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이즘] 누가 엘리트인가?

in #koinism5 years ago (edited)

엘리트 없는 사회는 없다



세상은 엘리트들이 이끌어 간다. 맞는 말입니까? 틀린 말입니까? 누군가는 세상을 이끌어 갑니다. 탈중앙화의 환상은 마치 리더 없는 민주주의가 세상을 뒤집을 것처럼 속삭였지만, 지금의 블록체인/암호화폐 시스템은 절차도, 신뢰를 얻는 과정도 없이, 고래들이 돈으로 리더십을 사는 난장판이 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들 비굴거리시던지.. 피라미 아니 플랑크톤들 말입니다.



리더 없이 움직이는 공동체, 정어리 떼와 같은 사회, 개미들의 천국을 꿈꾸는 듯하지만 그 어떤 인간도 정어리로, 개미로 남아있기를 꿈꾸고 있는 게 아닙니다. 모두들 고.래. 를 꿈꾸고 있지요. 그러니 이건 실현 불가능입니다. 정어리는 위기 때에나 무리를 짓습니다. 개미는 여왕개미에게 먹이를 바치기 위해 일을 합니다. 정어리 떼로 매일매일을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안에 대해 광화문광장에 모여 시위를 할 수는 없으니까요. 개미의 삶은 말 할 것도 없습니다.



정어리.jpg

정어리는 고래를 꿈꾸지 않지만 인간은 고래를 꿈꿉니다
그래서 정어리이면서 정어리 떼를 싫어합니다
언젠가 고래가 되어야 하니까요



우리는 다 고래를 지향합니다. 그래서 안되는 겁니다. 정어리의 삶이 있고 개미의 삶이 있을 뿐입니다. 물론 또한 고래의 삶이 있는 겁니다.



세상의 모든 국가들이 엘리트들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영국의 이튼스쿨과 옥스브릿지, 프랑스의 그랑제꼴과 ENA, 미국의 아이비리그, 일본의 도쿄대, 중국은 공산사회니까 말할 것도 없구요.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이너서클들이 정, 재계를 장악하고 사회를 이끌어 갑니다. 물론 저걸로 다가 아닙니다. 집안의 배경이 저기에 플러스가 되고 이너서클의 일원인지 아닌지가 숨은 조건입니다. 뭐가 문제입니까? 심지어 인도는 아직 카스트 제도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름에 종교와 계급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백두혈통 공산당 출신이어야 하는 북한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너님들 좋아하는 북유럽은 더 심합니다. 덴마크는 상위 20%가 전체 자산의 99%를 점유하고 있고, 스웨덴은 상위 1%가 부의 25~40%를 보유하고 있으며, 최상위층 90%가 상속에 의해 부를 획득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상속세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를 관찰한 연구들을 보면 그 어떤 나라도 한국처럼 엘리트에 대한 선망과 반발이 심한 나라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건 그저 그들의 삶일 뿐이고 그 삶을 감당하느라 생겨나는 어려움은 다만 상대적일 뿐입니다. 각자의 할 일과 역할로 받아들여지는 엘리트에 대한 인식. 그것은 어떻게 이 나라에서만은 마치 만 악의 근원처럼, 그럼에도 모든 인생이 추구해야 할 가치처럼, 또한 그렇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갈망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을까요?



진정한 계급혁명을 경험한 나라의 긴장 사회



사농공상, 양반 계급사회에서 급격히 진행된 근대화와 산업화, 그리고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토지개혁의 성공이 아마도 한반도인의 인식에 엘리트에 대한 무한 갈망을 탄생시키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계급사회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수백년, 수천년 동안 고착화되어 온 것입니다. 그것은 굳이 사다리를 타고 오르고 탈취해야 할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역할로 인식되며 자리를 잡았습니다. 왕권 사회에서 부르주아 혁명을 거쳐 공화정으로 이동하는 과정에도 여전히 많은 나라에 귀족계급이 존재하고, 그것이 금융권력 등 신흥계급구조로 변화되는 과정에서도 공동체에서 인정되어지고 존중받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덕목과 함께 말이죠.



그러나 우리는 어쩌면 진정한 계급 혁명을 경험한 나라가 아닌가 싶습니다. 양반과 평민이 일시에 같은 출발선에 서고, 전쟁을 거치며 역사적 맥락이 모두 제로 세팅된 상태로, 오로지 맨몸과 실력, 열정만으로 새로운 계급사회를 만들어 왔으니까요. 개천에서 얼마든지 용이 날 수 있었고 심지어 용이 되기 위해 개천에서 구르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이 그러니까 50년이 채 못되었지만, 이런 평등사회를 경험했던 나라가 또 있었을까요? 가난한 농민의 아들이 판검사와 재벌이 되고 고졸 출신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라말이죠.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우리의 결핍을 더 자극하고 신분 상승의 욕망을 활활 불태웠습니다. 저놈도 하는 데 나라고 못할까. 내 친구 아들 놈도 하는데 내 아들이라고 못할까. 그렇게 포기를 모르는 한반도인의 근성으로 계층의 사다리로 몰려들고 올라타고 짓밟아 대기를 멈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우리는..



사다리.jpg



계층이 고착화되면 전복의 위험이 생깁니다. 그러면 그 계층을 유지하고픈 지배계층들은 그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유화책을 사용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면서 계층 간 안정을 유지해 갑니다. 어쨌든 서로 먹고살만한 수준을 보장하는 구도에서 말이죠. 그러나 기회의 사다리가 교묘하게 열려 있는 사회에서는 약탈전이 멈추지 않습니다. 점점 사다리가 줄어들고 있으니 경쟁은 더욱 치열합니다. 심지어 급한 마음에 허공으로 점프를 해대다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일도 서슴지 않습니다. 우리가 말입니다. 아직 그러고 있습니다.



스트레스는 다르지 않습니다. 엘리트라고 아무 걱정 없이 잘 먹고 잘 살 것 같지만, 주변의 눈치 속에 순간순간을 살아야 하고, 권력싸움의 쟁탈전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모가지를 내놓고 살아야 합니다. 긴장의 연속이며 벼랑 끝에 서서 한 발 한 발을 내디뎌야 합니다. 교도소 담장 위를 줄타기 하듯 걸어 다녀야 하며 주변의 모든 사람을 일단 적으로 상정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도 하고 싶습니다. 올라가고 싶습니다. 그것이 신분 상승의 욕구이고 인정욕구의 한 형태인 겁니다. 게다가 상처와 결핍 그리고 대를 잇는 혈통의 무엇과 연결되면 그 집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가히 이렇게 강력한 폭력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긴장 사회, 신분 상승의 욕구를 어쩌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적나라한 단면입니다. 그러나..



리더 없는 사회는 없다



누군가는 세상을 이끌어 가야 합니다. 사회를 이끌어 가야 합니다. 리더 없는 민주주의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서 사람들의 평등 수준을 완벽하게 해결한다 하여도 인간들은 사용하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파괴해 버릴 겁니다. 하는 척하며 변질시켜 버릴 겁니다. 그렇게 커뮤니즘이 공산당 독재가 되었고 민주주의는 여전히 구호 속에 잠들어 있는 겁니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본능을 인간이라고 완전히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욕구는 매슬로우의 이론에서처럼 무리 짓고 인정받는 과정을 거쳐야 자기실현, 자아의 확산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심리적 욕구와 본능적 욕구는 우열을 가르고 다투도록 자극하고 촉발시킵니다. 방구 뀌지 않고 살 수 없듯이 인간은 이 욕구를 반드시 해결하고 다루며 살아가야 합니다. 다만 문명사회를 건설하고 있는 인간으로서, 그것의 충족과 해결의 방식을 폭력이 아닌 좀 더 인격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해소하고 충족해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엘리트를 없앨 것이 아니라. 누가 엘리트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겁니다. 누가 고래, 아니 리더여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무리가 생겨나면 리더가 나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누가 돈도 걷어야 하고 연락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모임이 유지가 됩니다. 그러는 누군가는 정보를 독점하게 되고 돈을 관리하게 됩니다. 권력이 생겨납니다.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 리더의 성향에 따라 다양한 평가를 받게 됩니다. 호불호가 생기고 성향의 차이가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모임은 갈리고 비슷한 사람들끼리 다시 헤쳐 모이게 됩니다. 구심점이 없이는 원심력이 생겨날 수 없으니 구심점을 정하게 되고 그가 리더가 됩니다. 그래서 모든 모임은 리더에 의해 성격이 규정되고 회원 선택의 기준이 상호 간에 생겨나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성격이 다른 집단들이 상호 경쟁하며 사회를 진화시켜 가는 겁니다. 획일성은 사회를 정체시킬 뿐이니까요.



블록체인/암호화폐의 커뮤니티는 성격이 분명합니다. 화폐, 돈을 다루는 플랫폼이니 말이죠. 그러니 리더는 돈과 화폐를 어떻게 다루는가에 따라 규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고래가 리더입니까? 돈만 많으면 리더가 됩니까? 게다가 그 돈은 실물화폐도 아니고 실체도 없는 암호화폐입니다. 그러니 그 신뢰를 누가 담보할 것이며 이 암호화폐 커뮤니티의 리더는 어떠한 신뢰를 보여주어야 하는 걸까요? 고래.. 고래는 말입니다. 투자자일지는 모르지만 리더는 아닙니다. 그러면 스팀잇의 리더십 시스템인 증인은 어떠한 가치를 증명해야 합니까? 스팀잇은 도대체 뭐 하는 플랫폼일까요?



한국 사회의 엘리트는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심지어 한국 사회에는 리더가 존재하는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신분사회가 고착되어가고 있다고 하지만 저렇게 불안해하는 계층이 어떻게 사회의 지도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아직도 언제 전복될지 모른다는 위협감에 가진 재산을 비상식량 취급하는 엘리트들이 무슨 리더십을 발휘하겠습니까? 쫄리면 내려오던가. 촛불에도 흔들리는 계층이라면 그들의 리더십이란 바람 앞에 등불 같은 겁니다. 압제하던지 설득하던지, 리더라면 마땅히 그렇게 위기를 돌파해 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촛불 앞에서 추풍낙엽처럼 흔들리는 이 사회의 지배계층에 실망을 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어디 한탕하고 튀어야겠다는 시정잡배들에게 리더를 맡긴 꼴이니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결기도 없고 용기는 더 없고 어린애 마냥 악쓰고 우기기나 하는..



한국에는 엘리트가 없습니다. 그러니 리더도 없습니다. 불안에 떠는 엘리트가 무슨 리더십을 발휘하겠습니까? 엘리트의 가장 큰 요건은 자존감입니다.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은 자존감과 좀처럼 물러서지 않는 자존심입니다. 그리고 그에 기반하고 있는 용기와 신념입니다. 국민들이 촛불 좀 들고 나왔다고 쫄려서 뒤꽁무니를 빼는 쫄보들에게 나라를 맡겨 온 겁니다. 술수와 모사만 넘쳐나는 내시들에게 사회를 조종 당해 온 겁니다.



블록체인의 탈중앙화는 새로운 엘리트 계급을 만들어 나가게 될 겁니다. 그들은 화폐와 신용의 매커니즘을 스스로 증명해 내게 될 겁니다. 돈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사람과 사람들에게서 어떻게 신뢰와 신용을 얻어내는지 보여주고 증명해 내게 될 겁니다. 그 과정은 만만치 않을 겁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누군가 그 과정을 성실하게 증명해 낸다면, 정어리들은 떼를 지어 그를 중심으로 몰려들 겁니다. 성실한 일개미들은 자신의 수고를 기꺼이 그에게 헌납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새로운 시스템에 걸맞은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게 될 겁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권한과 책임이 공정하게 분배되는 새로운 계급사회를 건설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족하게 될 겁니다.



그곳은 [스팀시티]입니다.
[스팀시티]는 자신을 다스려 줄 리더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커뮤니티의
새로운 리더들을 배출할
새로운 엘리트 시스템 [위즈덤 레이스]..
달리는 자는 언제나 소수입니다.
다스리는 자 역시 언제나 소수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소수를 엘리트라고 부릅니다.









[코인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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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mmerlin님

랜덤 보팅!!

소소하게 보팅하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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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업계에도 진짜가 나왔으면 합니다. 스팀시티가 그렇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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