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빳사나명상수행일지] 5일 차 - 낙담이란 상카라

온몸 세포는 파동이야.



본 글은 진안에 위치한 '담마코리아 명상 센터'에서 위빳사나 10일 명상코스를 체험한 후 적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수행일지입니다. 담마 혹은 위빳사나 명상과는 다른 필자 개인의 의견이 첨부되어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위빳사나 명상을 앞두신 분께는 이 글을 통해 선입견이 생기지 않도록 명상이 끝날 때까지 이 글을 읽지 않으시길 권고 드립니다. 위빳사나 명상가분의 피드백과 체험 공유는 언제나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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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명상을 하다가 너무 급해서 화장실을 다녀왔다. 안개가 깔린 풀숲으로 갈색과 흰색의 고양이가 우아하게 천천히 걷는다. 고양이를 발견한 건 처음이라 마음이 두근거린다. 놀라지 않게 조용히 멈춰서 고양이 발걸음 하나하나를 천천히 음미하듯이 바라보았다. 고양이는 곧 따라갈 수 없는 담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위빳사나 명상을 계속했다. 모든 감각을 하나씩 순서대로 느껴보는 것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각을 이어가는 훈련을 하는 날이었다. 여전히 둔한 부위는 남아있지만 집중하고 기다리면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부위는 없었다. 어제부터 자연스럽게 연속된 흐름으로 감각을 느꼈기 때문에 크게 어려운 건 없었다. 하나 어려운 게 있다면 다리가 저리고 한 자세로 앉아있기 어렵게 만드는 고통이 느껴진다는 것뿐이다.


명상에 몰입하자 아주 강하고 빠른 고주파가 온몸에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도 다리가 아파서 피고 싶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결국 견딜 수 없어 상상의 힘을 빌렸다. 산책하면서 구경했던 까마귀가 된 상상을 했다. 나는 가볍다. 나는 날고 있다. 까마귀의 시점으로 상공을 나는 상상하며 푸른 하늘 아래 산책하는 인간들을 유유히 바라보는 상상을 했다. 내 몸은 가볍고 날고 있다. 나는 까마귀다. 글로 적었지만 상상을 할 땐 언어가 아니라 까마귀의 시야와 몸이 가벼워 날아간다는 느낌을 상상했다. 그러니 신기하게도 다리가 덜 아프고 진짜로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명상을 견뎌냈다.



어제 본격적인 윗빠사나 명상을 수련하면서 하루에 한 시간씩 세 번 ‘아딧타나’를 수행하게 된다. 아딧타나는 굳은 결심이란 뜻으로 눈을 감고 최대한 한 자세로 자세를 바꾸지 않은 채 윗빠사나 명상에 온 집중을 다하는 수행이다. 눈을 뜨면 안 되고, 자세를 바꾸지 말아야 하며 손발의 움직임도 최소화한다.


아딧타나 시간이 오면 진지하게 수행해보는데도 잘 되지 않았다. 아무리 집중해도 최소한 3번에서 5번까지 자세를 바꾸게 되었다. 법사님께서 가끔 오후 명상 시간에 수련생을 세 명씩 앞으로 불러서 명상이 잘 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잠시 명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온몸의 감각이 잘 느껴지냐는 말에는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아딧타나가 잘 되고 있냐는 질문에 주눅이 들었다. 자세를 몇 번 정도 바꾸냐는 말에 옆자리 수련생은 잘 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내가 보기에도 놀라울 정도로 미동 없이 한 자세를 곧게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잘 되지 않으며 3번에서 5번 정도 자세를 바꾼다고 대답했다. 법사님은 미동 없는 표정으로 그 수를 조금씩 줄여 나가라고 조언해주셨다.


순간 자리로 들어와서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내 입장에서는 열성적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는데 노력을 봐주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개인마다 차이가 있는데 상대적인 입장을 헤아려주지 않는 것 같아 조금 서러웠다.


조용히 앉아 밀려오는 잔잔한 서러움에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았다. 위빳사나 명상을 하면서는 몸의 미세한 감각을 예민하게 느낄 수 있다. 그저 단순하고 거칠고 시선을 확 사로잡는 큰 감각만 안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각기 다른 감정마다 시작되는 감각과 진동의 양상이 조금씩 달랐다. 이게 억울함과 서러움의 감정이구나. 오른쪽 중간 부위가 콕콕 찔리고 물이 찬 듯 아팠다.



법사님은 누굴 혼낸 것도 아니고 나무라지도 않았는데 왜 혼자 서럽고 억울하지? 그건 내가 잘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야. 누구보다도 아딧타나를 잘 해내고 싶었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아 속상하던 참에 법사님께서 마침 거기에 대해 물으시고, 다른 이들 앞에서 그 사실을 인정해야 했기 때문에 에고가 손상되었기 때문이지.


어차피 매시간 법사님이 나를 감시하거나 바라보는 것도 아니고, 명상을 하는 게 다른 사람과 경쟁을 하거나 법사님에게 인정받기 위한 목적을 지닌 것도 아닌데 그게 왜 속상하고 자존심이 상하는 걸까? 사실 아딧타나를 제대로 했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이다. 다른 이들은 아무 상관이 없으며, 그저 계속 시도하면 되는 일이다. 아딧타다를 하고 싶다면 계속하면 되고, 그게 안 되면 될 때까지 해보면 되고, 그게 된다면 혼자 알면 그만이고, 안 되면 그냥 안 되는구나 알게 되면 그뿐이다.



아! 이게 나의 낯익은 상카라구나!



나는 줄곧 낙담하곤 했다. 내가 무언가를 잘하지 못한다는 걸 아는 즉시 그것을 그만둘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냈다. 수영을 배우겠다고 결심을 하고도 수영장에서 힘을 빼지 못해 물을 잔뜩 먹고 컥컥거리자 이렇게 역으로 스트레스를 더 받으며 수영을 다닐 수 없는 노릇이라고, 그러니 수영은 내게 맞지 않는다고 2주 만에 그만두었다. 공을 잘 다루지 못해서 더 연습할 생각을 안 하고 구기라면 무조건 못한다면서 거리를 두었다. 사람들을 만났는데 조금이라도 어색한 기운이 감돌거나 마음이 불편해지면 역시 난 단체생활 체질이 아니라며 두 번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았다. 운전 역시 마찬가지였고 영어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게 조금이라도 불편감을 느끼게 하는 모든 일은 시도조차 제대로 해보지 않으며 원래 못 한다고 선을 그은 후 포기했다. 말하자면 어쩌면 난 낙담의 역사를 살고 있는 겁쟁이였다.


‘더 이상 나는 낙담하지 않아.’



브런치 일상 글을 적는 에세이 제목을 한 때 ‘낙담하지 않기 위해 쓰는 글’이라 명명한 적 있었다. 모르고 있지 않았다. 남편은 내가 과도하게 실패를 두려워한다고 지적했고, 나는 내가 사실은 제대로 실패해본 경험도 없으면서 실패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알게 되고 나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하며 과정과 시도 자체에 중요성을 두려고 애썼는데도, 여전히 나는 낙담하는 반응 메커니즘을 무의식적으로 지니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그 상황이 오면 일단은 자동적으로 낙담부터 하고 마는 것이다.


‘좋아. 내겐 낙담하는 상카라가 있어. 나는 이걸 이번 생에 풀 거야. 무언가에 낙담하더라도 그 사실로 또다시 낙담하는 굴레에 빠지지 않을 거야.’ 미소를 짓고 즐거운 마음으로 명상을 했다. 신기하게도 한 시간 동안 처음으로 아딧타나에 성공했다.

어떤 일을 잘 못해도 나 자신을 또 그 일로 인해 혐오하지 말자. 그 사실에 저항하지 말자. 그저 하자. 피할 수 없다면, 필요하다면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하자.


그날 법문에서 고엔카 선생님은 사람이 죽는 당시의 마음, 즉 자신만의 상카라를 그대로 간직한 채 다음 생에 산다고 말씀하셨다. 아니 그 상카라가 다음 생에 또 태어나게 만드는 원인이라 말했다. 이번 생에 내가 내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가장 아름다운 마음을 다음 생에 지니고 갈 수 있도록 물려주자고 그렇게 다짐했다.




4일 차부터 글을 너무나도 쓰고 싶었다. 5일 차 때는 온갖 글감이 폭발해서 신기할 정도였다. 산책 한 바퀴를 돌 때마다 글로 쓰고 싶은 소재가 하나하나 생각났다. 나는 빛과 그림자를 생각했고, 내가 그림자가 아닌 빛의 세계를 선택했단 걸 알게 되었다. 그림자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글이 나오려면 채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도 하고 많이 듣기도 했는데 뼈저리게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어딘가 바깥으로 표현을 할 수 없고, 매일 나와 대화하고 성찰하며 산다고 생각했던 나조차도 이렇게까지 집중적으로 나의 내면을 강도 높게 바라본 적이 없었다. 글감이 끝없이 피어나고,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꽉꽉 채워졌다. 쓰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불안하지 않았다. 정말 필요하다면 내가 쓸 글이라면 지금은 잊더라도 언젠가 어떤 계기로도 끄집어낼 수 있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디로션을 가져오지 않은 걸 후회했다. 피부가 건조한데 피부가 다 트고 얼굴 이마에 주름이 생긴 걸 거울로 확인하고 완전히 깜짝 놀랐다. 늙거나 노화되는 게 두렵진 않은데 이렇게 갑자기 환경 변화로 인해 눈에 띄게 주름이 생기는 건 받아들이기 버거웠다. 게다가 튼 부위는 간지럽고 따끔거렸다. 그래도 다시 마음을 잡고 이런 된 일은 어쩔 수 없으며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를 생각하며 나를 달랬다. 괜찮아질 거고 곧 나을 거라고.



2022년 5월 16일, by St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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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 잘 했습니다^^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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