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아침, 백석, 란, 나타샤와 당나귀

오늘아침 누군가 통영에서 첫 해를 맞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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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충열사, 토지의 작가 박경리의 고장이지만, 떠오르는 것은 항상
뜬금없이 시인 백석의 당나귀와 나타샤입니다.

젊은 모던보이 백석이 첫사랑을 하고 또 실연의 상처에 아파했던 도시이기 때문이죠.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온 종일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경상남도 통영시. 명정동의 옛 명칭은 명정골로 「통영(統營) 2」에 등장하는 마을 이름이다. 백석 시비가 있고 시비에는 「통영 2」의 전문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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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2는 마치 통영을 그리는 듯 하지만, 그것이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의 시임은 뒷부분에 드러난다.

난(蘭)이라는 이는 명정골에 산다는데(중략...)
명정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 일본유학후 귀국한 백석
친구 결혼식에서 박경련을 우연히 만난 백석은 사랑에 빠집니다.
이듬해 1월3월12월 통영으로 달려가지만 근처만 맴돌다 오죠.
가난한 시인은 짝사랑을 얼굴한 번 못 보고 거절당한 것같은데
12월에 친구 신중현과 박경련의 어머니를 만났지만 란의 어머니는 가난한 시인이 탐탁치 않았고
그 시절 기생의 아들인 백석의 신분이 친구의 실수(?)f로 노출 되고....

아뿔싸. 친구 신중현은 박경련에게 마음이 흔들려 버리죠 ㅠㅠㅠ
결국 박경련은 백석의 친구 신중현과 결혼해 버리고........

백석은 ....낮술하고 충렬사 계단에 앉아 [통영2]를 썼나봅니다.

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 앉아서
나는 이 저녁 울듯 울듯
한산도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녕 낮은 집 담 낮은집 마당만 높은집에서
영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백석- 통영2 중.

그래도 결국 그녀를 만나보긴 했나봅니다.

낡은 항구의 처녀들에겐
옛날이 가지 않은 천희(千姬이동네 방언이죠- 처녀-첫사랑,박경련을 가리킨다.)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오리 같이 말라서 굴 껍질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이 천희의 하나를
나는 어느 오랜 객주집의
생선 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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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의 충격에 허우적대던 백석은 1936년 함흥 영생여고보 회식에서 만난 기생, 김영한씨와 사랑에 빠진다. 백석은 김씨를 ‘자야’라 부르며 서울 청진동에서 잠시 동거하기도 했지만 39년 백석이 만주로 떠나며 헤어집니다.

자야는 요정 대원각의 주인으로 법정 스님에게 항일운동의 숨은 거점이던 대원각을 기부하고후에 대원각은 [길상사]가 된다.

백석은 자야의 직업을 문제로 극심히 반대하던 가족의 성화에 경성을 떠나 만주를 헤매다 해방 후 평양으로 돌아왔다. 오산고보 재학시절 은사였던 독립운동가 조만식을 도와 통역과 비서 업무를 수행 중이던 1946년, 그의 곁엔 자야가 아닌 평양 권번 소속의 기생이 있었습니다.

38년 발표한 그의 대표작 ‘나와 나타샤와 당나귀’는 자야를 그리는 시로 알려져 있지만 백석이 제자 김진세의 누이를 흠모해 청혼한 뒤 퇴짜를 맞은 실연의 상처를 담은 작품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 백석의 시 <흰 바람 벽이 있어> 중에서

백석의 불행은 분단으로 더욱 선명해지죠. 분단 이후 고향에 체류하다가 북에서 활동하게 된 자유주의자 백석은 당의 혁명문학에 적응하지 못하고 러시아문학 번역에 전념하는데, 이 시기 그는 러시아 혁명기 숄로호프의 대하 장편 『고요한 돈』(1949). 국민시인 푸슈킨 등의 작품을 번역했죠.

58년 10월 부르주아 잔재청산을 요구한 당의 ‘붉은 편지’ 사건으로 백석은 평양문단에서 산골 오지인 양강도 삼수군 관평리의 국영협동조합의 현지지도원으로 파견. 그의 인생의 후반부는 추방된 양치기로 30년을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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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참 훈남이었어요.
북으로 간 게 큰 실수였던 거 같아요. 제대로 창작을 못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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