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름값이 얼마라고요?

in #kr-daddy6 years ago (edited)

아이는 오늘따라 잠을 자기 싫어한다. 엄마 아빠와 하루종일 보낸 주말이 즐겁기도 하고, 이대로 끝나는 게 아쉽기도 한 모양이다. 쉬가 마렵다며 화장실에 가자고 한다. 내가 따라가서 아이가 볼일을 보는 동안 폰을 잠깐 들여다본다. 코인값이 오르는 건 좋은데 조만간 사려고 벼르던 이오스가 천장을 뚫고 투더문 하는 차트를 보니 속이 쓰리다.

아이의 속옷과 옷을 다시 입히고, 이왕 화장실 온 김에 양치질을 시키는데 요구사항이 많다. 처음에는 치약이 너무 많아서 싫다고 하길래 칫솔에 묻은 치약의 절반을 덜어내고 다시 돌려주니 이번에는 너무 적다나 어쨌다나. 다시 방에 가서 누웠다가 물 마시고 싶다며 또 일어나서 아이엄마를 흔든다. 내가 가지 뭐. 부엌에서 물을 컵에 부어주니 '물 말고 우유'가 먹고 싶다고 한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우유를 부어주었더니 '이 컵 말고 공주컵'에 달라고 한다.

몇 번의 위기를 넘기고 이제 방에 누웠다. 갑자기 '아빠, 그림자 놀이 해 주세요.' 아이를 의식 저편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은 이렇게나 까다롭다.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내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여본다. 그림자 놀이에는 별 내용이 없다. 수 개월전부터 똑같은 레파토리로 그때그때 대사에 약간의 변화를 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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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 검지손가락을 등장시킨다. 지렁이 두 마리가 천장에 나타나 꾸물거리며 오늘 있었던 일 중에 뭐가 가장 재미있었는지, 뭘 먹었는지 아이에게 물어본다. 지렁이는 언제나 그랬듯, '난 흙 먹으러 간다. 잘 자'라는 멘트로 퇴장하고 오르손 검지와 중지가 다시 등장한다. 천장에는 토끼가 나타나서 '풀을 많이 먹어야 키가 크는데 맛이 없어 풀을 별로 먹고 싶지 않다'고 한다. 아이가 토끼에게 충고한다. '골고루 먹어야 잘 커. 밥 많이 먹어.' 토끼가 퇴장하고 말이 다그닥거리며 등장하여 토끼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강아지 순서를 지나 마지막 배우인 나비의 대사 몇 마디로 인형극은 끝난다.

여전히 아이는 잠을 자기 싫어 뒤척이고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휴대폰 만지작거린다. 때로는 10여분, 때로는 60여분이 지나면 아이는 깊게 잠이 든다. 살금살금 거실로 나와서 불을 켜고 매트 위로 시선을 훑다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다. 언제 눕혀놨는지 책과 잡동사니 사이에 콩순이와 콩콩이가 이불을 덮고 잠을 자고 있다. 다른 잡동사니들은 정리해도 되지만 인형은 잘못 건드리면 골치아프다. 지난 번에는 이걸 치웠다가 다음날 아침에 10여분 눈물공격을 받았다. 왜 치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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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을 뒤적거리며 코인 정보가 쏟아지는 카톡 단체 채팅방을 하나씩 열어본다. 이미 방마다 300+으로 찍혀있고 대충봐도 900개 이상의 톡이 쌓여있다. 읽기를 포기하고 쓸데없는 대화창을 하나씩 닫으려는데 다소 오래된 대화 내용에 눈이 간다. 내 아이디 @daegu를 돈 주고 사겠다는 내용이었다. 당시까지 글 쓴 건 몇 개 없었지만 여러명과 댓글을 주고 받으며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버릴 수가 없었다. 싸이월드부터 시작하여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블로그 등 오글거리는 글 몇 개로 생명을 다 해버린 내 SNS인생을 다시 살려보고픈 욕구도 있었다. 요행을 바라고 UNB, SIB, GUP 등 친구들이 들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만한 잡코인에 넣었던 중형자동차 가격 만큼의 돈이 폭락장을 거치며 15년된 중고 황금마티즈 가격으로 변해버린 그 시기에 50장이라는 돈은 의미없어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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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를 대구로 정한데는 큰 이유는 없다. 기존의 내 아이디와 겹치지 않는 단어를 찾다보니 살고 있는 동네 이름이 떠올랐고, 철자나 발음도 어렵지 않아서 무난한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별 컨텐츠 없는 계정인데도 이름값을 지불하겠다니 괜히 내 선택에 어깨가 으쓱거린다. 일기장 이름치고는 제법 괜찮다는 생각에 미치니 발가락까지 으쓱으쓱하는 듯하다.

괜히 궁금해서 다른 도시들의 이름을 찾아본다. 아직 제주와 서울, 부산, 포항, 울산, 도쿄, 오키나와, 나고야, 파리와 뉴욕의 주인은 블로깅을 시작하지 않았다고 한다. 가입은 하였으나 포스팅도 없고 댓글도 없다. 혹시 비밀번호를 잊어버린 건 아닐까. 인천과 간사이는 아직 주인이 없다. 항공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여행에 대한 컨텐츠를 올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사카의 주인은 매일 인도네시아의 모처에서 꽃 사진을 찍어 올리고 있다. 그는 오사카와 무슨 관계일까. 교토의 주인은 사과잼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글을 하나 리스팀 해두고는 활동이 없다.

배경음악으로 틀었던 유튜브 채널에서 에니메이션 OST가 나오고 있다. 글의 제목을 붙여본다.'너의 이름값은 君の名値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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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어릴 적에 그림자놀이를 무척 좋아했어요! 사실 최근까지도 문득 생각나서 천장에 대고 새를 만들어본 기억이 나네요. 귀여운 이야기에 미소를 짓고 읽다가 갑자기 스팀잇 계정 50장에 눈이 번쩍 뜨이고 말았어요! 50장이라니 세상에ㄷㄷㄷ저는 30장만 준다고 해도 혹해버릴 것 같아요! 그래도 대구님의 스팀잇 블로그가 대구님의 블로그로 쭉 남아 있게 되어서 다행이에요ㅎㅎㅎ앞으로도 재미있는 글을 올려주실 테니까요! (라고 훈훈한 마무리를 하고 저는 부계정 만드는 법을 찾아보러 가겠습니다! 혹시라도 이 댓글을 보고 누군가 먼저 만들면 곤란하니까 제가 생각한 지명은 적지 않겠어요!)

그 50장이 천원짜리인지 만원짜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고양이를 태우고 시속 410km/h로 맑은 하늘을 날아다닐 것 같은 그 멋진 아이디를 30만원에 팔 생각이 있다니요?! 막상 누가 사겠다고 하면 못 파실껄요?ㅎㅎㅎ멋진 지명의 부계정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바베이도스, 울루물루, 비싼티아고 같은 지명과도 어울릴 것 같습니다.

이오스가 4천원대일때 사려고 켰는데 6400원이 돼있어서 뭐여 씨펄 하고 찾아봤더니 업비트 상장했다고 올랐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미 폭등했으니 안 샀는데

ㅋㅋㅋㅋㅋ흑우의 눈빛이.. 손담비의 '니가?'하는 표정과 비슷하네요. 돈이 다 묶여 있어서 조금만 더 있다가 사려했더니 이미 버스는 지나갔네요..라고 생각할 때 샀어야 하는데.. 라고 생각할 때도 늦지 않은데.. 라고 쓸 시간에 얼른 사야겠습니다.

저는 그냥 다른 방법으로 벌어보겠습니다...타고 흐르는 것은 눈물이 아니야 아무튼 아님

발가락까지 으쓱으쓱하는 듯하다.ㅋㅋㅋㅋㅋㅋㅋ 넘 귀여운 표현이예요 진짜!!!!
재밌게 잘 봤습니당 :)

그런데 50장은 얼만가요?????

저기서 대화가 더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만, 진지하게 천원짜리 50장이라고 했으면 빰 터졌을 것 같네요. 제 멋대로 만원짜리 50장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야겠습니다. 암호화폐에 대한 글을 주로 쓰시는군요. 자주 찾아 뵙겠습니다^^

재밌습니다. 이름값은 점점 훨씬 더 올라가실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스팀값도 오르고 제 글짓기 실력도 오르고 제 월급도 오르면 좋겠습니다ㅎㅎㅎ 즐거운 한 주 되세요.

헐? 스팀잇 계정 거래도 있나요? ㅋㅋ 신기하네여 ㅋㅋㅋ

먼저 연락을 주셨더라고요. 다른 분들과 댓글 주고받은거나 포스팅이 별로 없는 상태라면 응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네이버 블로그같은 거래가 있나해서 궁금증이 자아내졌네염 ㅎㅎ^^ 좋은 하루 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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