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미의 일상기록 #32.5 / Music Box #25

in #kr-diary3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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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갑자기 기억난 일이다. 예전에 살던 동네에는 평균 물가보다 상당히 비싼 가격에 커피를 파는 가게가 있었다. 그 바로 옆에는 어느 동네에 가도 최저가에 가까울 법한 커피숍이 있었는데, 어쩌면 둘 다 개인 가게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둘 다 프랜차이즈였다면 서로 누울 자리(?)를 보고 입점했을 텐데, 이 두 가게는 그냥 주인의 개성에 따라서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음료 가격대에 맞게, 가구나 장식품이나 인테리어의 느낌, 심지어 음악까지도 서로 매우 달랐다. 공간의 규모는 둘 다 비슷했고.

비싼 커피숍에서는 아마 그 당시에 정식 수입되던 에스프레소 머신 중에서 두 번째로 비싼 것을 사용하고 있었고, 원두도 최고급이었다. 저렴한 커피숍에서는 그냥 보통 커피 싸게 파는 프랜차이즈에서 맛볼 듯한 맛을 냈고, 기계랄 것도 없이 그냥 자동이었다.

여기까지 얘기하면 대부분 예상하겠지만 비싼 커피숍에는 손님이 상대적으로 드물었는데, 조용히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싶은 젊은 직장인들이 주로 찾았다. 사장은 종종 지인들을 불러서 파티도 하고 그랬다. 여유롭게 취미 같은 사업을 하는 경우가 아니었을까 싶다. 반면에 저렴한 커피숍은 점심 때마다 같은 모습이었다. 오로지 동네 아주머니들, 주부들, 계모임과 학부형 모임들로 보이는 무리들로 꽉 찬 모습.

확실한 컨셉이란 좋은 것이고,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단지 비싼 가게를 찾는 손님들은 옆 가게에 신경을 안 썼던 반면, 저렴한 가게를 찾는 손님들은 상대 가게를 자주 기웃거리면서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몇 번이나 "이 가게(저렴한 가게)가 더 맛있어!"라고 서로 큰 소리로 이야기하곤 했다. 당시에 나는 그들 근처에 내 공간을 마련하고 있었기에, 그런 일을 자주 목격했었고.

사실 가격, 그리고 그에 맞게 편하게 떠들 수 있는 분위기가 없었다면 굳이 그 가게를 선호할 이유를 찾긴 쉽지 않았을 텐데, 사실 그 분위기도 그 가격의 직접적인 결과였을 뿐, 일부러 시끄러운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었을 터이다. 물론 그들에게는 저렴한 커피가 정말로 더 맛있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지만, 왜 유독 그 가게에 가는 사람들만 크게 그런 말을 하고 다녔을까. 정말 쓸데없는 자부심?으로 보였다.

자부심이란 말도 사실 맞진 않는데,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자신의 경제적 선택을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약간 보였달까. 그 사람들이 비싼 커피숍을 실제로 이용, 비교해봤을 가능성도 거의 없다는 점은 차치하고서라도, 말 그대로 아무도 물어보지도 궁금해하지도 않는데 "내가 가는 곳이 더 맛있어서 가는 거야!"라고 선포하는 건 왜였을까.

다른 부분에서도 이런 현상을 자주 본다. 최고의 성적이나 화려한 모습이나 평가 등, 겉으로 드러나는 기준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에 대해서는 일부러 깎아내리려는 태도. 좀 더 나아가면 그보다 좀 못한 것을 더 좋다고 우기기도 한다. 어디에서든, 1등에 직접 대적하진 못하고, 5등, 10등을 띄워주면서 1등을 거슬리게 하려는 사람들은 꼭 존재한다. 근데 아마 1등은 그런 현상을 보더라도 우습기만 할 것이다. 그 비싼 커피숍이 꼭 1등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 경우의 상당수는 진심이 아니라, 그냥 우기는 것이라고 판단하게 된다. 정말로 자신의 취향만을 기준으로 해서 그렇게 생각한다면, 일부러 들으란 듯이 그럴 필요는 전혀 없을 테니까. 자신의 선택이 결코 만만한 것, 가령 만만한 가격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항변(?)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그런 사람들은 결코 자신의 동기에 대해서 솔직하기 힘들 것이다. 그럴 수 있었다면 애초에 그런 엉뚱한 식으로 표현하지도 않았겠지.

커피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오늘은 커피를 마셨다. 원래 달달한 커피는 고사하고 그냥 커피도 잘 안 마시지만, 오늘만큼은 아이스 모카를 한 잔 했다. 다행히 초콜렛 시럽을 커피와 잘 뒤섞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시럽 부분만 빼고 마시니 크게 달지도 않고 오히려 시럽을 아예 안 넣은 라떼나 카푸치노보다 진해서 좋았다. 물론 그 전에는 맛있는 1식을 했다. 요즘 들어 1식을 천천히 하니까 속도 편안하고 좋다. 아무래도, 1시간 안에 다 먹고 나머지를 공복으로 보낸다는 게 정말 무리였는지도.

식사를 하면서, 유투브에서 아무 바보 같은 영화나 뒤적이다가 틀어두었다. TV용으로 만들어진 저예산 범죄 영화인데, 이런 류는 오랜만에 본다. 사실 제대로 시청한다기보다는 그냥 틀어두고 대사를 듣는 것에 가깝지만,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정말 계속 폭소하면서 봤다(또는 들었다.)

하관이 짐 캐리를 닮았고 그가 바보 연기를 할 때와 흡사하게 발성하나, 배역상 빌런이기 때문에 최대한 비열한 표정을 짓는 인물이 남자 주연이다. 그는 막 잘 나가려고 하는 법조인으로, 판사로 임명되려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이것도 좀 웃김. ㅋㅋ)

남자는 사귀는 여자에게 반지를 주면서 청혼한다. 기분이 좋아진 둘은 차를 몰고 가다 그만 사고를 일으키는데, 자신의 커리어를 걱정한 남자는 운전대를 여자가 잡은 것처럼 꾸미고, 그게 어이없게도 먹혀서 여자의 인생은 망가지기 시작하고...그 사고에서 죽은 남자가 부자라서, 법정 최고형을 받을 위기에 봉착하고...(여기서 폭소...)

그러다가 죽은 남자의 부인도 진범을 알게 되고, 누명을 쓴 약혼녀와 힘을 합쳐 어설픈 탐정 놀이를 하고...그러다가 죽임 당하고...(여기서 또 폭소...)

지금 이 글을 쓰는 중에도 결말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인데, 빌런이 과정된 수모를 겪으면서 끌려가는 장면으로 끝날 것만 같다. 끝까지 어이 없게도. ㅎㅎ 뭐 웃을 일이 많으면 좋은 것이지.

암튼, 많이 웃었는데도 배가 안 꺼지는 걸 보니까 든든하게 먹은 모양이다. 닭가슴살과 야채를 꽤 먹었다. 단백질과 섬유질이야말로 정말 오래 배부르게 가는 듯 하다.

바보 같은 영화를 보고 웃었지만, 아침에는 잔잔한 말러 5번 4악장을 피아노 연주로 들었다. 오래된 피아노 특유의, 좀 조율이 안 된 소리가 나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소리도 나쁘지 않다.

말러 5번 4악장 피아노 연주

말러 5번 4악장을 새벽이나 아침에 잘 듣는 이유는 그것이 바다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물론 바람이 세지 않은, 잔잔한 날씨의 바다를.

이 곡은 비스콘티 감독의 베니스의 죽음 배경음악이기도 하다. 워낙 유명한 장면이 많지만, 내 경우는 유독 떠올리는 장면이 주인공의 독백인데, 아버지의 집에는 모래 시계가 하나 있었어...라고 시작하는 독백이다.

그 내용과 비슷하게, 우리 할아버지 댁에는 피아노가 하나 있었다. 위 연주와 비슷한, 조율이 안 된 느슨한 현의 소리가 나는 피아노. 옛날에 굉장히 비싸게 주고 사셨다고 하는데...내가 최근에 알아본 바로는 사기를 당하신 듯 하다. 유명 외국 브랜드는 맞지만, 당시에는 부도가 난 업체들의 이름을 라이센스 내서 만들어내기도 했다고 한다. 이 피아노에 적힌 상품 번호를 보고 조사해보니 딱 그런 라이센스에 해당하는 경우였다. 정품 가격에다가 해외에서 이동해온 비용까지 더하고, 거기에다가 더 넉넉하게 쳐서 받고 넘긴 듯.

업자에게 잘못 산 것도 아니고, 아마도 교회 지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거의 거절하기 힘들도록 사연까지 곁들여서 떠맡기고 돈을 받아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지역 유지로 알려지셨던 데다가 성격도 유순하셨으니, 정말 별의별 인간들이 다 뜯어먹으려고 덤볐던 정황이 많다. 어릴 때는 가족들의 이런 면모를 보고, 절대 저렇게 무르게 당해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었다.

그건 그렇고, 말러 5번 4악장에는 다른 피아노 버젼도 있다.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따로가 연주한 말러 5번 4악장

완전히 다른 편곡으로, 원곡과의 거리는 더 멀지만 파도를 닮은 느낌이 더 잘 사는 부분도 있다. 오늘도 바다는 잔잔한데, 좀 춥더라도 좋으니까 차가운 공기가 흘러와서 미세먼지를 몰아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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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에 상관없이 저렇게 장사 하는 분들 보면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주변에 그렇게 시작하신 분들이 몇 있는데...좀 하다 보면 욕심이 생기기도 하고, 아무리 느긋하게 해도 귀찮은 일이 많아서 그냥 다른 방법을 찾기도 하고...뭐 다양하더라구요. 사람 대하면서 완전히 쉽기만 하고 재미있는 일은 없는 듯한...ㅎㅎ

음악에 지식이 풍부하시네요.

많이 좋아하긴 하죠. 감사합니다. ㅎㅎ

여유롭게 취미 같은 사업을 하는 경우가 아니었을까 싶다.

저도 이런 삶을 살고 싶네요!! ㅋㅋ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ㅋㅋ또 모르죠! 그런 날이 올지도요. 물론 그렇게 운영해도 스트레스는 있었을 것 같아요. ㅎㅎ

그쵸? 뭘해도 스트레스가 없을순 없을듯... 그냥 백수하고 싶네요! ㅋㅋ

그래서 갓수라고 하나 봅니다ㅠ

아 이거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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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조절 좀 하고 뚜껑 얘기좀 그만해, 형ㅠ

상당히 비싼가격의 커피라니 어느정도지.. ㄷㄷ

적당한 가격이면 차라리 조용한 곳으로 갈듯

음...호텔 아닌 이상 아메리카노 기준으로 그 이상 받기 어려울 정도?! 뭐 조용히 앉아서 작업하고 하려면 그 편이 낫긴 할텐데...요즘은 어딜 가든 점심 시간은 피해야 하는 듯.

댓글 난장판이... ㅋㅋㅋㅋ
가성비 좋은데는 건물주인 경우가 많더군요.
그냥 돈 욕심보다는 소일거리...

아마 박리다매+시끄러운 분위기에서 힘들게 일할 필요도 안 느낄 것이고...좀 더 개성적으로 할 여유도 있겠죠. 목 좋은 곳을 고집할 이유도 딱히 없겠고...예전에 여기에서도 어느 분이 손님 없이 조용한 카페 하고 싶다고 쓴 적이 있었던 듯요.

댓글은...ㅋㅋ재밌네요.

형들아 얘 좀 봐바바바 @ioioioioi @asinayo

야이 자식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 진짜랑 엮으면 어떡해!!

신나요형을 두 번 죽이는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형 어디야 ㅋㅋㅋㅋ

두분다; 겁나 좋아하네요.; 진작에 이어줄껄;

안이! 혼모노랑 엮으면 다메다요 야메떼

ㅋㅋㅋㅋ머리 싱크로율 봐라

동대문에 짜장면 1500원에 파시는 분 계시는데 건물주드라고용~
짜장 1500원에 팔기 위해 오늘도 쳇바퀴 열심히 돌립니다~ ^0^

아하 밥 종류는 충분히 그럴 수 있죠. 박리는 맞고 다매는 아닐 수 있겠지만요. 일일 판매 그릇 수, 테이블 수, 운영시간 등을 좀 적게 잡을 여유를 부릴 수도 있을 테고...어차피 직원들 둬야되니까 뭐 다매까지 하는 곳도 있을 테고...

근데 커피는 오래 앉아 있는 걸 당연시하고 원가가 낮다는 인식이 있어서, 여유롭게 하려면 절대 박리다매는 안 될 것 같더라구요. 짜장이야 금방 먹고 일어나지만...커피는 회전율 정말 낮으면서도 장시간 열어야 되는데다가, 시끄러운 장터 되어버림. ㅎㅎ

맞네요 ㅎㅎ 근데 커피숍도 가격 조금만 낮추면 회사앞은 의외로 회전율이 빨라요. +.+
출근때와 점심시간에 밀물처럼 테이크아웃 하고 썰물처럼 훅 빠져나가는 곳이 많드라고용.
점심때 잠깐 붐빈다고 하기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음...
하지만 이런곳은 또 월세가 엄청 높겠네요.
어쩔수 없는 기승전건물주 입니다. ㅠ.ㅠ

아, 먹거나 마시는 장사는 딱 '동네'와 '회사 앞'으로 나뉘죠. 임대료 차이도 크고, 고객층 자체가 다르니깐요. 회사 앞은 임대하면서 박리다매 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람이 많을 수 있겠지만...근데 임대료랑 인건비가ㄷㄷ 건물주도 인건비 제법 안 들이고는 못할걸요. 그래서 결국 그리 싸게 팔진 못할 듯요. 진짜 장사는 아무나 하는거 아니라는...

장사 맘대로 차렸다가는 백종원 사부에게 철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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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보니까 나도 아이스 모카 한잔 하구싶댜
한집걸러 있는게 커피숍인데도 점심엔 사람이 항상 많아서
조용하고 사람별로 없는곳으로 가게됨

나동 ㅋㅋㅋ

아 두 커피가게 글 읽었는데 모지? 하고 생각해 보니 ㅋㅋ 읽고 음악도 안 듣고 보팅을 잊고 못해서 안 읽은 줄 알았어요.
남은 와인에 어울릴 만한 음악이 필요했는데 딱 좋네요.

아, 저도 딱 한 잔만 하게 "남은" 와인 있었음 좋겠네요. 새로 따긴 싫다는...ㅋㅋㅋㅋㅋㅋㅋ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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