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머드 사냥꾼의 피 - 인간은 왜 비디오 게임을 즐기는가.

in #kr-game6 years ago

pg.jpg
인간이 가진 모든 본성은 필요에 따라 형성된 성질이다. 인간이 빛을 바라보면 눈이 부신 이유는, 광자가 눈부심이라는 속성을 지녀서가 아니라 빛을 정면으로 바라보는게 안구건강에 좋지 않기에 빛을 직접 바라보는걸 피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쾌락이 있는 이유도, 인간이 쾌락을 느끼는 활동들에 그러한 성질이 자연스레 깃들어 있는게 아니라 쾌락을 통해 그 행동을 지속할 유인을 얻어야 했기에 가지고 있다.

인간은 문명을 이루었지만, 현대문명 하에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원시인류의 본성은 그대로 남아있다. 인간은 스스로를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넣었을 때 쾌락을 느낀다. 극한의 상황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느끼는 쾌락이기도 하며, 극한의 상황을 이겨냈을 때 돌아올 보상을 위한 쾌락이기도 하다. 보상 자체가 쾌락을 주는게 아니라, 쾌락을 통해 인간에게 유인을 제공하는 것이다.

매머드 사냥은 인간을 극한으로 몰아넣는 대표적인 활동이었다. 사냥꾼들은 오래토록 떠나있어야 했으며 표적을 찾아야 했다. 표적의 행동반경을 분석하고 세심하게 계획을 세운다. 실패는 죽음이다. 혼자만의 죽음이 아니라 동료사냥꾼들의 죽음이며, 주거지에 남은 후손들에게 제공할 단백질이 부족해진다. 이처럼 매머드 사냥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전형이었다. 인간은 다양한 본성들로 이를 해결했다. 극한의 상황을 버텨내고, 목표에 전념하고, 안타깝게도 아랫배에 에너지를 비축했다. 간헐적 보상에서 더 많은 만족감을 느끼기도 한다. 아마 셀 수 없이 많은 본성들이 우리를 매머드 사냥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본성들은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있다.

문명은 우리가 본성을 고상하게 해결하도록 유도했다. 인간이 원시적인 방법으로 본성을 해소하는건 인류 종의 관점에서 치명적이다. 그래서 인간이 만들어낸게 스포츠다. 과거의 인간이 본성에 대한 이해가 투철했던게 아니라, 목숨을 아끼면서도 본성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자연스레 찾아냈다. 아마 목숨을 경시하며 본성을 해소하던 문명들은 발전하지 못 했거나, 멸망했을 것이다. 그리고 스포츠의 계보를 이어 비디오 게임이 탄생했다. 비디오 게임을 스포츠로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 특히 남성의 본성을 해소하는 방식에 있어 스포츠와 비디오 게임이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즐길 때의 이야기다. 우리는 이틀에 걸쳐 20시간동안 하나의 보스를 공략했다. 마침내 공략에 성공하고, 공대장은 소리를 지르고 부공대장은 울었다. 처자식과 생업이 있는 사람이 목이 쉬어서 꺽꺽거리며 울었다. 말이 20시간이지, 서로 없는 시간까지 쪼개가며 추가일정을 잡기도 했다. 그렇게 한달 남짓을 미친듯이 보낸다. 그리고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수개월간 일상을 보내고, 다시 모인다. 한달을 같이 보낸다. 나는 그 사람들의 삶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게 아니기에 그 활동이 삶의 만족도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도, 본성을 쏟아내고 돌아간 일상이 어땠는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끓어오르는 매머드 사냥꾼의 피를 식히기 위해서는 꼭 필요했던 활동이 아닐까?

전세계적으로 게이밍의 규모는 확대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게임대회의 상금은 2000만 달러를 넘기고 최상위 프로게이머들의 연봉은 수십억에 달한다. 반면에 순수한 경쟁적 게이밍을 즐기는 분위기는 갈수록 잦아든다. 세상살이가 너무 각박해서 매머드 사냥꾼들의 후예들이 피를 식히지 못 하고 마냥 부글부글 끓고 있는건 아니길 바란다.


오늘도 아무말 대잔치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Sort:  

Cheer Up! 무슨일인가요? 사람들 반응이 엄청나네요?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Interesting post! Now your post is listed in trending!

Learn more about how to keep your post on trending page / https://steewit.com/steemit/@hitmeasap/how-to-reach-the-trending-pages-posting-101

e-sports 관련 산업을 한국에서 중국으로 수출하려 했었지요. 조금 덜 익은 삶은 달걀처럼 조심스레 다뤘지만 삶은이나 먹을이가 부주의한 탓에 결국 깨져 바렸답니다. 곧 뺏길 저력을 너무 믿은 것도 안타까움이었구요~^^

예전에 이스포츠와 중국 관련해서 이야기 나눈적 있었죠 ㅎㅎ

네, 기억 하시는군요~^^
세상에 어려운 일이 참 많은데, 서로 낯설은 이들이 북적이는 장터에서는 살 사람과 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으니, 소진되는 에너지 탓만은 아니겠죠?

세상에 쉬운 일이 잘 없지요. 하지만 한번의 아쉬움을 계속 안고 가실 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실패는 곱씹는 것에서 그치고 미래로 가야죠.

@kimlee 님도 와우를 하셨구나~~^^; 반전이였습니다 ㅋㅋㅋ

꼭 게이밍 얘기만 하면 안 어울린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ㅋㅋㅋ

감사합니다. 이 글은 제 와이프님께 읽히게 될 예정입니다 ㅋㅋㅋ

더 열심히 써야했네요. 꼭 부인께서 남성에게는 게임이 꼭 필요하다는걸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야성을 해소하는 활동 중에는 가장 싸게 먹히는게 게임 아닙니까 ㅋㅋㅋ

다음엔 혹시 조기축구의 필요성 같은 내용으로 하나 부탁드려도 될까요?ㅋㅋㅋ
맛점하십시오 : )

비디오게임의 선조가 조기축구니 당연히 같은 맥락에서... ㅋㅋㅋ

감사합니다 이 댓글도 와이프님께 읽힐 예정입니다
~+_+~

음.. 인터넷 마녀사냥식의 여론몰이가 쉬운것도 어쩜 매머드 사냥꾼의 본능이 키보드를 통해 쉬이 들어나는 것일수도 있겠군요. 이상 아무말 댓글잔치를 마쳐봅니다.. ㅋㅋ ^^

종교만큼 강력하게 사람을 움직일수 있는게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쳐 생각하지못했는데 사냥이라는 원시적인 본능을 현대사회에서 게임으로밖에 풀길이 없는것이었군요 ~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현실세계의 마음에 안 드는 보스도 20시간동안 협력해서 잡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직도 세상에 잡고 싶은 메머드들이 많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인간이 극한 상황에서 쾌락을 느낀다는 구절을 보고 어느 마라톤 선수의 말이 생각납니다 42.195란 길고긴 거리를 뛴다는 극한 상황속에서 달리고 달리다 보면
어느순간 강한 쾌감이 느껴지기 시작한다고 하더군요 긴 고통속에 무언가 정화가 되어진 걸까요
극한상황을 이겨낼 정신력이 부러워집니다BandPhoto_2018_02_26_21_53_00.gif

아이들이 야채를 안 먹는 이유는 원시시대에 독초 등으로 겪은 수 많은 Lessons Learned의 결과이고 고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검치 호랑이 등 포식자들에게서 힘껏 달아날수 있는 순발력과 지구력을 꾸준히 체내에 보유하기 위함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첨단기술로 엄청난 발전을 이룬 지금도 우리의 DNA속에는 그 옛날의 기억이 녹아 있는 건 아닐까요?
각박한 삶 속에 판도라 상자의 마지막 ITEM이었던 희망!!! 우린 어찌보면 참 단순한 생물이 아닐까요? 감사합니다.

인간은 아직도 그 시절의 유전자를 갖고 있죠.

Coin Marketplace

STEEM 0.20
TRX 0.12
JST 0.028
BTC 64078.16
ETH 3471.05
USDT 1.00
SBD 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