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일기] 차는 밀리고 비가 조금 왔고 오는 길엔 신이 났어

in #kr-daily3 years ago (edited)

1 .

글쎄, 내 생각엔 괜히 네가 크게 생각하는 것 같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차안에서 오랜만에 엄마와의 대면에 대해 걱정하는 나를 보며 L이 해준 말, 그러네. 방법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그렇게까지 신경쓰는 게 문제구나. 사는 데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닌데 중요한 이유야 하나지, 내가 너무 중요하고 내겐 너무 중요한 일이니. 난 거짓말을 못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 불편하다고.

30년 넘게 대체 어떻게 산거야? 그건 거짓말이 아니야. 말하자면 선의의 거짓말이지. 어머님이 필요한 건 안심이니까.

그건 알아. 그리고 난 안심을 시켜줄 방법이 없지.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돼. 그렇다면 거짓말이 아니지. 네가 지금 하는 모든 것 결국 가치를 만들기 위해 하는 일이고, 종국에 가치가 된다면 돈이 되겠지. 그렇다면 돈 벌려고 애쓰고 있어. 취업 준비 열심히 하고 있어. 이 말이 아예 틀린 말은 아니야. 중간을 많이 생략한 말이지만.

오 좋아. 그러네. 그 정도라면.


2 .

만 4살, 우리나라 나이로 6살이 된 조카는 처음엔 조금 낯을 가리다가 이제 나와 말도 하고 놀아준다! 아기아기하던 얼굴이 제법 소녀티가 나서 많이 컸네요 했더니 언니가 반에서 여전히 가장 아기아기하다고. 조카가 많이 커서 혼자 알아서 노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했다. 조카는 칠교로 모양을 창작해서 우리에게 퀴즈를 끊임없이 냈다.

'우주선!', '시소!' , '로켓', '집!'

문제는 생각보다 엄청 어려웠고, 조카가 쓰는 단어는 참신해서 어른의 머리로 생각하면 도저히 맞출 수 없는 퀴즈였다. 지치지 않는 체력과 끊임없는 그의 창의력이 부러웠다. 선물받은 원피스를 보고 한눈에 반해 갈아입고는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만족스러운지 공주놀이를 했다. 아임리얼 딸기 쥬스를 보고 가장 행복감에 젖은 미소를 보여준 것도 잊을 수 없다. L은 집에 가는 길에 이제 저 나이면 모든 걸 다 기억하지 않냐고 말했다.

그다지 좋은 고모는 아니지만, 만만한(?) 고모가 되고 싶다.


3 .

어떤 변덕인지 4개월 동안 끊었던 인스타 글계정에 다시 복귀했다. 생각보다 언팔한 사람이 적어서 놀랐다. 한 명씩 확인해보니 나 말고도 활동을 중단하거나 쉬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예전 인스타를 하면서 혼자 집착하고 힘들어하고 고생하던 기억이 난다. 대체 왜그랬던 걸까? 뭐 모르지 않다. 대체 인기란 건 뭘까 내가 애써본다. 내가 안 해봐서 그렇지, 나도 할 수 있어! 라고 감히 생각했지. 그게 내 스타일도 아니라서 품도 드는데 여러모로 귀찮고 힘들고 결과도 그닥. 조급함과 욕심의 콜라보, 5월을 맞이하여 가벼운 작업일지로 써볼 계획. 그리고 그곳에도 얕을지언정 반갑고 소중한 사람들이 몇 있으니!


4 .

문체나 문장력 맞춤법은 엉망이지만 본격적으로 작법을 공부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어차피 못 쓰는 글, 괜히 그런 유려함까지 고려했다가 그나마 쓰던 글도 안 쓸 것 같아서. 굉장히 이상한 이유지만 나는 어차피 정규 글쓰기 과정도 배워본 적 없는 야인이라서 정규 과정을 겪은 사람들과 다른 색을 유지하는 게 내 개성이 아닐까 싶기도 했고. 거기다가 워낙 문법은 내게 재미없는 분야이고, 꼼꼼하지 못한 기질을 지니고 있어 배움도 더디다. 얼마전 레일라님과 만나서 이야기하다가 레일라님이 교정 교열을 공부하면 글쓰는 데 꽤나 도움이 된다는 조언을 해주셨다. 별로 내키진 않지만, 레일라님이 추천해주신다면 그 책만큼은 열심히 공부해볼 작정이다.

필사도 추천해주셨다. 특히 소설이 아닌 전공책이나 기사글. 내가 그 사람의 문장을 따라 쓸까봐 걱정하니 절대 한 번으로 문장이 변하지 않는다고. 하하하 쓰고보니 엄청난 김칫국이다.

내가 못하는 세 가지를 굳이 정리하자면,
기획된 글쓰기, 담백하고 촘촘한 설명문, 인용

개인적으로 단점을 보완하려는 노력보다는 그 시간에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레일라님 말씀을 들어보니 단점을 보완하는 동시에 장점이 더 극대화되는 변증법식 발전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


5 .

내일 모레부터 오랜만에 '출근'이라는 개념을 일상에 들여보기로 한다. 과연 체력이 가능할지, 또 작업 공간이 분리되면 더 나은 글쓰기가 이루어질지 실험해볼 수 있겠다. 운명론자로 누군가에게 거절당하거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미련없이 돌아서고 대부분 게으르기 때문에 잘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안 될 거라 생각했는데 덜컥 기회가 주어지면 내 운명건가? 하고 해볼 만큼은 해본다.

같은 시간에 닳는 것도 아닌데, 뭔가 내 마음가짐에 따라서 1분 1초가 너무 빠르고 아깝게 느껴지기도 하고, 한 없이 여유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차피 주어지는 시간의 총량은 변하지도 않는데 모자르게 느껴지지 않도록 신경써야지.

신청 마감된 작업 공간에 결원이 생겨서 대기자인 내게 차례가 돌아온 덕에 5월엔 마포에 자주 가게 될 것 같다.


P.S. 결국 내가 문제고 나만 잘하면 아무 문제 없는 내 인생.

-2021년 5월 1일, by 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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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속에 답이 있지 않을까요?
벌써 찾으셨겠지만~^^

문제 속에 답이 있다. 돌아서면 오답이었나 의심이 들어버랴서 말이죠 ㅠ_ㅠ

자신의 글을 소리내 읽어보며 고쳐보세요. 그럼 늘어요. ^^

어우. 그 방법도 쓰고 있지만 말도 워낙 저렇게(?)해서 별 도움이 안되더라고요.

말씀 잘 하시던데... ^^

이진원의 ‘좋은 문장을 쓰고 싶다면’ 은 대중적으로 읽기 좋은 듯해서 추천드려요! P.S 너무 공감. ㅠㅠ 으흐흑.

오! 제가 실험해 본 후 후기를 남기겠어요. P.S에 자꾸 공감하시면 곤란합니다요 ㅠㅠ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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