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한스티미언- 첫경험] 눈과 코를 따갑게 했던 그 연기

in #kr-funfun7 years ago

안녕하세요. 뻔뻔한 스티미언 태그에 첫 글을 쓰는 @daegu입니다. kr-funfun 태그의 글을 읽다보니 다양한 ‘첫 경험’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좋네요. 저는 어릴적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일기글이 습관이 되어있어서 본문 내용은 평어체로 작성하려고 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나는 80년대 초반에 경상도 중소도시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몰랐는지, 정말로 그랬는지 내가 자라는 내내 동네에는 격년에 한 번 시내에서 열리는 시덥잖은 축제를 제외하고선 행사가 없었다. 다시 기억을 더듬어도 가끔 동네 대학생들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걷는 것 외에는 특이한 구경거리가 없었다. 머리숱이 없는 사람이 대통령을 하던 시기, 나는 학교 마치고 오락실에 잠깐 앉아 있다가 학원을 한 군데쯤 다녀와서는 괴성을 지르며 친구들과 골목을 뛰어다니던 생활에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데모’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아마도 평소와 똑같이 동네 공터를 뛰어다니고 장난감 총을 들고 골목 구석에 숨어 있다가 괴성을 지르며 뛰어다닌 후 어둑한 초저녁에 집으로 걸어들어가던 중이었을 것이다.

동네 할머니들은 동네 ‘연쇄점’ 앞 의자에 앉아 데모가 언제인지 서로 물으며 수근거렸고, 어른들의 세상에 관심이 많던 친구는 여기저기서 들은 말을 교실에서 떠들었다. 경찰이 어쩌고 대학생이 어쩌고. 우리집이 있던 주택가는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학교를 마주보고 있었고 많은 친구들이 나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선생님이 ‘오늘은 데모 있는 날이니 밖이 시끄러울꺼다. 쏘다니지 마라’고 말씀하셨던 것 같다. 그게 뭔지는 알아볼 생각은 하지 않고 하지마라고 하니 더 밖에서 놀고 싶었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던 탓에 농한기마다 시골에 계시던 할머니가 우리 집에서 기거하시며 나를 돌봐주셨는데 하교 후 보통은 된장찌개, 나의 요청이 있는 날은 드물게 라면을 ‘삶아’주셨다. 그 날은 할머니께서 푹 ‘삶아’주신 라면을 맛있게 먹으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다. 어쩌고 저쩌고 누가 오늘 숙제를 안 해서 야단을 맞았고 친구가 싸온 점심도시락의 쏘세지가 맛있었으며 오늘은 저기 다리쪽에서 데모를 한다는 내용.

할머니는 눈을 크게 뜨며 되물으셨다. “사람 많이 온다더나?” 선생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는 초등학교 저학년의 반응이야 뻔했다. “사람이 많이 오니까 조심하라고 말씀하셨지 않으셨을까요.” 짧은 대화 후 밖을 나갔지만 친구들이 별로 없었다. 가끔 그런 날이 있었다. 밖에서 놀기 좋은 날인데 왠일인지 아이들이 없는 그런 날. 고등학교 야간자습시간에 감독 선생님 몰래 소곤거리던 소리가 뜬금없이 갑자기 조용해지는 그런 순간처럼. 술래잡기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진놀이 등 무얼하기에도 사람 수가 부족한 상황이라 그냥 집으로 들어가 힘없이 앉아 있었다.

보다 못한 할머니가 소풍을 가자며 돗자리를 챙기셨다. 내 손을 잡고 ‘야야, 우리 데모 구경가자’는 말씀이 너무 반가워 웃으며 따라나섰다. 집 바로 옆에 있는 ‘서울슈퍼’에서 과자와 음료수도 좀 샀다. 가게 주인이 ‘어디 좋은데 가시나봐요’라고 묻는 말에 나는 ‘돗자리 들고 데모 구경’간다고 답했고 할머니와 가게 주인과의 뻔한 대화가 이어졌고 나는 그날 집 거실에서 과자와 음료수를 실컷 먹었다.

데모 구경 간다고예?
예, 얼라가 너무 심심하다 해서 구경갑니더.
데모하면 최루탄터지고 난리날낀데 그걸 애 델꼬 우째 갑니까.
최루탄이 뭔교?
독한 연기가 나는긴데 눈도 못뜨고 콧물도 줄줄납니더, 거기 델꼬 가면 안됩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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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pixabay

그리고 그 날, 골목마다 깔린 최루탄 냄새를 반찬삼아 저녁밥을 먹게 되었다. 그 이후 수 개월동안 데모는 지금의 미세먼지만큼이나 동네 사람들의 코를 괴롭혔다. 가끔 어른들 몰래 그 연기를 따라가서 냄새를 맡아보기도 했다. 모기차의 연기와는 전혀다른 그 느낌, 눈과 코를 따갑게 했던 그 연기는 좀처럼 친해지기 힘들었다. 당시 우리 동네는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위의 사진처럼 최루탄 연기가 사람키만큼이나 깔리는 그런 동네는 아니었다. 하지만 링크-오픈 아카이브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정도의 불편함은 수시로 느낄 수 있었다. 대학교 쪽으로 다리를 건너 출퇴근하는 부모님의 늦은 퇴근은 덤이다.

그게 몇 년도였는지, 무슨 사건과 관련된 시위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 기억을 돌이키며 지난 신문을 기웃거려 보니 머리숱 없던 그 사람이, 보통사람에게 권력을 넘겨주는 과정의 일인 듯하다. 한 두 해가 지나서 동네 파출소에는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현수막이 붙었고 나는 처음 보는 단어 ‘마약사범’의 뜻을 어머니께 물었던 것 같다. 어쩌면 이 일은 내 생애 최초로 목격한 민주화 절차인지도 모른다, 그 때의 코막힘 덕분에 지금 자유롭게 투표를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민주주의를 향해가는 과정에 모두가 느낀 진통을 그 때 느꼈다고 하면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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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통이 지나가는 자리에 계셨었군요.^^

매년 굵직굵직한 일들이 터지는걸 보면 하루하루가 역사의 그 자리 같습니다.

보통 사람....ㅋㅋㅋ 개헌이 무사히 통과되었으면 하네요!

ㅋㅋ보통사람 다음엔 갱제를 살리는 분이셨죠. 저희동네에 와서 국제적인 간강도시로 만들겠다는 공약도 하고 갔습니다.

믿어달라던 그 보통사람도.. ㅎㅎ
좋은글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동기가 '욕심'이라고 치면 그 중 권력 욕심을 가진 정치인들은 가장 강한 동기를 가진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구님~ 뻔뻔한 스티미언이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앞으로 우리 뻔뻔하게 놀아보아요^^

감사합니다. 주어진 주제로 글을 쓰려니 백일장 느낌도 나고 재미있네요. 자주 뵐게요.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영화에서만 접하던 일이었는데 ㅎ
앞으로의 활동 기대하겠습니다^^ 팔로 하고가요~

그 동네에서 저보다 2~3년 일찍 태어난 사람들은 더 즐겁게 시위를 즐겼습니다. 지인 중에.. 육교위에서 아래쪽 전투경찰과 시위대의 대치상황을 보며 박수쳤던 기억을 가진 사람도 있더라고요.

와.. 제가 영화에서만 보았던 일들이네요 +_+
민주주의를 위한 진통이라는 말 감동먹고 갑니다..

뭐.. 꼬맹이가 최루탄 연기 마시고 기침이나 했지 뭘 알았겠습니까ㅋㅋㅋㅋ화염병도 보긴 했는데 불붙인 유리병이 이쁘더라는 기억밖엔..

돈 명예 권력 앞에서는 욕심이 생기나 봅니다 초심이 사라져가는 걸 심심하지 않게 보게 되는 걸 보면요

초심은 언제나 지키기 힘들죠ㅎㅎ즐거운 주말 되세요.

초딩시절,,,
어른들이 얼마나 데모를 많이 했는지...
거의 매일 코가 매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 덕분에 우리가 좋은 세상에 살고 있지요. ^^

누군가가 세상을 바꾸고 다른 누군가는 그 혜택을 입게 되는군요. 어릴때라서 최루탄 냄새가 싫지는 않았습니다. 약간의 축제같은 느낌.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보던일이였는데..
그 역사의 현장에 계셨다니 놀랍습니다..

의도하지 않게, 우연히 겪은 경험들 중에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거 좀 귀한 경험이었는데... 싶은게 있더라고요. 즐거운 한 주 되세요.

저도 초중때 어린이 대공원을 갔다 오면 매캐한 연기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정말 격동의 80년대 였던듯..

비슷한 시기를 지냈나봅니다. 그래도 그거 끝나고나면 금방 공기가 좋아진 느낌이었는데 중국발 미세먼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벗어날 방법이 없어서 더 막막하네요. 즐거운 한 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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