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4/8(월)역사단편30-'지명'을 통해서 보는 역사

in AVLE 일상25 days ago (edited)

2천년전에 적군이 쳐들어왔다. 지킬힘이 부족할때
어떻게 했을까?

주류역사학자들이,
"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은 믿을 수 없다."고 단언하면서
삼국시대의 초기상황에 대해서는

'일본서기'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태도를 보인다.

왜 '삼국사'초기 기록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할까?
물론 당대 일본인 학자들이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이지만.

바로 아래와 같은 기록들이 있기 때문인듯 하다.

신라편에 이런 기록이 있다.
KakaoTalk_20240408_140150249.png

니하1.png

말갈이 '니하'라는 곳을 넘어 쳐들어왔다는 것인데
이 '니하'라는 강이 한반도에 없는 것이다.

사대주의, 식민사관에서 배우길,
조선의 역사는 '한반도 내부'에서 일어난 것이니
모든 명칭도 그 안에 있어야 한다.
만일 명칭이 없으면?
그건 잘못 기록한거다. 거짓말이다.

그래서, 이 '니하'라는 강이 어디인지 궁리한 끝에
위에서 정리한 두 개의 설로 나뉜다는 것이다.

그럼 이런 것도 한번 보자.

image.png

요나라 당시의 국가간 경계선을 논할 때 등장하는 이름이다.

신라와 경계를 한다고 되어있다.
그리고 '니하'라는 이름이 있다.

“청하(수)는 니하(泥河)라고도 부른다”

그러면 '청하'를 찾으면 되는데!

KakaoTalk_20240408_140101294.png

저곳에 '청하'가 있다.

아니 신라의 기록에 왜 저곳이 등장했을까?
그리고 왜 충정, 전라도에 있었다는
백제에게 원군을 요청했을까?
의문이 생긴다.

그런데 뭔가 익숙한 그림이다.

백제서북영토표기수정.JPG

전에, 건륭제가
'백제의 도성과 영토'에 대해 추정할 때 등장했던 지도인데

백제영토.jpg

정밀도는 떨어지지만 개략적으로 추정된 백제의
강역도가 위와 같았다.
그리고 '신라는 백제의 동북쪽에 있다"고 했다.

지도상의 위치를 볼때,
신라와 백제의 접경과
말갈의 침입에 대해
백제에게 원군을 요청한 이유를 추측할 수 있다.

말갈은 저 부분에서 서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역사가 한반도 내에 갇혀 있었다는 전제를 깔고
과거의 기록을 보면,
당연히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가 '사대주의'사상에 젖은 김부식이 책임자였다고 해도
장소와 이름을 지어낼리 없다.
게다가 일부러 지명을 조작할 이유는 더욱 없다.

우리의 과거를 기록한
중국
일본의 역사서

자기나라 역사를 기록하는 원칙을 지킨 우리역사서를 중심으로
비판적으로 양자를 참고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신채호 선생의 '조선 상고사'
건륭제의 '흠정만주원류고'
를 적극 추천한다.

신채호 선생은,
안정복의 동사강목과
건륭제의 '흠정만주원류고'를 긍정적으로 참고했다.

주류(강단)사학자들이
우리기록은 일본것 기준으로 맞추고
일본서기를 참조하면서

신채호 선생의 '조선 상고사'
건륭제의 '흠정만주원류고'

는 외면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들은 한국인이 아닌 것인가?
아직도 우리는 '일제식민지'하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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