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Painting] 다 덮어버리고 싶은 욕망

in #kr-art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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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릴 때면 자꾸 유혹에 빠진다.
열심히 그렸던 그림을 한 가지 색으로 다 덮어버리고 싶은 유혹.

이해가 안 될 것이다. 열심히 그렸던 그림을 왜 망쳐? 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결국에는 후회하면서도, 정신 차리고 보면 또 큰 붓으로 물감을 가득 발라... 그림을 덮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희열이 있다. 변태적 희열이랄까. 열심히 묘사한 그림일수록 다 덮어버리고 싶어.

묘사가 자질구레해질수록, 그림이 그림에서 멀어질수록, 즉 '너무 그림같지 않게' 열심히 그렸을 때, 나는 그것을 덮는다. 아 존나 아깝네.. 라는 마음을 이겨서는 마음이다. 그림으로 다시 돌아가고픈 마음이다. 그림같지 않을 바에야 그림이고 말지, 라는 마음이다.

그런데 그때는 몰랐다. 본능적인 행위만 있었다. 이 그림을 망쳤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버렸다. 아깝다. 이제는 알아볼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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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핑을 규칙적으로 해서 그림을 그렸다. 이때 한참 서태지의 앨범을 듣고 있었는데 본인의 장르가 'Nature Pound' 라고 했다. 나도 자연을 한번 쪼개서 그려볼까? 라는 마음이 일어서 시작했던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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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엇나가게 두 줄을 그렸다. 이때부터 그림을 덮고자 하는 기운이 스믈스믈 안개처럼 몰려오고 있다. 이때는 몰랐다. 이 안개같은 붓질이 캔버스 전체를 휘감아버릴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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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잠식하고 있다. 이러다 말겠지.. 라고 생각하며 붓질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림은, 그리는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이끄는 대로 냅다 지르는 역할밖에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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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점점. 이제 돌이킬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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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멈췄다. 변화무쌍한 흰색들이 남았다. 겨우 그림이 된 것 같다.




@thelump




최근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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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야기를 감춘 설화가 되었군요.
아래 두 그림을 약간의 간격을 두고 나란히 봐도 참 좋을 것 같아요.

찍는 것이 남는 것이더군요. 이렇게 같이(오나무님과, 또 이 두 그림을) 볼수 있으니 좋습니다.

버... 버리셨다고요?
"아~ 이거 배렸어!" 할때 버린걸 말씀하시는건지 아니면 진짜 버리셨다는 건지... 사진만 남아있는 작품이 된 것인지요?

아쉬운 마음에 gif로 만들어 봅니다. 순서는 맞는지, 잘 나올런지 모르겠네요.

thelump.gif

오...감사합니다...!!!! 이렇게 보니 색다르네요..! 멍하니 계속 보고 있습니다 ㅋㅋㅋ 이 작품은 버렸는지 그 위에 뭘 그렸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

저도 멍하니 다시 보니 마지막 작품을 좀더 오래 시간을 둘걸 그랬나 싶네요 ^^ ㅎㅎ

찍어두셔서 너무 다행입니다.
엄청난 작품을 보고 가네요.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록의 중요성.. 매번 느끼고 있습니다 ^^

오.. 그림의 변화가 안개가 뒤덮는 마을을 보는 듯 하군요. 저도 가끔은 글 쓰다 말고 다 지우고 한단어로만 말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합니다. ^^

시인의 충동이 아닐까요? ^^

저는 순간 벚꽃 세상인 줄 알았어요

네! 저 산이 북악산인데요. 실제로 봄이면 북악산에 벚꽃이 예쁘게 활짝 핍니다!!

아! 비명을 지르면서 포스팅을 읽기는 처음이네요... ㅠㅠ

'너무 그림같지 않게' 열심히 그렸을 때, 나는 그것을 덮는다.

난 아티스트가 아니라 잘 모르지만, 멋짐 뿜뿜이라서 그냥 비명만!!!

저도요저도요.
쏴리질러!!!!!! 꺄악!!!!!!!!!!!!!!!!!!!!!!!!!!!
멋지십니다. 허으... 덮을 수 있는 용기마저.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옵니다~~~!! ㅎㅎ 사실 눈뜨고 도저히 봐줄 수 없을 상태일때 덮습니다...ㅎㅎㅎㅎ

그냥 못그려서 덮었다는 말을 허세 가득하게 표현해봤습니다. 제시카님의 비명을 끌어냈다니.. 앗싸! ㅎㅎ

가까이서 텍스처를 느끼면서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이...

살려둘걸 그랬습니다. 너무 빨리 사형시켜버렸어요 ㅠㅠㅠ 앞으로는 그림 함부로 버리지 않아야겠습니다..

아쉽네요. 하지만 공간적인 제약을 생각하면 보관 여부를 결정하는데도 어려움이 있으시겠어요.

네 무시 못하죠. 영상 작업이 그런 면에서 편하....편한가? 생각해보면 또 그건 용량이 어마어마해서 외장하드를 계속 구입해야하는 금전적 제약이 있구요. 뭐든 보관은 돈입니다 ㅎㅎ

그렇겠네요. 해상도가 받쳐줘야하니... 예술을 공공재로 생각하는 세상이 빨리 와야 할텐데요...ㅠㅠ

아.... 제 눈에는 너무 멋있기만 한데요 ㅠㅠ

사진이라도 찍어둬서 다행입니다.. 흐~~~ 좋은 밤 되세요 !! (리안님은 항상 야밤에 활동하시는군요!? 올뺴미족!?)

냐핫^^; 새나라에 어린이가 되고싶지만
현실은 올빼미족 이네요ㅜㅜ
편안한밤되세요7^^

처음 보여지는 그림부터 안개로 휩싸이는 그림까지 모든 느낌이 좋아요. 마지막 안개에 쌓여진 그림은 저 너머에 어떤 마을이 존재할지 신비감마저 느껴집니다 :)

영화 <미스트> 보셨나요? 저는 문득 그 영화가 떠오르네요. 갑작스레 안개로 뒤덮인 마을에서 곤충 괴물이 사람들을 하나씩 물어가서 좀비로 만드는..... (....)

시인들은 다 말하지 않고 행간에 의미를 감추고 화가는 다 그리지 않고 물감뒤에 그림을 감추는군요. 누군가는 저 안개 뒤에 있는 마을을 보겠죠?

이 그림을 버렸는지, 아니면 이 캔버스 위에다가 다른 걸 그렸는지 까먹었습니다. 제가 후세에 유명세를 떨치면 적외선? 비슷한 걸로 비추면 안 쪽에 있는 마을을 다 볼 수 있을 겁니다. 써놓고 보니 참.. 분위기 깨는 답변이네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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