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말을 과하게 한 날에는, 대사 많은 영화를 봅니다

in Korea • 한국 • KR • KO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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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과하게 한 날에는, 대사 많은 영화를 봅니다

요아(@hyunyoa)




우리는 끝도 없이 말을 하고 글을 쓴다. 익명의 다수에게 전할 때도 있지만, 대개는 상사나 친구처럼 특정한 존재를 향해 생각을 표한다. “오늘은 어땠냐”는 다정한 물음이기도, “그게 말이 되나요?”라며 분노에 못 이겨 입을 통과해버린 날것의 감정이기도 하다.

공모전을 준비하며 오랜만에 낯선 이들과 친구가 되었다. 청년이라는 수신자에게 자신의 내밀한 얘기를 꺼내는 작업을 함께한 덕에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아버지의 부재로 하루아침에 가장의 무게를 떠맡은 언니의 부담감, 학교폭력을 담담하게 얘기한 친구, 직장 내 따돌림으로 퇴사 후 공무원을 준비하는 선배까지. 타인의 고통이 극심하다고 내가 겪는 고통의 정도가 옅어지는 건 아니지만, 사회의 가장 큰 피해자는 나라고 자부하던 과거를 청소하는 일은 성공했다. 울적한 단면만 보면 이 사람은 불쌍하게 살았으리라 확신하고 마는 손가락질 아래서 고통을 비밀에 부쳐야 했던 이들의 서사를 들으며 편협한 세계가 한 뼘 더 자랐다. 우리는 당당하고 부끄럽지 않았으며, 상처를 울지 않고 담담하게 말할 만큼 객관적인 사람이 되었다.

아프거나 상심에 빠졌던 얘기를 많이 쓴 때문인지, 언젠가 실제로 만난 독자 분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실물로 보니까 생각보다 어둡지 않으신걸요?” 어떤 이는 나의 글이 넋두리나 한탄에 가깝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넋두리라기에는 충분한 고민을 거친 뒤 정제한 생각이었고, 한탄이라기에는 사회의 부정과 부패를 가감 없이 드러낸 것뿐인데, 짧은 두 단어로 마침표가 지어진 상황에서도 나는 웃었다. 분위기란 한 사람의 노력으로만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를 제외한 다수는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도록 정성을 내었으니 나도 쏘아 올리지 않고 “나름의 한탄이겠네요.”라는 말로 응수했다. 개인은 다양한 면이 있는 복잡한 존재인데, 피해라는 하나의 서사를 가지고 전체를 규정하는 잘못된 판단에도 그러려니 넘겼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을 것이다. 책 한 권을 읽고 이 작가는 부정적이라고, 나태한 백수라고, 불만 많은 직장인이라고 단언했을 테니까.

여태까지 나는 얼마나 많은 이에게 상처를 주었을까. 나의 언어로 상처 받은 이는 다수의 노력으로 형성된 따뜻한 분위기를 망치기 싫어 억지로 미소 지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상대에게 준 상처를 모른 채 나만큼은 무해한 인간이라 자부했을 테고.

연말이 다가온다는 이유로, 가끔 외로움을 탄다고 고백한 이유로 최근 몇 번 본 사람과 엮이는 상황에 처했다. 사람들은 그도 솔로이고 나도 솔로이니 둘이 잘해보라고 말해주었지만, 나는 진정 마음에 드는 사람이 아니면 연애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강하게 부정했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는 케케묵은 말로 논점이 흐려지자, 결국 유쾌한 분위기를 포기하고 정색을 택했다. 그러나 나와의 엮음을 당했던 그가 만일 나의 이상형이었다면 나는 그만하라고 했을까? 짝사랑 상대였다면 조용히 있었을 테지. 나와 엮임을 당한 그 또한 강하게 부정하고 싶었겠지만, 분위기가 깨질까 노심초사하며, 혹은 내 기분이 다칠까 봐 함부로 정색을 결정하지 않았을 텐데 괜스레 나 혼자서 화를 내버렸으니 또 생각에 잠겼다. 나는 말이 너무 많고, 사람들도 말이 너무 많다. 애초에 곤란한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누구도 다치지 않을 장면이었다. 우리가 원고처럼 다듬어진 글로 말할 수 있다면 다툼은 조금 더 적어지지 않을까.

21대 국회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기획된 <내가 이제 쓰지 않는 말들>이라는 프로젝트에서는, 우리가 한때 쓰기도 했고 쓸 수도 있지만, 이제는 쓰지 않는 말들을 다룬 글이 올라온다.

이현 작가는 “상대방이 이성으로 느껴져?”라는 흔히 쓰이는 질문을 가져와 사랑의 형식은 다양하니 ‘이성’이라는 말을 더는 쓰지 않겠다고 했다. 황선우 작가는 ‘주린이’나 ‘헬린이’라는 말을 쓰지 않겠다고 얘기했다. 어린이를 성적 대상으로 지칭하는 끔찍한 단어와 비슷한 방식의 조어법이라고, 또한 어린이는 서투르고 뭐든지 못하는 대상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그뿐만 아니라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거야”처럼 건강 지상주의로 흐르는 말들은 질병을 앓는 사람들을 패배자로 만드는 표현이라고 짚어준 김하나 작가의 발언 덕분에 나는 미처 깨닫지 못할 정도로 당연해진 납작한 편견을 깨게 되었다.

말 대신 손으로 음식을 시킬 수 있지만, 면접 역시 예상 질문을 만들어 예상 답변을 줄줄 외우는 현실이지만, 세상은 역시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말과 글을 빼놓고서 흘러가지 않는다. 그만큼이나 상처를 주고받는 기회도 많다는 뜻이므로, 나는 언제나 나를 검열한다.

커플이던 시절, 사람은 모름지기 연인이 있어야 행복하리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누군가를 연인으로 잇는 분위기에 동조하거나, 특정인의 단면만 보고 편견을 씌워 멋대로 짐작한 적도 있었을 테다. 상대의 의견이 나와 다르다고, 그의 말하는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발언권을 가로챈 적이 있을 것이다.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려 조용한 미소를 머금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오늘도 책을 펴고 영화를 튼다. 말을 너무 과하게 한 날에는 대사가 많은 영화를 틀어 침착함을 배운다. 아무리 끼어들어 의견을 전하고 싶어도 스크린의 인물에게는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의 입을 막고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일 수 있다. 또, 겉으로 보기에는 멀끔하지만 상처를 내레이션으로 표현하는 주인공 덕에 인물의 심리를 파악한다. 대사가 가득한 영화는 다소 지루하지만, 모든 이의 입장을 헤아리겠다는 노력이 가끔 귀찮기는 하지만, 번거로움이 커지면 커질수록 나의 언어로 상처 받을 사람은 더욱 줄어들 테니까.


회복하는 사이에 스팀달러도 차차 회복하고 있군요,, :) 오랜만에 스달로 맛난 걸 먹을 수 있겠습니다.
겨울에 연말이라 그런지 코로나 추세가 잦아들 기미가 없군요 ㅠ_ㅠ 몸 마음 챙기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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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안하고 살 수는 없고, 하면 일정 비율로 실언이 나오게되니 이게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살아가는 것 자체가 그런 것 같네요. 안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하고 그 중 일부는 타인이든 자연이든 무언가에 해를 끼치게 되는... ㅎㅎ

대사 많은 영화로 저는 "Before Sunset"(Before Sunrise의 후속작)을 추천합니다....
라고 쓰고 보니, 제가 이 영화를 본게 30대 중반이었네요. 이점은 감안해주세요 ^^;;

 4 years ago 

저도 그래서 실언할까 긴장한채 말을 하고는 합니다 ㅠ_ㅠ
비포 선셋! 보고싶어요로 찜해두었던 영화인데 추천을 받았으니 주중으로 꼭 관람하겠습니다 :)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검열을 해서도, 자기검열을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남에게 상처를 줄 것이며, 남도 저에게 상처를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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