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아버지와 돈가스 그리고 명동

in #kr-pen6 years ago (edited)

안녕하세요. @dmoons.kim 입니다.

이 글은 @kimthewriter님의 PEN클럽 공모전 응모를 위한 일기입니다. 일기라 반말투니 양해부탁드립니다


아버지. 오늘 저녁에 시간 있으세요?

9박 10일 동안 유럽 여행을 가시며 어머니께서 아버지 혼자 계시니 잘 챙겨 달라 말씀하셨다. 여행 가시기전에 어머니가 아버지 드시라고 곰국을 끓여 놓으셨다지만 아버지 혼자 잘 챙겨드실지 걱정이 됐다.

아니. 왜?

저녁에 아버지랑 오랫만에 명동에서 식사 할까하고요.

어. 그래 알았다.

늘 그렇듯 아버지와의 통화는 용건만 간단히하고 끊었다. 동생에게 카톡을 보냈다.

오늘 아버지랑 명동에서 저녁식사 하려는데..

어쩌지.. 요즘 새로운 프로젝트 때문에 바빠..

동생을 탓할 순 없다. 오늘 마침 시간이 나서 갑자기 일을 추진한건 나니까.. 그나저나 아버지와 단 둘이 뭐하나..

오랫만의 명동이다. 명동은 언제나처럼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아버지. 식사 어디로 가실까요?

오랫만에 M돈가스 가보고 싶어.

M돈가스.. 어릴때 가끔 가족 모두가 외식 가던 곳. 그 집 돈가스를 우리 가족 모두 참 좋아했다.

여기 히레가스 두 개요.

그렇게 나온 히레가스는 내 기억보다 작았다. 어릴때 먹던 이 집 돈가스는 분명 크고 두꺼운 고기로 만들었던거 같은데..

이 집 돈가스 좀 작아졌네.

아버지도 같은 생각이신거 같다.

아버지. 요즘 식사 잘하고 계세요?

곰탕 끓여먹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 아내가 곰국을 끓이면 긴장하게 된다는 우스갯 말만 들었지 우리 아버지 얘기가 될지 몰랐다.

아버지 요즘 몸은 어떠세요?

밥을 먹으며 지속되는 침묵이 어색해 건조한 질문을 해본다.

나이드니 온 몸이 아퍼. 예전에 어르신들이 나이들면 온 몸이 아프다더니 그 말이 맞어.

네.

칠순이 넘으신 아버지지만 젊어보이셔서 가끔 아버지 나이를 잊는다.

용인쪽에 납골당이 있다는데.. 거기 좀 주말에 가서 알아봐라. 괴산쪽은 좀 멀어서 가기 싫구나.

아버지는 베트남참전을 하신 분이라 돌아가시면 괴산에 있는 국립묘지에 뭍히신다는 말씀을 하신적이 있다.

그리고 나 없더라도 동생하고 서로 돕고 살고 손주 놈들 끼리도 친하게 지내게 해.

네.

돈가스를 다 먹었다. 내 기억의 돈가스가 아니다.
고기 크기가 예전보다 작고 이젠 너무 평범한 돈가스 맛.

잘먹었다. 오랫만에 먹으니 맛있네. 가자.

아버지라도 맛있게 드셔서 다행이다.

집에 가려고 을지로 입구역 계단을 내려간다.

한걸음 한걸음 조금 힘겹게 내려가시는 아버지를 보니 아버지도 흘러가는 세월을 이길 수 없으시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어릴땐 호랑이같은 아버지라 세상 그 누구한테도 질거 같지 않은 분이였는데..

손주놈 과자 사줘라.

몇 만원을 쥐어주신다. 내 나이에 아버지께 용돈을 받다니.

네.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렇게 아버지를 집에 보내드리고 귀가한다.

귀가길에 어릴적에 크리스마스 이브에 가족들과 함께 명동에 왔던게 떠올랐다.
크리스마스 이브라 명동 바닥이 사람들로 가득찼다.
아버지는 그걸 보여주시겠다며 어린 나를 목마 태워주셨다.
아버지 목위에서 본 크리스마스 이브의 명동은 그야말로 화려한 불빛과 인파로 가득차 있었다.
그날도 아마 돈가스를 먹었지.

이제는 그저 평범해져버린 돈가스 맛이 떠올랐다.
돈가스가 어릴적 그 맛이면 좋았을걸.
내가 입맛이 까다로워진걸까 돈가스가 변한걸까?

아버지 잘들어가셨어요?

귀가하고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어 그래. 오늘 돈가스 맛있게 잘먹었다. 잘자라.

네. 아버지. 저도 돈가스 맛있게 먹었어요. 안녕히 주무세요.

오늘은 왠지 쉽게 잠이 올거 같지 않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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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글한 아버지와의 이야기네요.
추억이 서려있는 음식집은 추억을 먹으러 가는 느낌이에요.
돈까스의 맛은 변했지만 두분 모두 그대의 기억을 드신 것 같네요.
그래서 그 괴리감에 더 아련하고 아쉬운 느낌입니다..

네 저 돈가스 집은 꼬마 시절부터 가족과 함께 가던 곳인데 맛이 기억만큼 맛있지 않아 다소 아쉬웠던거 같습니다.

굉장히 커보였던 부모님이 점점 늙어가고 있음을 깨달을때면.. 맘이 아파요 이제는 제가 부모님을 지켜드려야할 시기가 된거같아요.
아버지와 함께 드신 돈가스. 계단내려가는 뒷모습.. 오래 기억에 남으실거 같아요

네.. 특히 저희 아버지는 정말 호랑이 같으셨어서 더 마음이 아픈거 같습니다
이제는 아들녀석과 영상통화 하는 모습 보면..
나도 어렸을때 아버지가 저렇게 이뻐해주셨겠지란 생각이 듭니다.

담담한 문체에 깊은 울림이 담겨있네요
문스님 잘하셨어요...!!

왠지 부끄럽네요 :)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스팀잇에 들어오자마자~돈까스가 눈에 들어오네욤^.^
그런데~글속내용이~가슴뭉클!! 눈물찡!!
부모님 생각이 나네요 흑; ;

명동에 가서 아버지 모시고 오랫만에 부자간에 둘이 식사하니
아버지 늙으신 모습도 보이고 해서 써본 글입니다.
늘 잘해야지 하는데 생각만큼 안되네요.

담담하게 쓰셨어도 슬프네요.. ㅠ

근데 저 돈가스집은 그릇이 코렐이네요. 식당용 식기가 아니고 ^^;;;;

역시 @mimistar님은 날카로우십니다 :)
저기는 나름 전통이 있는 집이라 그런지 저렇게 코렐에 주더라고요 ㅎㅎ

맞아요..
부모님한테 잘해드려야 될거같아요 ㅠ

네 그런거 같습니다.
어느새 나이드신 아버지를 보니 마음아프더군요ㅜ

찡하네요. 여운이 깁니다..

네 좋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나이 들어가는 건 쉽게 알아도 정작 부모님 연세 드는 건 쉽게 간과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제 나이만 생각하고 제 나이 먹으면 부모님도 나이드신다는걸 잊고 산듯 합니다.

돈가스는 아마 그대로일꺼예요
사람이 자꾸 나이 들고 변해가는것 같아 슬프네요

네 돈가스는 아마도 그대로겠죠?
사람이 나이들어가고 변해가는건 늘 아쉬운거 같습니다

정말 유명한 집들.. 오래된집들 있잖아요. 막상 가보면 사실 맛은 뭐 그리 특별한거 없구 그래요. 근데 거기 깃들어 있는 추억이 있어서 맛도 특별해지는거겠죠 :)

네 오래된 집들은 맛보다는 거기에 남아 있는 추억들이 소중한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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