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내 글쓰기에 대한 시리즈] 서문

in #kr-pen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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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유명 피아니스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루바토(rubato)와 트릴(trill)은 누구에게 가르쳐줄 수 없는 영역이예요."

곡에 루바토가 표기되어 있을 때는 정해진 템포 없이 연주자의 해석에 맡기게 된다. 트릴은 반 음 이상의 차이가 나는 두 음을 빠르게 오가는 것이다.

"여기서는 1초 들이고 다음 음으로 바로 넘어가서 0.3초, 그 다음 반음 올라갈 때 0.2초, 그 다음에 2초 머무르세요." 뭐 이런 식으로 가르쳐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설령 그렇게 한다고 해도 결과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배우는 연주자의 입장에서 알아서해야 하는 영역인 것이다.

결과는 연주자의 재량에 따라 매우 달라질 수 있다.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주로 연주자의 곡 해석과 감정에 달려 있으니 말이다. 루바토라고 무조건 그 전과 속도를 확 차이나게 하거나 트릴이라고 무조건 빠르게 한다고 해서 연주가 더 아름다워지는 것도,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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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 연주자가 예로 든 루바토트릴은 하필 '템포'와 연관이 많지만, 사실 건반 위에서 가르쳐줄 수 없는 것은 많고도 다양하다. 연주란 모든 부분에서 결국, 연주자의 해석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냥 남의 연주를 모방해서 그대로 하는 것이 목표가 아닌 이상에야.

이어서 떠오르는 것은 어느 전문가의 핸드드립 커피에 관한 이야기다. 동작 자체는 어려울 것이 없으며 명료한 말로 가르쳐줄 수 있고, 시범을 보일 수도 있다. 원두를 갈아서 그 위에 물을 부어, 커피를 내리는 것 자체는 대부분 따라할 수 있는 행동이니까.

그러나 커피를 내릴 수 있는 방법은 사실 아무리 설명을 한들, 그대로 가르쳐줄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사람은 그걸 두고 센스가 있는 만큼 터득할 수 있다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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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하라거나, 보다 빠르게 혹은 보다 천천히 하라거나, 가장자리부터 시작하라거나 하는 물리적인 동작에 대한 지적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정확히 얼마나 고른 원을 그리는지, 정확히 얼마나 빠르게 혹은 느리게 하는지, 정확히 얼마의 물을 어느 정도 시간 안에 붓는지 등의 구체적인 부분은 결국, 소위 센스에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핸드드립의 동작 자체를 구현하는 것은 피아노곡을 익히는 것보다는 단순한 일이기 때문에, 그 센스가 뛰어난 사람은 연습을 몇 번 해보지 않고도 커피를 꽤나 잘 내릴 수 있게 된다고 한다.

표현은 센스라고 했지만, 나는 그것을 앞에서 거론한 피아니스트가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의 개인별 재능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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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라는 키워드를 사용하는 제목은 보통, 글쓰기의 방법을 다루리라는 기대를 자아낸다. 그러나 [W]가 방법을 알려주는 시리즈일지는 의문이다. 아니, 이것은 확실히 그런 시리즈가 아니다. (소소한 팁들을 제시하는 것 이상의 방법 전수는 애초에 가능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인데, 이는 거듭 나올 주제이니 차차 얘기하기로 하자.)

이 상황은 마치 여러 번 커버곡이 나온 This is not a love song(제일 익숙할만한 버젼으로 링크)과도 비슷하다. 계속 해서 "This is not a love song(이건 사랑 노래가 아냐)"이란 가사를 반복하면, 역설적으로 사랑 노래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생기게 마련인데, 그 노래는 정말로 사랑 노래가 아니다. 잘 팔릴 만한 사랑 노래를 써달라는 회사 측 요구에 대한 일종의 풍자적 응답으로 탄생한 곡으로, 전반적인 가사도 그런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앞에서 한 [W]는 글쓰기 방법을 알려주는 시리즈가 아니다는 요지의 발언 역시 진심에서 하는 얘기다. This is not a love song처럼 이 점에 대해 분명히 못을 박고 시작한다. 물론 방법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소소한 팁들은 종종 있을 것이다.

이 시리즈의 목적은 그 컨셉으로 인해 보다 명확해질 것이다. 시리즈 제목 [W]에서도 암시되었듯이, W로 시작하는 다섯 키워드가 핵심이 된다.

Who

누가

When

언제

Where

어디에서

What

무엇을

How

어떻게

Why


흔히 육하 원칙이라고 일컫는 바로 그것에서 어떻게만은 제외시킨 결과이다. 육하 원칙은 글, 특히 기사의 성격을 띤 글에서 지켜야 하는 사항들로 알려져 있는데, 내 시리즈는 그런 원칙, 즉 글의 구성 요소로서의 육하 원칙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일단 육하가 아니기도 하고...)

그런 의미에서가 아니라, 글쓰기에 대한 '방법(어떻게)'을 알려주지 못하기 때문에 글쓰기를 둘러싼 주변 이야기를, '어떻게'를 제외한 육하 원칙을 빌려서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W]는 글쓰기 방법이 아닌, 엄밀히는 내 글쓰기와 관련이 있는 시리즈가 된다. 어떤 정의나 단정의 경우, 전부 내가 스스로 사실로 인정하게 된 것들로 그렇게 표현할 것이다. 내 경우에 국한된 이야기기 때문에 '노하우'로서 전달하고자 하지 않으며, 그렇게 받아들여도 안 된다. 어차피 개인적 경험담에 가까울 테니, 5년, 10년 전의 내가 아닌 이상 그걸 따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남이 하는 것을 지켜보는 정도로도 도움은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 시리즈를 쓰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스스로 주시하고 싶어하는, 매우 자기중심적인 이유가 그것보다 더 중요하긴 하지만.

[W]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쓰는가의 문제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한데, 이건 살아가면서 계속 문제로만 남게 된다. 사실 누구든 이 부분만 스스로 계속 자문해도, 본인만의 글쓰기가 가능해진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의 문제도 다 나름대로 글쓰기라는 습관(혹은 일, 혹은 취미)에 얽혀 있는 것이다. '어떻게'는 유명 피아니스트조차도 루바토를 정확히 알려주지 못하는 것에서 보듯, 그 누구도 알려줄 수가 없는 것으로 남겨 둔다.

다른 말로 하면,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해서는 알려줄 길이 없지만 나 개인의 글쓰기를 둘러싼 것들은 얘기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피아노나 핸드드립 커피의 경우에서처럼 그냥 그대로 모방하려는 것이 아닌 이상에야, 어떻게 하라는 식의 조언은 의미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 모방은 너무나도 쉽다. 예를 들어 잡지나 특정 매체 글을 많이 본 사람, 또는 의도적으로 흉내 내서 쓰는 사람은 티가 나게 마련이다. 물론 그 자체로 문제적이지는 않다. 내용만 오리지널하다면야 남의 어투를 흉내내서 말하는 것 정도의 문제 밖에는 되지 않을 터인데, 기억해야 할 것은 내용 역시 잠식되기 매우 쉽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런 글은 일단 개인의 글이 아니라 해당 매체의 스타일에 따라 서술된 '정보'이고, 그만큼 흔하게 볼 수 있기에 정보성 이상의 매력은 갖지 못하는 것이다.

모방은 쉽지만, 어느 지점까지만 쉽다. 문체는 쉽게 모방할 수 있지만 내용, 즉 알맹이는 모방하기 어렵다. 같은 주제를 봐도 관통하는 시선은 제각기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 시선, 사상, 지식, 경험 등을 전부 알맹이로 지칭한다면, 알맹이를 금방 전수할 방법이라곤 당연히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모방으로는 불가능하다시피 하다.

그 알맹이에 관한 이야기는 결국 글을 쓰는 사람의 캐릭터, 즉 '누구'의 문제로는 다룰 수 있는 류의 것이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역시, 정도는 다르지만, 각자 알맹이에 대한 의미 있는 접근을 가능케 할 것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글쓰기 노하우'를 표방하는 서적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향하는 것처럼 자신의 경험으로서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책, 아니면 그냥 일반적으로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만한 내용들을 나열한 책. 물론 후자는 '살을 빼려면 적게 먹고 운동하라'는 소리보다 더 쓸데없어 보인다. (가령 되도록 많이 써봐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 같은 이야기도 무의미한 것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너무 당연해서 무의미하기도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 무의미하기도 하다. 무슨 뜻인지는 앞으로 시리즈에서 다뤄보기로.)

다이어트에 관한 일반적인 조언의 경우, 그래도 지키기만 한다면 일단 결과는 나올 것이다. 그러나 글에 대한 일반적인 조언은 꼭 효과가 있으리란 법이 없다. 가령 아무런 자신의 성장 없이 무작정 필사를 하거나 많이 쓰면 과연 글이 더 좋아질까? 그냥 원래부터 속에 갖고 있었던 정도의 내용을 조금 더 쉽고 빠르게 표현하는 것, 그 이상으로 나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거기까지만 달성해도 충분할지 모른다. 그러나 계속 써야 하거나, 쓰고 싶은 사람은? 거기서 답보 상태가 되면 아마도 같은 이야기를 어디에서 본 듯한 문체로 포장해서 빙빙 둘러 하거나, 소위 '감성팔이'에 의존하기 쉽다.

'어떻게' 하라는 류의 말은 결국 뻔하면서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그걸 알면서도 수많은 사람들은 각기 처한 다양한 수준과 상황에서 글쓰기에 관해 '어떻게'로 접근하여, 결국 또 뻔한 내용의 조언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는 정도가 그나마 최선의 도움이 될 텐데, 그걸 제대로 풀어놓지 않거나 못하면, 결국 '어떻게'의 함정에 빠지게 되게 마련이다. 나 역시 이 시리즈를 쓰면서 '어떻게'로 접근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항시 주의해야 할 텐데, 잘 될지 걱정이다.

어떻게할지에 대한 방법은 결국 각자의 재능의 결과로 터득하게 된다. 곡 해석력도, 커피를 내리는 센스도 다 재능의 일환이듯이. 물론 재능이라는 것이 꼭 거창한 것만을 가리키지는 않지만, 어쨌든 당장은 존재하지 않는 재능을 '글쓰기 노하우' 따위로 만들어낼 수는 없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잠재적 재능은 있다고 생각한다. 내 수준의 미미한 글 재능으로도 글쓰기에 대한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냥 내 얘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잠재된 재능을 찾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런 의미에서 [W]는 '어떻게'가 아닌 '누구'의 문제를 가장 우선시하는 시리즈이다. 글쓰기에 접근할 때, 글을 쓰는 이의 포커스는 글 자체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돌려져야 한다는 것이 [W]의 기반이 되는 주장인 것이다. 물론 '누구', '언제', '어디서' 등의 순서대로 꼭 다루기보다는 그때마다 내키는 걸로 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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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번에도 처음부터 루바토? 트릴? 모르는 단어나와서 패스

ㅋㅋㅋㅋㅋ설명해놨다구ㅠ

시리즈 중독녀 ㅋㅋㅋㅋㅋㅋㅋㅋ
JMT 이름 언넝 지으생!

음 이미 오래된 말이라 좀 계속 쓸만한걸로 생각해 보아요. ㅋㅋㅋㅋㅋㅋㅋ

새로운 시리즈네요. ㅎㅎ

글은 말하는 사람의 생각이 녹아 있어서 누가 말 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네, 글이든 노래든 그림이든...그렇게 생각해요. ㅎㅎ

다이어트실천해봐야겠어요

ㅋㅋ사실 유지가 어렵죠. 계속 평생 할 수 있는 방법이 최선인 것 같아요.

오오 '뭔가 어떻게는 재능이니 알아서들 하셔라' 라는 느낌보다는 '알아서 어떻게는 뽑아 먹어라'로 들려서 기대됩니다. 맛있게 잘 뽑아 먹겠습니다. 쏙쏙 ~~! ㅋㅋ

ㅋㅋㅋㅋㅋ그것도 재능이죠!

전 피아노도 평범한 수준 정도만 치는 것 같고
글도 이젠 요점정리 수준이고...
제이미님 글 보면서 느낄게 많을 것 같네요~^^
(느껴도 실전 전환능력이 없다는게 함정^^)

설령 정리만 하더라도 무슨 요점이냐가 중요하잖아요. ㅎㅎ 주노님 충분히 멋진 글 쓰고 계시구요!

다이어트에 관한 일반적인 조언의 경우, 그래도 지키기만 한다면 일단 결과는 나올 것이다. 그러나 글에 대한 일반적인 조언은 꼭 효과가 있으리란 법이 없다.

다이어트의 일반적인 조언을 충실하게 지켜왔지만...전...........이미 틀렸습니다. 센세이 ㅠㅠ

혹시 그 충실하게 지켰다는 게...견과류 좋다 그래서 많이 먹고, 과일 좋다 그래서 많이 먹고 이런거 아닙니꽈아.

홀덤 댓글에 빵 터짐 ㅋㅋㅋ

원푸드도 해봤고...마녀스프도 해봤고....코어운동도 해보고.............. 왜 다 해봤는데.....저의 몸땡이는 이럴까염 ㅠㅠ 으흨흨흨흨흨

홀뎀은 사랑입니드앙~♥

'살을 빼려면 적게 먹고 운동하라'
다이어트 방법 배우고 갑니다.ㅎㅎ
W시리즈 기대되요

그런거 듣지 마셍. ㅋㅋ 내껀 이건데?

많이 드세요. 한끼만.

수박연어화채?

아 나 어제 또 연어 먹었는데...연어!

w시리즈 응원하며 기대하겠습니다.

기대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

뭐 '타고난게 최고다' 이거죠? 맞게 읽은 거죠? ^0^

뭐 그림이나 음악도 그렇고 다 그렇죠. 근데 그런게 미미하거나 없어도 다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으니 크게 괴로울 것도 없는 듯?! ㅎㅎㅎ

사실 저도 타고난건 못이긴다고 생각하는 사람중의 한명이예용.
아시아 육상선수가 아무리 노력해도 자메이카 중딩을 못이기니깐요...
다만 제가 그 자메이카 중딩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할 뿐... ㅠ.ㅠ

ㅋㅋㅋ 그쵸. 근데 뭐...있는 것 안에서 최선 또는 원하는 만큼을 하면 되는 것이죠!

있는 것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원하는 소고기를 못먹어서.. ㅋㅋ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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