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ML 짜던 시절에서 스팀잇까지: 나의 SNS 유랑기?

in #kr-essay7 years ago (edited)

스팀잇이 기존 블로그보다 좋은 이유는 내 글을 읽고 좋아요를 누르고 덧글을 단 사람의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티스토리 블로그를 하고 있는데, 티스토리 블로그는 쌍방통행이라기보다 일방통행입니다. 고정적으로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고 우연히 찾아오신 분이 간혹 덧글을 달아주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 분과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은 어려운 면이 있죠. 그 분이 블로그가 있다 한들 오픈을 안 하면 저는 덧글 단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이웃맺기를 통해 상대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될 가능성이 높고 그것이 소통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이는 네이버 블로그가 유리합니다. 이런 네이버 블로그의 장점을 가져오면서, 그에 더해 스팀잇은 글 한 편을 작성했을 때 최소한 믹스커피값 정도는 나오니 몰입도 자체가 다릅니다. 아마 10원이 주어지더라도 네이버 블로그보단 스팀잇이 낫다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중앙집중과 탈집중. 네이버 블로그와 스팀잇은 근본적으로 돌아가는 개념 자체가 다르고, 저는 잘 알진 못하더라도, 암호화폐가 지닌 탈집중과 권력 분산의 긍정적인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2000년대 초에 나모 웹에디터로 홈페이지 만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정확히 2000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당시에 냅스터라는 P2P 프로그램으로 외국 인디 밴드들 음악을 엄청 받아서 들었습니다. 그 중에는 지금도 신보를 챙겨 듣는 Godspeed You! Black Emperor, 세계적으로 유명해져서 한국에도 두 번이나 다녀간 아이슬란드 밴드 Sigur Ros 등이 있죠. 그 음악을 나만 듣기는 너무 아깝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어서 레알 컴맹이었던 제가 홈페이지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음악 얘기하니 신나네요. 락음악 덕질한 이야기를 더 하고 싶지만 이 글과는 무관하니 나중을 기약합니다. ㅎ)

그 뒤 네이버 블로그에서 이글루스로 이글루스에서 티스토리로 갈아탔습니다. 대학원 때는 페이스북도 조금 해보고, 전문가가 되기 위해 트레이닝 받던 시절에는 트위터도 했습니다. 작년까지 인스타그램도 조금 했고요. 다양한 SNS를 두루 거쳤는데 스팀잇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SNS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단 1원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애드센스 같은 광고를 통한 보상이 아닌 글에 대한 직접적 보상이 주어진다는 것 자체가 획기적인 일이죠!

사실 제가 심리학 전공자로서 그리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각 잡고 쓴 글들은 꽤 시간을 들인 것이 대부분입니다. 한 번 쓰면 보통 한글문서로 다섯 장 정도는 그냥 넘어가더라고요. 어떤 얼개를 잡아놓고 글 쓴다기보다 생각의 흐름에 따라 써내려 갈 때가 많음에도 다 써놓은 뒤에 수정을 굉장히 많이 합니다. 스팀잇에 올렸다가도 수정을 보통 열 번 정도는 하는 것 같습니다. 직업 특성상 오자나 맞춤법 같은 것도 유심히 보는 편이고요. (그렇게 공들여서 쓰지만 요즘에는 떡락의 여파인지 스팀잇 자체가 요 몇 주 좀 썰렁한 감이 있네요.)

오랜 시간 공들여 써서 1원을 받는다 한들, 저자 직접보상을 가능케 하는 암호화폐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저시급에도 한참 못 미치는 그런 보상이지만, 저는 스팀에 개인돈을 투자한 바 없고, 투자하지 않았는데 KRW로 보상이 돌아오니 책임감을 갖게 됩니다. 1원이라도 돈이 들어오고 있으니 받는 돈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은 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전두엽을 풀가동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읽는 분에게는 글에서 이런 게 안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마는. 최근에는 스팀잇에만 올리고 티스토리 블로그에는 올리지 않는 글도 생기고 있습니다.

스팀이나 스달이 지금보다 더 떡락하여 아무리 열심히 글을 써도 자판기 커피값도 못 얻는 그런 상황을 가정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책임감만 있다면 오래 하기 힘들겠죠. 활동한 지 두 달이 안 됐지만, 제가 쓴 장문의 글을 읽고 덧글을 꾸준히 달아주는 몇몇 스티미언이 생겼고, 글로서 그런 관심을 받고 소통할 수 있다는 게 참 좋습니다. 티스토리 블로그에 썼다면 99% 무플이었을 글에 댓글이 달리는 걸 보면 여전히 좀 신기하고 반갑습니다. 2000년 초중반쯤 네이버 블로그를 꾸준히 하며 블로그 이웃들과 소통하며 느꼈던 재미를 요즘 다시 느끼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 같은 SNS에서 이렇게 자기 생각을 길게 써서 소통한다는 것은 좀 상상이 되지 않네요. 비판이나 자기방어 같은 목적을 두고 그렇게 할 수는 있겠지만.

스팀잇이 아직 베타 버전이고 어떤 식으로 변화 과정을 거치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사실 전 요즘 핫한 키워드인 SMT가 뭔지도 잘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공간을 알게 돼 활동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 큽니다.

요약하면 1) 글을 썼을 때 얻게 되는 소량의 돈 2) 그 돈이 유인가이자 책임감으로 작용하여 전문적인 글을 쓰게 되고 나름 사고를 정교화하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 3) 글을 읽고 피드백해 주는 스티미언들이 있다는 것, 이 세 가지 이유 때문에 당분간은 이 곳을 놀이터이자 연구실로 삼을 생각입니다.

언젠가는 이 곳을 떠나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겠죠. 떡락이 몇 달 지속돼 제 글에 관심을 표현해 주던 이웃 스티미언들이 떠나게 되는 날이 그런 날일 것입니다. 1)과 3)이 사라지면 2)도 가능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암울한 미래는 지금은 생각하고 싶지 않네요. 네드가 일을 안 하고 지금처럼 구리디 구린 플랫폼 형태를 유지한다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요.

제게 최고의 존버 전략은 그냥 지금 현재를 즐기는 것입니다. 인생 통틀어 제일 오래 꾸준히 한 게 운동입니다. 헬스부터 시작해서 동네 달리기, 걷기, 사이클, 등산 등 운동 하나만큼은 꾸준히 해왔고 지금도 습관처럼 틈 날 때마다 하고 있는데요. 운동을 꾸준히 하며 배운 게 있다면 꾸준함의 핵심은 재미라는 것입니다. 하다 보면 지루한 권태기도 물론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 권태기의 한가운데서도 쉽게 재미 포인트를 찾을 수 있는 게 제게는 운동입니다. 재미가 없으면 뭐든 오래 지속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SMT에 대한 기대든 떡상 기원이든 간에 스팀잇에서 각자의 재미 포인트를 찾으면 그걸로 된 것이라고 봐요.

이번 글은 정말 두서가 없네요. 아무튼 진짜 하고픈 말은 스팀잇 가즈아~!

Sort: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저도 블록체인이나 스팀잇 시스템을 하나도 모르는데
올리신 분들 글 읽고 댓글 다는 재미로
여기서 놀고 있어요.
자주 뵈어요. ㅎㅎ

예. 피드에 올라오는 글들 중에 호기심을 자극하여 끝까지 읽게 만드는 글이 많아요.
책을 좋아하시네요. 저도 맞팔합니다. 반가워요.

감사해요.
종종 뵈어요. ㅎㅎ

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
고팍스에서 MOC상장 에어드롭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혜자스러운 고팍스!
https://steemit.com/kr/@gopaxkr/moc

오치님 사랑합니다.

블로그, 티스토리, 트윗, 인스타, 페북중에서 여기서 노는 시간이 가장 많아졌어요. 팔로 및 풀보팅하고 갑니다.

감사해요. 저도 맞팔했어요. 종종 봬요.

Coin Marketplace

STEEM 0.09
TRX 0.30
JST 0.034
BTC 113634.08
ETH 4034.99
USDT 1.00
SBD 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