표현, 좋은 소재라고 기록까지 해놓은 메모를 기반으로 시작한 글은 완성되지 못 한다. 억지로 짜낸 글은 편안하지 않다. 절대로, 절대로 연재중단은 아니라 확언했던 '사육'처럼 내 능력을 벗어난 글은 쓰기가 힘들다. 돌이켜보니 절대로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내가 능력의 부재라는 현실과 타협하고 있었다. 아니면 더 이상 카페인으로 자신을 혹사하는걸 거부하는 내 뇌와 타협하고 있던 것일지도.

오늘은 내가 현실과 타협하지 않겠다며 포장된 도로를 주행하던 내 인생을 미지의 영역으로 밀어넣는 결정을 처음으로 남에게 알렸던 장소에 방문했다. 학문의 길에서 떠나겠다는 선택을 내 글선생에게 알렸던 자리다. 그 분을 마땅히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글공부인지 잡담인지 모를 활동에 시간을 참 많이도 쏟았다. 그분이 가르쳐주신 글쓰기는 일관성을 지키는 철저한 논리와 객관성에 중점을 두었으니 내가 지금 쓰고 있는 호흡하는 글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내가 그분에게 배운건 글솜씨보다는 정신이다. 아주 뒤틀린, 지금보다 어려서 더욱 뒤틀려 있었던 자의식 밖에 가진 것 없는 괴물 같은 놈을 상대하면서도 절대로 잃지 않으셨던 평정심.

문득 그 장소로 다시 가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마침 동행하고 있던 이가 좋아하는 메뉴를 파는 곳이었기에 넌지시 말을 꺼내보았다. 괜찮다기에 그리로 향했다. 오랜만에 방문한, 사연 있는 곳이지만 감성이 부족한 사람이라 별 다른 느낌은 없었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영업하고 있으며, 아직도 사람이 붐비며, 음식은 맛있었다. 그리고 거기서도 메모를 했다. 하지만 결국 글로서 여러분에게 선보이는건 그 장소에서 내가 호흡을 했다는 사실, 그 사실 뿐이다. 아마 내가 거기에 간 이유는 별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라면과 햄버거보다 비싼 음식도 먹을 수 있을 여유가 생겼을 뿐이었을지도.

그러고 집에 돌아왔더니 조카가 또 안겨온다. 나만 보면 울어서 나를 당혹스럽게 하던게 언젠데, 이제는 내가 방문을 닫으면 운다. 잘 놀고 있다가도 내가 물을 마시러 나오면 나를 끌어내리고 목에 팔을 감는다. 평소에는 며칠만 안아주면 끝이었는데 이번에는 네달간이나 조카를 안아줘야한다. 나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겠다며 꿈을 접었지만, 내 동생은 현실과 타협하지 않기 위해 꿈을 되살리기로 결심했다. 이른 나이에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내 동생의 꿈은 힘들어졌다. 그렇게 타지에서 신혼생활을 하며 계속 멀어지던 꿈을, 자기 남편을 버려놓고 집에 불쑥 찾아와 되찾겠다고 선언한다. 그래서 네달동안 조카를 안아줘야한다.

오늘도 이렇게 호흡하는 글을 마쳤다. 미리 준비한 생각, 글감은 아무 소용도 없고 남은건 본능적인 손가락의 움직임 뿐이었다. 정말 쉬워야하는데, 아직 부족한 나에게는 이것조차도 어렵다. 내가 지쳐감에 따라 물심양면으로 스티미언들을 지원하겠다는 다짐이 흐트러진다. 점점 읽고도 댓글을 남기지 않는 횟수가 늘어난다. 댓글을 남기지는 않아도 꼭 다른 분들의 댓글은 읽어본다. 그리고 읽다보면 눈에 띄는 분들이 계신다. 다들 바쁜 세상이다. 다들 힘든 세상이다. 그런 세상 속에서 마음을 나누는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쉽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마음을 기꺼이 나누시는 분들을 보면 부끄럽다. 초심을 잃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 부끄러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표현하고 싶어 50 SBD를 세분께 드리려 한다. 활동에 대한 보상이라 생각하진 마시라. 여러분들의 활동에 함부로 가격을 메길 정도로 오만한 사람은 아니다. 그냥 내 마음이라 여겨주시라.

나는 마음을 돈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되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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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심상은 예전만 못하더라도 그런대로 쓸 거리는 많은데, 정작 펜을 집어 들면 글 한 줄도 제대로 써내려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답답해요. 그럴 때마다. 짜증도 나고, 예전에는 안그랬는데 싶어서 과거의 영광도 떠올려보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랍니까.

에이...

다분히 손에서 책을 놓은 지 오래라서 그런가보다 하고.. 이제는 책 좀 읽으려고요.. 쩝.

You're so nice for commenting on this post. For that, I gave you a vote!

Thank you very much for sharing with us ! Big vote :)) @kmlee

좋은 글이네요ㅎㅎ 언제나 어디에나 과도기는 존재한다고 생각해요.ㅎㅎ

누구든 마찬가지일 겁니다. 글과 댓글은 읽되, 댓글을 점점 남기지 않게 되는....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각자의 이유가 있겠죠. 저는 그저 바쁘다는 핑계일 뿐이니...반성합니다...

솔직히... 댓글을 남기는 양이 줄었다기 보다는 신규회원이 너무 많습니다. 즐거우면서도 힘들어요.

모양이야 어찌되었든 표현자체를 못(안)해버리는 세상에서
한 획이라도 남기시는 글을 통해 누군가가 힘을 얻는다면
그것만으로도 멋진 일이라고 생각이드네요. ^^
좋은 글 감사합니다~

힘이 되었는가는 곧 알게 되겠지요. 감사합니다.

부담갖지말고 하세요~ 그 만큼 믿고 맡긴 역할 아닐까요? ^^

남들 다 보는 곳에서 고백하긴 좀 그런데... 부담은 별로 없습니다. 그냥 시간이 모자란거죠. 그럼 지치지 말고 가즈앗!

ㅋㅋ 부담 좀 가지고 하세요~~!! 가즈앗!!

제 활동이 마음에 드셔서 맡겨주셨을텐데 부담 갖고 바뀌는 것도 이상하잖아요 ㅋㅋ

1%영감과 99% 노력이 떠오르네요.. 99%노력이 중요하지만 1%영감이 없다면 그 노력은 쓸모가 없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듯이.. 메모가 중요하지만 그 메모한것을 글로 표현하는 일.. 경험은 많지만 재능도 겸비한 사람의 경험을.. 넘기에는 힘들겠죠.. 하지만 포기할 수 있는것도 용기라 생각하고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볼 수 있는것도 능력이라 생각합니다. ㅎㅎ 제가 머리가 좋지않아 글을 잘 이해한건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누군갈 돕는다는 생각을 하신다는게 대단한것 같습니다. 이제 스팀잇을 시작해서 어제 @kmlee님을 알게되었는데 오늘 글을 읽어보니.. 참 배울점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듭니다. ㅎㅎ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

포기하는게 용기일 수 있겠지만, 포기하지 않는 소년의 열정을 잃고 싶진 않습니다. 한발씩 물러나다보면 물러나는 것에 익숙해지겠지요. 감사합니다.

저는 초보뉴비인데 어떻게 포스팅의방향응 잡을지 고민이네요ㅎ 그래도 블로그나 인스타보다는 이곳이 소통도 훨씬 나누기 쉬워서 천천히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ㅎ kmlee님 어렵게 생각하지마시고 답은 가깝게 아니면 잠시 기계처럼 되는것도 방법이 아닐까요 ㅎㅎ 좋은저녁시간되세요 ㅎ

그냥 투덜거리는 글입니다. 우부님도 식사 맛있게 하셨거나, 하시길 바랍니다.

돈이 곧 정성과 감사함의 표현일 수 있겠죠. 마냥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치열한 고민을 하시는 것 부터가 부끄러움과는 한참 멀리 떨어진 생활 중인 것 같습니다. 다시 열정을 되찾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지금도 열정적입니다! 그저.... 새로 오신 분들이 너무 많을 뿐...

wonderful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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