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리티를 잃은 인류

in #kr-pen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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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을 억압하던 사회에서 개인은 자신의 자아가 아닌 가문이, 조직이, 국가가, 직업군 등으로 평가 받았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영혼이 있었다. 영혼에 대한 믿음이 있던 사회에 인류에게는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영혼을 지닌 각 개인은 영속적인, 삶의 연장선에 놓이는 무언가를 지닌 개인이었다. 하지만 영혼에 대한 관념은 계속해서 후퇴했다. 현실의 자아를 이야기 하기 위해 영혼의 실존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치매로 고통 받던 노인이 죽으면 영혼은 치매 노인의 지성을 가지는가? 그렇다면 영혼은 무가치하다. 전성기의 자아가 영혼으로 돌아가는가? 전성기라 할 시기가 없는 유아가 죽으면 영혼은 유아의 지성을 가지는가? 그렇다면 영혼은 무가치하다. 영혼이란 현실의 삶에서 가지고 살아가는 자아 이상의 무엇인가? 그렇다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영혼에 대한 논의는 무가치하다. 형이상적 무엇이 되어버린 영혼은 더 이상 개인의 자아의 연속선에 있지 않고, 사회에서 개인이 갖는 오리지널리티를 보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영혼은 존재하건 그렇지 않건, 삶의 살아가는 개인의 자아의 오리지널리티를 보장하진 않는다. 그렇게 영혼을 잃은 현대인에게 부여된 마지막 오리지널리티는 자아에 대한 관념이다. 영혼의 시대에 영혼의 불멸성 토대로 오리지널리티를 구축했다면, 피와 살의 시대에는 인간에게 사본이 없으며 대체불가능한 존재라는 유한성을 토대로 오리지널리티를 구축했다. 만약, 사본이 없으며 대체불가능한 존재라는 유한성이 무너진다면 어떨까.

의식의 연속성을 느끼는 개인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다. 나는 어제와 오늘이 같은 사람이고, 내일도 같은 사람이다. 문제는 내가 큰 사고로 머리를 다쳐 피니어스 게이지처럼 폭력적인 사람이 되어도, 내 자아는 연속선에 놓여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분명 나는 전과 같은 사람이 아님에도, 타인은 내 육체를 토대로 내가 여전히 나라 여길 것이고 나는 내 자아의 연속성을 토대로 나는 나 자신이라 여길 것이다. 그렇다면 외계인이 내가 자는 사이에 내 두뇌의 완벽한 사본을 만들어 내가 일어나기 전에 흔적도 남기지 않고 바꿔놓았다고 하자. 그 존재를 나2라고 하자. 나2는 내가 살아온 세월을 기억하고 있고 나2이면서 나로서 살아간다. 내 주변 사람들은 어떤가? 내가 나2로 대체되었다는 증거는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망상장애를 가진 사람이 아닌 한 아무도 나2의 정체성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소멸한 나는 나2가 원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릴 수 없다.

피니어스 게이지처럼 머리를 다쳐서 성격이 완전히 바뀐 내가 나 자신의 연장선인가, 나 자신의 특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물리적으로 대체된 내가 나 자신의 연장선인가? 오리지널리티를 유지하기 위해서 인류는 전자를 택할 수 밖에 없다. "물리적으로 대체된" 것이 어떻게 원본일 수 있겠냐는 것이다. 누군가가 모나리자에 복구 불가능할 손상을 입힌다 해도 손상된 모나리자가 원본이지, 모작이 원본일 순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신의 복제, 내지는 전송에 따른 결과물이 자신의 자아의 연속선에 놓인다는 사실에 부정한다.

그렇다면 국소적으로 접근한다면 어떨까. 우리는 절단 사고를 당하고 의수를 착용한 사람을,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 인공 심장도 마찬가지다. 유전병 환자가 유전자 조작 기술에 힘 입어 유전병을 고친다고 그 사람이 다른 누군가가 되었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아마 계속해서 뇌를 제외한 모든 부위를 대체한다 하여도 자아의 연속성은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뇌를 절제, 대체, 보수하는 문제에 대해 접근해보겠다. 내가 사고로 뇌의 일부를 잃었다. 피니어스 게이지처럼 성격이 변했다. 여전히 타인들은 나를 나로 여긴다. 다음에는 내가 사고로 뇌의 일부를 잃어서 성격만 변한게 아니라 큰 기능장애를 앓고 있다. 시각, 청각을 상실했다. 하지만 이를 고칠 수 있는 기적의 약물이 있다고 하자. 뇌조직을 급속도로 자라게 하여 잃어버린 기능을 찾아주는 약물인데 그 약물을 통해 내가 시각, 청각을 되찾는다고 해도 나는 나 자신이다. 그 과정에 내 성격이 조금 바뀐다 하여도 타인들은 나를 나로서 대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피니어스 게이지가 잃어버린 성격을 되찾기 위해 기계의 힘을 빌린다면? 성실하고 따뜻했던 사람에서 폭력적이고 무절제한 사람이 된 피니어스 게이지, 그가 기계의 힘으로 잃어버린 능력을 되찾고 다시 성실하고 따뜻한 사람이 된다면 피니어스 게이지는 피니어스 게이지인가? 아마 기계의 힘으로 뇌기능의 일부를 되찾을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대중들의 통념은 그 수술을 통해 자아를 상실한다 여기지 않고 수술의 결과물 또한 자아의 연상선에 속한다 여길 것이다. 만약 계속해서 피니어스 게이지가 사고를 입어 뇌의 일부를 천천히 바꿔나간다면 어떨까. 뇌에서 자아가 담긴 부위가 어딘가에 대해 또 다시 형이상적인 논의를 시작할 것인가? 아니면 뇌 조직의 마지막 한조각이라도 남아있다면 피니어스 게이지는 피니어스 게이지로 남을 수 있을까?

만약 정말로 뇌의 특정 부위에 자아가 담겨있는게 아니라면, 논리적 일관성은 무서운 사실을 지목한다. 뇌의 일부에 손상이 있었던 피니어스 게이지가 피니어스 게이지라면 뇌 전체를 대체한 피니어스 게이지도 피니어스 게이지라는 사실. 그리고 외계인에 의해 탄생한 나2도 내가 된다. 따라서 뇌의 일부에 손상이 있었던 피니어스 게이지를 피니어스 게이지로 인정하지 않아야, 나2가 내가 되는 기막힌 일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진퇴양난이란 이런 것일까? 뇌손상이 자아의 연속성을 해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나의 복제 또한 나의 연장선에 속하게 되고, 뇌손상이 자아의 연속성을 해친다고 하면 우리는 생애에 걸쳐 하나의 자아만 가지고, 이를 발전시켜가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관념이 손상된다. 예를 들어 뇌경색성 치매를 앓는 사람이란 무엇인가. 나2를 나로 인정하지 않기 위해서는 뇌경색성 치매를 앓는 사람들은 그 사람의 자아를 잃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처럼 개인의 오리지널리티는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으며, 논리적으로 볼 때 인간의 자아에 일관적인 오리지널리티란 없다. 역동적으로 붕괴하고 재구축되는 자아에 일관적인 오리지널리티를 부여하는건, 자신의 주체성에 대한 관념과 타인의 인지다. 결국 내가 나라는 사실은 하나의 군중심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너는 왜 사나."는 질문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는 학자들도 포함된다. 학문의 길을 걷는 사람에게도 일관적인, 연속적인 자아가 존재한다는 믿음에서 오는 안정감은 필요한 모양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위한 답변은 "매미는 왜 사는가?"이다. 그 답이 바로 내가 사는 이유다.


@Bramd님과 @Soyo님의 댓글에서 모티브를 얻은 글입니다. 두분 뿐 아니라 의견을 남겨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본문에서 다루지 않은 주제에 대해서는 차후에 따로 글을 남기거나 댓글로라도 상세히 답변하도록 하겠습니다. 굉장히 재밌는 경험이었고 앞으로도 코너를 만들어 주기적으로 진행해볼까 합니다. 혹시 진행에 있어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있다면 꼭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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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r Up!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평소에 제가 생각하고 있던 관점과는 조금 다르네요.
저는 영혼이 불멸이라서 육체를 바꿔가면서 계속해서 존재할 수 있고,
그 상태로서 자아성을 연속적으로 가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혼은 언제 육체에서 떠날까요?

그 중간에서 오차나 다른 방향이 나타나도 억지가 아니라면 계속 origin에서 멀어지는것도 괜찮다고 봅니다. 매번 시작점을 다시 추구하는것은 단지 Authenticity를 만들어내기 위한 construction에 다름없는것 같습니다 -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원본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억+그릇 양쪽 다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 둘을 완벽하게 복제한 개체는 물론 둘 중 하나만이라도 같다면, 예를 들어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돼 그릇만 남은 대상, 전뇌공간으로 기억을 이식한 대상 또한 원본 대우를 해 줄 겁니다. 속 편하게 모두 LCL로 환원시키면 더할 나위 없겠죠.

전뇌공간으로 기억을 이식하는 과정에서 복제품이 생기면 복제품들은 제각각의 오리지널리티를 구축해나가겠지요. 그렇다면 어느 복제품이 원본의 연장선에 있다고 보아야 할까요?

선택에 따라 파생되는 다중우주의 집약처럼 들리는군요. 저는 그들 모두를 원본의 연장선으로 취급하겠습니다.

그렇군요. 저는 조금 더 극단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데, 개인의 연장선에 존재하느냐 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모두 인류문명의 연장선에 속할텐데요.

인류보완계획이 시급합니다.

에반게리온인가요?

맞습니다.

흥미롭게 읽었어요~
보팅하고가요

좋은 글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생각할거기를 던져주는 글이네요 ㅎㅎ

자아라는 것 자체가 원래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성현들 말씀과도 일치하고요

색즉시공 아니겠습니까.

정말 생각해볼만한 주제네요. 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고. 조용히 읽고 가려 했지만 그래도 이 구호는 남겨야죠. 가즈앗!!! ^^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치매 환자들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자신을 잃기 때문이지요. 기억이 없는 상태로 행동하던 것도 나일까요? 자신의 연속성을 잃고 아이처럼 헤매는 상황을 저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나는 내가 누군지 잃어버렸을 때, 나 혼자서 내 엉덩이도 못 닦게 되었을 때는 누군가 나를 ...

모르겠습니다. 기억을 잃은 '나'를 기억이 있는 내가 죽여달라고 결정해 줄 수 있는 건가요? 기억이 없는 나는 나와 동일하지 않습니다. 저는 기억이 인간의 오리지널리티라고 생각하고, 기억이 복제된 나는 나이며, 기억을 잃은 나는 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제 어머니와 저는 이성을 잃느니 죽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바람이란 또 다르고, 내 육체를 지닌 무엇이 계속 살아서 곁에 있기를 원할지도 모르지요.

저의.. 뇌에도 지진이 오고있네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글 입니다 @,@

뇌에 지진이 오는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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