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국 현대사" 1 - 서문과 프롤로그

in #kr-history6 years ago

유시민 작가의 "나의 한국 현대사"를 읽으며
나 나름의 이 시대 현대사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나의 한국현대사"를 펼치며...
https://steemit.com/kr-book/@yhoh/7sfjpt

오늘은 그 첫번째 시간이다.

서문 - 위험한 현대사

모든 역사는 '주관적 기록'이다. 역사는 과거를 '실제 그러했던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방송뉴스와 신문보도가 현재를 '실제 그러한 그대로' 전해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예컨대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보여주는 2014년의 대한민국은 큰 차이가 있다.

역사가 주관적 기록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런데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보여주는 2014년의 대한민국
큰 차이가 있다는 유시민 작가의 말은 반만 맞는 듯 하다.

과거 우리는 "안티조선" 운동을 전개했다.
그와 함께 "낙선운동"도 참 많이 했었다.
일부 성공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는 실패라고 평가한다.

거악의 침몰은 의외의 곳에서 나타났다.
"스티브 잡스와 아이폰"

2007년 아이폰의 등장과 그 이후의 상황은 모두가 알 것이다.
현재의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주화는 아이폰이 없었다면
스마트폰의 혁명이 없었다면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보여주는 2018년의 대한민국은 어떤가?
과연 차이가 있는가?
왜 내 눈에는 그다지 큰 차이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역사 중에서도 현대사는 특별히 민감하다.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은 현재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 주역들이 살아 있는 경우가 많다.

현대사는 "나의 역사"이다.
유시민의 책 제목 역시 "나의 한국현대사"이다.

현대사는 바로 내가 포함된 역사이기 때문에 특별하다.
내가 살아 숨쉬는 역사, 역사서에 담아내져 있지는 않지만
그 역사 속에 내가 있었다.

그래서 "나"를 빼고 현대사를 논할 수는 없다.
이 연재에서도 결국은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 국민들은 베트남전쟁 파병이 정치적, 도덕적으로 정당한 행위였는지 여부에 대한 토론을 기피한다. 국군이 베트남에서 민간인을 학살한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이 많다. 일본에 대해서는 잘못된 과거사를 직시하고 반성하라고 하면서도, 우리 자신의 잘못된 역사를 직시하고 반성하는 것은 완강히 거부한다.

당시 우리나라는 거의 미국의 식민지였다.
적극적인 전투병 (용병?) 파병과 전쟁은 필연적 결과를 가져온다.

"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은 분명 잘못한 일이다.
부정할 수도 없고, 당연히 반성을 해야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사과"를 하는 것은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니다.

베트남이 공식적으로 사과를 요청해 온다면 당연히 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이 사과하지 않는데 우리가 먼저 나서서
사과를 하는 것은 외교적인 마찰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유감"의 표명만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언젠간 진심으로 "사과"하고 미래를 함께할 수 있는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

1959년부터 2014년까지 55년을 다루었으니, '현대사'보다는 '현재사' 現在史 또는 '당대사' 當代史가 더 적합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나는 냉정한 관찰자가 아니라 번민하는 당사자로서 우리 세대가 살았던 역사를 돌아 보았다. 없는 것을 지어내거나 사실을 왜곡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나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사실들을 선택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인과관계나 상관관계로 묶어 해석할 권리는 만인에게 주어져 있다. 나는 이 권리를 소신껏 행사했다.

나와 유시민의 역사에 겹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내가 어리기 때문에 유시민의 어린시절은 나의 역사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1970년부터는 그와 나의 "공통의" 역사이다.

그가 번민하는 당사자였던 것처럼 나도 번민하는 당사자이다.
그가 소신껏 행사한 "인과관계나 상관관계로 묶어 해석"한 부분
나 또한 소신껏 해석해 보려고 한다.

많은 공부를 한 학자이자 탁월한 언변의 작가인 그이지만
부족한 나의 눈에도 잘못된 부분이 보이고
그에 대한 나의 의견이 때론 틀릴수도 있겠으나
온전히 나의 시각에서 바라본 것이기에 의미있는 작업이라 판단한다.

나는 한국현대사 55년에 대해 '제한적인 자부심'을 느낀다. 내가 한국현대사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오로지 빛나는 승리와 영광의 기록이어서가 아니다. 그런 역사는 어디에도 없다.

유시민 작가와 나의 본질적인 차이가 여기에 있다.

그는 '제한적인 자부심'을 느끼지만 난 "온전한 자부심"을 느낀다.
우리는 승리해 왔고, 계속 승리할 것이다.

난 우리의 역사가 승리와 영광의 역사라 자부한다.
그런 역사가 어디에도 없다고 했지만 역사는 원래 "승리의 기록"이다.

일시적으로 패배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온전한 패배가 아니다.
최종의 승리가 완전한 승리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승리한 듯 보이지만, 언제든 패배할 수 있다.
"끊임없이 진보해 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역사라 할 것이다.

백범 김구 선생님의 "문화의 힘"을 읽고 가자.

"나는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가장 '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의 부(富)력이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强)력이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큰 행복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프롤로그: 프티부르주아 리버럴의 역사체험

흐름 속에 있는 것은 사건만이 아니다. 역사가 자신도 그 속에 있다. 어떤 역사책을 집어들 때, 책 표지에 있는 저자의 이름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출간 일자나 집필 일자도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 것이 때로 훨씬 많은 것을 누설한다. - 에드워드 H. 카, "역사란 무엇인가"

책을 읽으면서 그 책이 쓰여진 시기를 모른다면
그 책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이 책이 발간된 시기는 2014년이다.
지금은 2018년이고, 남북 평화회담이 개최되기 일보 직전이다.

만약 지금 유시민이 이 책을 다시 쓴다면
아마 많은 내용을 바꾸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유시민은 그때, 문재인 대통령의 시대도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고
촛불 혁명의 흐름 또한 알 수 없었을 것이고,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들이 감옥에 가는 것을 알수도 없었을 것이다.

남북간의 북미간의 회담... 수교까지 진행될거라는 이 흐름
과연 2014년도에는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예상하기 어려웠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하겠다.
살짝은 "용서하는" 마음으로 ^^

나는 1959년 7월 태어났다. 어머니는 나를 낳은 직후 정오 사이렌을 들었다. 그때는 시계가 없는 서민들을 위해 정부가 열한 시 반과 정오에 사이렌을 울려주었다. 병원들이 돈을 주고 피를 사던 시대. 너무 가난해서 피 말고는 팔 것이 없었던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혈액형을 알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이 시대가 상상이 되는가?
라이오, 텔레비젼이 없는 것은 고사하고
시계마저 없어서 시간조차 알수 없는 시대...

피를 팔 생각이 없거나 팔아본 적이 없는 사람은
굳이 자신의 혈액형을 알지도, 알아야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던 시대

일제시대의 만주에서의 이야기, 625 전쟁에 대한 이야기
아버지 어머니께 그 옛날의 시절 얘기를 아무리 들어도
우리는 그 시대 그 분들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어려운 어린 시절을 살아오고,
대학은 고사하고, 한글을 깨친 것만으로도 대견하다 여길 수 있는
그런 시대를 살아오신 분들과의 대화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난 그분들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어쩌면 유시민조차도 나와는 다른 인생을 산 것이리라.
그래서 그도 조금은 이해하리라 마음 먹었다.

"프티부르주어 계층의 대구, 경북 출신 지식 엘리트로서 젊은 나이에 이름을 알리고 출세를 했지만 결국 정치에 실패한 후 문필업으로 돌아온 자유주의자" 나는 나를 그렇게 규정한다. 역사책을 읽을 때는 글쓴이가 어떤 사람인지 먼저 살피는 게 좋다. 모든 사회가 그러하듯 대한민국도 여러 얼굴을 가진 매우 복잡한 사회이며, 내가 보고 경험하고 연구한 것은 그 일부일뿐이다.

작가라 불리길 좋아하는 사람.
토론을 즐기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노무현 대통령의 말처럼 '유시민'은 정치와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다.
자유주의자인 그에게 강단도 사실 어울리지 않는다.
썰전의 토론자, 알쓸신잡의 패널이 아마도 딱 맞는 옷일 것이다.

유시민 -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9C%A0%EC%8B%9C%EB%AF%BC

이 책을 읽으면서 유시민의 인생 역정을 자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본인 말처럼 "글쓴이가 어떤 사람인지 먼저 살피는 게 좋다"고 하니
유시민에 대해서 자세히 알면 알수록 더 좋지 않을까 한다.

"정치에 실패한 후"

그가 꾸었던 꿈은 무엇이었을까?
개혁당의 꿈과 실패,
열린우리당의 꿈과 실패,
국민참여당의 꿈과 실패,
마지막으로 통합진보당의 꿈과 실패...

나는 유시민을 좋아한다.
그의 국회의원 첫 등원의 그 빽바지를 잊을수가 없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때 단상에서의 그의 울부짖음을 잊을수가 없다.

그의 정치 역정이 그는 "실패"라 규정하지만 아니다.
도전이었고 좌절이 있었지만 그는 우리나라 정치 발전에 밀알이 되었다.

2012년 12월 박근혜 후보가 제 18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시민들은 승리를 맘껏 즐기지 않았으며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시민들은 패배를 선선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구와 경북 일부 지역 말고는 축제를 벌이는 곳이 없었고 온라인 공간에는 탄식과 분노가 쏟아졌다. 철학자 헤겔의 주장,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며 그 이유를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하는 것이 지식인의 할 일이라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라는 '현실'을 '이성적'으로 설명하려면 투표소에 가서 그에게 표를 던졌던 1577만명의 행위동기를 들여다 보아야 한다. 그들은 도대체 어떤 소망과 감정과 기대를 실어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했던 것일까. 감정적 호불호好不好가 때로는 이성적 판단과 합리적 손익계산을 압도한다.
고령 유권자들은 빈손으로 노후를 맞았다.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이 그 삶과 시대를 인정받으려는 소망을 표현하는 적절한 방법은 아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2012년 12월에는 그것 말고는 적절한 표현 방법이 없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이 가설로 2012년 대선 결과를 어느정도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2012년 대선 결과를 이성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안타까운 "몸부림"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죄에 대해 심판을 받고 감옥에 있기 때문에
이제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가지고 어떤 가설을 세우고
설명을 하는 것이 참으로 공허하게 느껴진다.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이 그 삶과 시대를
인정받으려는 소망을 표현하는 방법"이라는 가설은 매우 달콤하다.
나는 좀 다른 말로 설명한다. 바로 "내편인가 네편인가"이다.

선거의 결과는 2가지로 분석하면 대체적으로 맞는다.
2가지가 무엇인가 하면 "내편인가 아닌가와 돈"이다.

내편인가 아닌가를 가르는 진영논리
이것은 정치의 큰 틀을 규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박근혜를 찍은 이유는 그녀가 불쌍했기 때문이다.
그럼 불쌍한 사람은 다 찍냐? 하면 당연히 아니다.
다만 그 불쌍한 사람을 "나"로 느끼는 것이 다른 것이다.

고령 유권자들은 박근혜와 자신을 동일시 한다.
내편이라 느낀다. 하지만 문재인은 내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돈도 상당한 역할을 한다.
"문재인이 당선되면 우리에게 돌아올 돈을 북한에 다 퍼줄것이다."
그들은 실제로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이것은 전혀 이성적 사고가 아니지만 그들의 생각을 바꾸긴 참 어렵다.

그렇다면 박정희 시대가 승리했고 김대중, 노무현의 시대는 패배했는가? 그렇지 않다. 후보와 정당들은 승패를 갈랐지만 국민들은 52:48의 비율로 둘 모두를 긍정했다. 나는 그 선거 결과를 역사의 퇴행으로 규정하는 일부 지식인들의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

52:48의 비율로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국민들이 모두를 긍정한다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세대간의 극명한 선거 결과로 이를 세대간의 대결이다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난 매우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생각한다.

젊은이가 노인보다 더 진보적인 것은 당연하다.
젊은이는 가진 것이 없다. 하지만 미래가 있다.
기득권이 없으니 잃을 것도 없다.

박근혜의 당선은 "역사의 퇴행"이 맞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박근혜가 당선될 수 있는 상황이
민주주의의 발전이고 역사의 가르침일지도 모른다.

슬프고 가슴아파했던 그 에너지가 모이고 모여서
결국 오늘의 평화를 가져다 주고 있는 것이니까.
역사의 아이러니는 늘 계속된다.

image.png

역사전쟁에는 분명한 주체가 있다. 하나는 516과 산업화 시대를 대표하는 세력이다. 그들은 한국 사회 모든 영역의 상층부를 장악한 채 단단하게 결속해 있다. 그들은 '근대화세력', '산업화세력', '보수세력', '애국세력'을 자처하지만 정치적 반대 진영에서는 '유신잔당', '5공 잔재세력', '특권세력', '냉전세력' 또는 '수구꼴통'이라고 부른다. 1998년 2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정치권력 하나를 빼앗긴 적이 있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악몽으로 남아있다. 다른 하나는 419, 518과 민주화시대를 대표하는 세력이다. '민주화세력', '양심세력', '진보세력'을 자처하지만 반대진영에서는 '빨갱이', '좌경용공', '종북좌파'라고 부르는 이 세력은 한국 사회 모든 영역의 낮은 곳에 흩어져 있다.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대결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한다.
말만 다르게 표현했을뿐 결국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라는
전통적인 도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진보와 보수"로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때때로 합리적으로 현상을 설명할 수도 있지만
사실 "보수"라는 것은 "환상"이자 "신기루"이다.
보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수는 없지만
"보수 이념"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명확하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
우리나라 보수의 대통령들의 이름이다.
이들을 어떤 이념으로 묶을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이념은 어떤 고리타분한 강령같은 것이 아니다.
그들 사이에 어떤 통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이념이다.
이들 간에 서로 통하는 것이 있을까?

같은 당의 소속이라는 것 말고는 비슷한 것도 없다.
어쩔때는 이전 정권의 목표와 180도 다른 것을 염치없게 주장하기도 한다.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문재인은 연결되어 있다.
아마도 문재인 이후 민주당에서 정권을 잡는다면
그가 누구일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보수 이념"은 없지만 "보수"는 있다.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심리에 작용하는 가장 큰 것은 무엇일까?
바로 "두려움"이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강자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나 자신을 "약자"로 규정하고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데
가장 "강자"들이 모여있는 정당에 투표한다.

왜일까?
나를 약자로 규정하는 사람들은 "강자"가 되고 싶어한다.
아니 강자가 되고싶다기 보다는 강자의 지배를 받고 싶어한다.
이들이 독재자를 원하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한국현대사는 이 두 세력의 분투와 경쟁의 기록이다. 때로 피가 강물처럼 흘렀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가까운 미래에 종결될 가능성도 없다. 대중이 둘 모두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서로 적대적인 두 세력과 그들이 대표하는 두 시대를 모두 인정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산업화시대와 민주화시대는 모두 우리의 과거다. 대한민국은 박정희의 시대와 김대중, 노무현의 시대를 거쳐 여기까지 왔다. 둘 중 하나만을 긍정한다면 역사와 현실의 절반을 부정해야 한다. 이것이 온전한 역사인식과 현실인식일 수는 없다.

유럽에서 '마녀사냥'이 엄청나게 일어났던 일이 있었다.
마녀사냥이 일어난 이유는 뭐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난 기본적으로 인간 본성 중의 하나인 '왕따'와 연관지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부분은 마녀사냥이 일어난 원인이나
얼마나 잔혹했는가 뭐 그런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도대체 마녀사냥은 "어떻게 끝나게 되었을까?" 하는 부분이다.
또 다른 하고싶은 말은 "과연 끝났을까?" 이다.

중세의 잔혹한 마녀사냥은 끝났다.
국민들이 각성해서 이러면 안되지 하고 결심해서 끝난것이 아니다.
기술 발전으로 근대화의 영향으로 압도당했기 때문에 끝난 것이다.
결국 과연 끝났을까? 하는 질문의 답변은 "아니다"일 수밖에 없다.

인간은 교화되는 것이 아니다. 제압되는 것이다.
힘에 굴복하는 것이다.

"대중이 둘 모두를 인정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껄끄럽다.
대중은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다.
강자에게 제압될 뿐이다.

진보가 이기려면 강해져야 한다.
논리적으로 맞고, 진보가 더 깨끗하고,
정당하기 때문에 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어리석다.

유시민 작가는 "둘 중 하나만을 긍정한다면
역사와 현실의 절반을 부정해야 한다.
이것이 온전한 역사인식과 현실인식일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틀렸다.

보수가 이겼을 때는 역사가 퇴보하고 있는 때이다.
진보가 이겼을 때는 역사가 다시 전진하는 때이다.
끊임없이 이를 반복한다.
하지만 결국은 진보한다는 그 방향성은 분명하다.

보수세력이 늘 보수인 것은 아니다.
보수세력이 진보할 때 그들이 이겼고
진보세력이 보수할 때 그들은 졌다.
진보는 늘 이겼다.

진보의 형태는 시대 상황에 따라 계속 달라진다.
달라지는 진보의 형태를 쫓아가지 못하는 정당은 진다.

진짜 "진보"라고 주장하는 진보정당이 계속 지는 이유는 뭘까?
그들은 스스로를 약자라고 여긴다.
이기고 싶은 마음 자체가 없다.

과거의 이념에 매몰되어 있는 것 자체가 보수다.
과거의 진보 가치가 현재도 진보인 것은 아니다.

진보는 계속 진화한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은 당연하다.

역사는 주관적인 기록이다. 누가 쓴 어떤 역사도 과거를 '원래 그러했던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과거는 거대한 임시수용소와 같다. 흐르는 시간에 실려와 퇴적된 모든 사실이 그곳에서 망각과 소멸의 운명을 기다린다. 어떤 역사가가 내민 구원의 손길을 잡은 소수의 사실만이 요행히 그 운명의 집행을 잠시 유예받는 '역사적 사실'이 된다. 역사적 사실 그 자체가 객관적인 진리를 이야기한다고 믿는 것은 순진한 착각일 뿐이다.

이 책의 나머지는 유시민이 내민 구원의 손길을 잡은
"소수의 사실"이 역사적 사실로 변화된 내용이다.

나는 그 손길에 살짝 나의 손도 얹으려 한다.

"자기의 사실을 가지지 않은 역사가는 뿌리 없는 풀과 같고"
"자기의 역사가가 없는 사실은 죽은 것이다."


서문과 프롤로그이고 전체적인 관점과 사상이 담기다보니
내용도 길어지고 조금은 딱딱한 포스팅이 되고 말았다.

다름 포스팅부터는 좀더 '재밌어'져야 할텐데...
근원적으로 유머러스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니...
어떻게 이어갈지 난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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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재미있는 글 부탁해요~!!!!

감사합니다. ^^

서문과 프롤로그만으로 이정도 얘기가 나오다니, 대단한 책이고 대단한 @yhoh님이십니다. 다음 글이 기대되네요. ^^

서문 프롤로그라서 좀 심각하게 넓은 얘기를 장황하게 한 듯 합니다.
다음 글부터는 조금 좁은 영역에서 다양한 것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려운 길을 택하신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저로선 감히 엄두도 못 낼 길이기에.......
스팀잇은 그렇게 님의 발 길을 따라 넓어지겠죠.
응원하겠습니다.

끝이 어떻게 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한 1년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그저 오늘도 한걸음 걸을 뿐이죠

과하게 드리는 말씀일 수 있으나
님의 발 끝 선에 따라 스팀잇이 넓어질수록
제가 스팀잇에서 쓸 수 있는 시가 많아집니다.
물론 제 시가 나아가는 발 끝 선도 넓어져야 되겠죠.
서로 힘내서 걸어가 보아요.

방대한 작업을 시작하시는군요^^
응원합니다.

한 가지 마음에 두시면 좋을 내용은
블록체인이 역사 변화에 큰 몫을 담당할 거라는 거지요^^

감사합니다.
이 책에는 아마도 블록체인 얘기는 안나오겠죠 ^^
유시민도 구세대 노땅이라서 ㅋㅋ

충분히 잼있는 글입니다^^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다지 재미는 없는데 ... ㅠㅠ

진보는 늘 이겼다
진보는 계속 진화한다

다음 포스팅도 기대할게요:)

진보라는 개념의 진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보가 마르크스의 주장에서 멈춘 것은 아니니까요
블록체인 혁명조차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를 그 누가 진보라 말할수 있겠습니까
유시민도 보수?

저는 진보라는 개념보다 조화라는 개념이 더 좋은거 같습니다. 굳이 진보를 이야기한다면 진보이건 보수이건 좀더 덜 탐욕적이 되어가는 의식의 진화를 바랄뿐이죠. 사회와 시대가 바뀌려면 개인-개인의 의식-집단의 의식(문화)-사회 시스템 이 네가지가 균형을 이루어 발전해야 온전한 역사가 이뤄지리라 봅니다.

맞습니다. "균형을 이룬 발전" 그것을 진보로 표현할 뿐이죠.
사실 우리의 언어라는게 너무 부족해서
과거의 생각이 고정된 단어에 매몰되면 안되겠지요^^

이런 좋은 글에 댓글이 없다니요
풀봇 안드릴 수 없네요
저는 유시민 샘 책은 그냥 끄덕이면서 읽게 되는데..
생각해보니 정말 그사이 몇년동안
우리 역사에 어마어마한 사건들이 일어났네요
촛불이후에 쓰여진 책이라면
또다른 통찰이 들어갔지 않을까 싶어요.
요즘 패널로 나와서도 보면
갈수록 거시적으로 보려하시는 듯해서요..ㅎㅎ
잘 봤습니다.
대의 민주가 깨어날수록 조악한 것들은 물러나리라 믿습니다.
늘 느끼지만, 그 시대를 어쩌겠는가 싶네요..

감사합니다. ^^
유시민과 대화하면서 현대사 전반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에게 있어 유시민 작가를 통해 정치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진건 사실입니다. 스팀잇을 통해 이렇게 좋은 글, 좋은 꿈, 좋은 분들을 만나게 되어 기쁨니다. 앞으로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너무 격한 칭찬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전공이 그쪽이다보니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우리의 현대사가 아픈 부분이 많지만 공부를 해야하는건 맞습니다^^ 다음편도 기대하겠습니다

너무 급하지 않게 천천히 좀 자세히 해보려고 합니다.
조금 늦게 진행되더라도 뭐 어떻겠습니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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