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점화

in #kr-daily3 years ago

분노가 점화되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화를 내거나 되받아칠수록 질 수밖에 없는 메커니즘의 문제라 넘겨버리고 잊으려고 노력했는데 3시간이 지나도 감정의 잔여물은 해독되지 않았다. 내일 시험을 앞둔 L을 붙잡고 얘기를 하면서 눈물이 났고 생각보다 내가 더 화가 많이 났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쩐지 미친 듯이 라면이 먹고 싶더라니(간신히 참았다) 감정의 뒤처리가 매끄럽지 못할 때 식욕이 폭발하다. 배가 불러도 무언가 끊임없이 먹고 싶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포만감, 그렇게라도 둔해지려는 건지, 무언가 채우는 기분이 안정을 주는지 모르겠다.

한마디가 문제였다. 그 한마디는 내게 있어서 인격모독에 해당하는 말이고, 어떤 관계이든, 특정 상대라고 할지라도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선넘는 말이다. ‘노예’나 ‘애완동물’에게나 할 법한 대사다. 5~10분의 대화 중 고작 한마디, 게다가 주목적도 아닌 지나가는 문구, 상대에 따라서는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별거 아닌 말, 그러나 악의가 없다 해도 깎아내리려는 목적이 없다고 참작해도 그 대사는 현재의 나로서는 묵인할 수 없다. 내 안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견딜 수 없었다. 아니 충분히 견딘 거다. 그걸 받아치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로. 받아칠 수 없는 내 처지가 나를 더 짜증 나게 했다.


흔히 예의나 배려라는 건 상식적인 사람이고 노력한다면 큰 무리 없이 할 수 있을 거란 착각이 들지만, 각자의 예의나 배려에도 스타일이나 강도는 천차만별이다. 사람 간의 상호작용에는 화학반응이 있는 게 분명하다. L 군이나 오빠에게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손쉽고 단순한 상대이지만, 내겐 소량의 접촉에도 위험한 폭발을 일으키는 촉진제와 같다. 관계에서 상처 입거나 곱씹는 건 촉매제인 내 쪽이고, 나의 내력을 기준으로 평화와 갈등의 순간이 결정 난다. 되도록 나는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다. 나는 엄마보다 생각이 많고 섬세하고 감정이 풍부하기 때문에 을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항상 그의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바늘처럼 날 찌르다 못해 하루를 무너지게 한다. 절대 다시는 연락을 하지 않을 거란 소심한 다짐을 하게 한다. (오늘도 엄마는 내가 이런 상처를 받았을 거라고는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을 거다 그게 더 열받는다)

언젠가 아빠 사주를 본 날, 역술가는 아빠가 자존심에 굉장히 세서 누가 자신을 가르치려 하거나 통제하려고 하면 역효과가 나며 큰 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이런 사람은 건들지 않는 게 좋다고 말했다. 나는 어렵지 않게 엄마와 아빠의 말싸움을 회상했다. 나는 엄마와 아빠가 어떻게 같이 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달라도 너무 다른데다가 함께 있으면 서로 상처를 주는 성격의 조합이기 때문이었다.

오늘에서야 왜 아빠가 엄마에게 중요한 일에 관해 말하지 않는지 너무 이해가 되었다. 어차피 들어주지 않고 자기 멋대로 판단하니까. 날 이해하려는 노력도 없고 자기 판단 기준에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말할 게 너무 뻔하니까. 상상만 해도 피곤하다. 생각해보니 아빠는 말로 날 상처 준 적이 한 번도 없다. 자신이 상처받을 말은 내게도 하지 않으니까.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엄마는 자기가 부여한 나의 정체성과 역할에 내가 얼마나 모자란 인간인지 걱정을 빙자해 잔소리를 계속하며 나를 깍아내릴 게 뻔하다. 그때마다 오늘처럼 어렵게 쌓아 올린 자존감과 평화는 다시 와르르 무너질 것이다. 엄마에게 내가 맞다고 증명할 수 없어 속으로 분노를 삭인 채, 연락을 피하겠고.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조금쯤 성장한 것 같더라도 이런 순간을 맞이하면 다 소용없이 제자리도 되돌아온 기분이 든다.

나는 엄마에게 한 번도 내가 글을 쓴다. 혹은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한 적 없고, 앞으로도 말하지 않을 생각이다. 내가 아무리 훌륭하고 위대한 글을 쓴다 해도, ‘그거 얼마 버는데?’ 이 말로 날 다 깔아뭉갤 것이 뻔하니까. 그의 시대는 답이 하나라고 가르쳤으니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증명해서 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싶은 반발심과 증명하고 싶지 않다는 피곤함, 난 절대 증명하지 못할 거라는 무력감, 나를 통째로 부정당하는 슬픔에 가득 찬다. 왜 그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않는가?

하지만 가장 짜증나고 열받는 건 이럴때마다 조금씩 흔들리거나 그의 말이 일정부분 맞다고 인정하고 있는 약해빠진 내 자신이다.


2021년 4월 20일, by 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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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어머니도 초등학교만 졸업하시고 이기적인 형제 ,부모님 아래 답답한 성격을 가지고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장애까지 얻으시고 성격이 더 안좋아지셨는데, 결국 저는 두 가지 면에서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로 한 동안 부모님과 떨어져 살면서 처음 만난 남처럼 조심스럽게 만났습니다. 선을 넘으시면 남처럼 멀리할 생각으로요... 부딛히면 어느 순간에든 과감히 피하고 시간이 지나 다시 조심스럽게 만나길 반복해서 10여년만에 지금은 서로 부딛히지 않는 영역을 찾아서 대화는 줄었지만 전혀 감정 상하지 않고 볼 수 있게 되었네요.
두번째로 감정이 드는 이유의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서 내가 사는 이유가 뭔지까지 올라가면, 그 상위 이유 근처에 마음의 평안을 두고 다시 내려와서 화내는 상황에서 이유를 찾아봤습니다. 쉽게 말해 사는 이유에 마음의 평안을 추가 하기위해 철학적으로 노력해봤습니다. 결국 화내지 않는 삶에 가까워 졌고 부작용으로 살이 엄청 쪘습니다.
주책맞게 긴 댓글 남긴 것이라면 죄송합니다.

안녕하세요. rrow님 주책이라뇨. 관심이지요. 긴 이야기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처럼 멀리한다라 저의 경우에 문제는 제가 두려는 거리와 엄마가 두려는 거리가 달라서 문제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 말은 결국 어떤 상황이 오든(?) 화가 나지 않고 마음의 평화를 얻어야 한다 강철 멘탈이 되라는 말씀처럼 들리네요. 과연 될런지

무시할 수 없고 제가 언젠가 꼭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게 마음에 걸리네요.

좋게 들어주셔 고맙습니다.
거의 비슷한 말이긴한데... 상황이 오고나서 나기 시작하는 화를 억누르면 늦으니, 근본적인 판단 기준에 마음의 평화를 넣어 보시라는 뜻에 더 가까웠습니다.

저라면 참지 못하고 바로 라면을 끓였을 텐데요. 짝짝짝.

아니 나루님 부끄럽습니다 - 그치만 오늘 볶음우동을 거하게 해먹고말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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