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Painting] 미대 실기실 404호

in #kr-art6 years ago (edited)





눈이 반짝! 하는 순간이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뀔 때가 그렇다. 인상파들도 그랬을 거다. 보는 방식이 달라지는 순간이다. 그러면 눈 앞에 아무거나 그리고 싶어진다.

나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내 그림의 시작이었다. 해질녘이었다. 노란 빛이 들어오는 실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빈 캔버스를 꺼냈다.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을 그렸다. 이유는 없었다.







전체의 공간을 가늠해보는 과정.
여기저기서 공간들이 생성되는 묘한 순간이 왠지 좋다.




090124(1).jpg


완성했다. 라고 생각했다. 가만히 봤다. 보고 또 봤다. 아, 이거 정말 구리다. 이게 뭔가 싶다. 마음이 안 든다. 처음에는 큰 붓으로 조심조심 밀어보다가 아예 수건으로 그림 전체를 닦아버렸다.




090124(2).jpg


선명했던 것들이 뿌연 안개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래, 차라리 이게 더 낫다. 의도는 금방 깨지고 만다. 자만하며 안 된다. 그림은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지워졌다가, 더해졌다가, 빼졌다가, 닦아버렸다가 어떤 무언가가 나올 때까지 계속 변해야 한다.




090204(2) 복사.jpg


여기서 멈췄다. 돌아보고 나니 첫 완성본이 더 나은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다. 어쨌든 그저 보이는 대로 그렸다. 보이는대로 그리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내가 감히 '내면'을 그려낼 수 있단 말인가. 그저 외적인 리얼리티를 최대한 담는 것도 벅차다.

숨겨진 의미는 없다. 다만 한 가지 의미를 집어넣을 수 있다면 꼭 하나 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아주 강한 긍정을 그려내고 싶다' 는 생각을 했다. 여기서 내 그림이 출발했다.




090204(1).jpg




@thelump




최근 포스팅

Sort:  

그림이 멋진만큼, 소개글들도 인상적이에요.
'전체의 공간을 가늠해보는 과정' 과 같은 표현들이 마음에 듭니다 :)

그 첫번째 과정이 가장 재미있어요. 시작하는 단계는 모든 가능성들이 열려 있어서 흥분되기도 하고요.

작품에 움직이는 뭔가가 있네요.
담으시려고 하는것을 담으신거 아닌가 싶어요...

뭔가 꿀렁꿀렁거렸다면 성공이네요! ㅎㅎ

어떤기법이죠? 뭔가 물에 번진듯한 느낌이들면서 살아있는거같은..? ㅋㅋㅋㅋ

-8.5의 기법입니다. 제 시력인데요. 저는 맨눈으로 보고 그리는것을 즐깁니다. 덕분에 초점맞지않는 사물들이 일렁여 보여요.

아항 번진듯 안번진듯 하는 색다른 기법이라 신박해요 ㅎㅎㅎ

실제 사진을 보니 첫번째 단계의 그림은 확실히 ‘이건 아니다’ 느낌이 드네요 ㅎㅎㅎㅎ
아 그렇다고 진짜 망한 그림이다! 이 뜻은 아닙니다 ㅋㅋ
실제 사진을 보기 전에는 ‘첫번째 단계 그림은 왜 아니지..?’ 하고 있었어요.
그림에서 실기실에서 나는 냄새도 맡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ㅋㅋ

이래서 과정을 기록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사후라도 중간점검이 가능하니까요. 유화냄새.. 그리 달가운 냄새는 아닙니다. ㅎㅎ

어떤 에너지가 살아서 움직이는거 같아요
공간의 중력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네요

공간의 중력이란 표현 !!! 제가 생각했던 단어와 일치합니다!

저는 제 인생이 미술과는 거리가 멀 줄 알았거든요.
아내도 제가 만났을 때는 국문과였는데, 미대편입해서 서양화 전공...
처제도 판화 전공...
어쩌다보니 회사도 주위에 다 아티스트...

그러다보니 이젠 왠지 반가운 풍경입니다 ^^

와우 작품에 대한 훌륭한 감식안을 가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네요. 막상 저는 친가 외가를 합해서 예술 쪽이 한 명도 없습니다. ㅎㅎ

오호.. 구성이 신비롭네요.. 완성된 그림과 다시 배경으로 돌아가는..

배경으로 돌아갔다가 지금은 자연으로 돌아갔습니다.. 처음으로 유화로 그렸던 그림이라 여러모로 서툴러서 나중에 크랙이 발생하는 바람에 눈물을 머금고 폐기처분 하였습니다 ㅠ

생노병사의 사이클을 완성했군요..

지금 생각하면 크랙좀 나 있으면 어떤가.. 그냥 보관할걸 하는 생각도 드네요. 늙고 병든 모습을 지켜볼 여유가 없었던 시기였어요 ㅎㅎ

짱짱맨 호출로 왔습니다!
한주 수고하세요

영예로우신 짱짱맨님.. 수고하세요!

수건으로 닦아낸 표현조차 작품이 되네요. 크으~~~~~~~멋지십니다!!!!!! 감사히 잘보고 가요~~ 감기 조심하시고 앞으로도 좋은 작품 많이많이 부탁드려요^^히힛

닦아낼 때 묘한 짜릿함이 있습니다. ㅎㅎㅎ 오늘은 갑자기 눈이 한바가지 왔네요. 감기 조심하시길요.

음 희야님 큐레이팅에 있는 글에 그림을 처음 봤을때 이건 뭔가 ^^;;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두번째 봤을때 (다른글에 먼저 보팅해서 한 세번쯤 본 것 같습니다. ) 오 뭔가 방인가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조금 자세히 봤을때 그리고 제목과 함께 미대 실기실 같다는 생각을 하고 이제 보팅하고 댓글 달러왔는데 와우... 큐레이팅 그림이 완성된 그림이 아니었네용 ^^;; 완성작은 확실하게 미대 실기실로 처음부터 느껴 집니다.

남은 한주도 즐거운 한주 되십시오.

첫번째 그림이 호기심을 끄는 계기가 되었네요.(낚시성공!ㅎㅎ) 긴 감상평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녁 맛있게 드세요 ^^

Coin Marketplace

STEEM 0.20
TRX 0.14
JST 0.030
BTC 68168.17
ETH 3256.43
USDT 1.00
SBD 2.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