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4/27(토)역사단편42- 비루해 보여도 자기밥그릇은 챙겨야지
신채호 선생이 살아있었다면,
이런 작업들은 필요 없었을텐데..
현재의 우리 영토는 어디인가?
휴전선 남쪽으로 끝나버릴 수도 있다.
과거의 영토역시 계속 변했다.
조선시대에 쓰여진 <고려사>를 통해
고려의 영토와
'비루한 조선지배층의 영혼'을 함께 접할 수 있다.
[高麗史] 卷一百三十七 > 列傳 卷第五十 > 禑王 14年 (AD 1388)
大明欲建鐵嶺衛, 禑遣密直提學朴宜中, 表請曰, “昊天廣大, 覆育無遺, 帝王作興, 疆理必正, 玆殫卑懇, 仰瀆聰聞. 粤惟弊邦, 僻在遐壤, 褊小實同於墨誌, 崤嶢何異於石田? 况從東隅, 以至北鄙, 介居山海, 形勢甚偏.
'大明(?)'에서 철령위(鐵嶺衛)를 세우고자 하니, '우(?)'가 밀직제학(密直提學) 박의중(朴宜中)을 보내어 표문으로 청하기를,
“하늘은 넓고 커서 만물을 덮어 키움에 남김이 없으며, 제왕이 일어남에 영토는 반드시 바로잡아지니, 이에 비루한 간청을 다하여 위로 성총을 번거롭게 하고자 합니다. 저희 나라는 먼 땅에 궁벽하게 있어서, 땅이 작고 얼굴에 난 사마귀와 같으니, 땅의 척박하기가 돌밭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하물며 동쪽 귀퉁이로부터 북쪽 변방까지 산과 바다를 끼고 있어서 형세가 매우 편벽됩니다.
고려사의 저자는 자신이 중국인이라고 생각한 것인가?
고려의 왕에 이름을 쓴다..'禑'라고
계속 읽어보자.
傳自祖宗, 區域有定, 切照鐵嶺迆北, 歷
文·高·和·定·咸等諸州, 以至公嶮鎭, 自來係是本國之地.
조종으로부터 전해내려온 데에 구역이 정해져 있으니,
살펴보면 철령(鐵嶺) 따라, 북쪽으로
역대로 문주(文州)·고주(高州)·화주(和州)·정주(定州)·함주(咸州) 등 여러 주를 거쳐 공험진(公嶮鎭)에 이르니,
원래부터 본국의 땅이었습니다."
'공험진'은 이전 포스팅에서 지도를 인용했던 동북9성의 하나다.
윤관이 설치했고 그 안에 '선춘령'이 있는데
그곳이 표기된 지도를 포스팅에 담았다.
[고려사절요] 권제33, 에는 다음과같은 내용이 있다. 명나라의 입장이다.
표문에 “철령의 인호(人戶)에 대해,
조종(祖宗) 이래로 문(文)ㆍ화(和)ㆍ고(高)ㆍ정(定) 등 주(州)의 고을은 본래 고려에 예속되어 있었다” 하였으니, 왕의 말대로 하면 그 땅이 고려에 예속되어야 마땅하나,
이치와 사세로 말하면 그 몇 고을의 땅을 지난날에는 원에서 통치하였으니, 지금 요동에 예속되어야 마땅하고, 고려의 말하는 것을 경솔히 믿을 수 없으니, 반드시 끝까지 살펴야한다.
또한 고려는 큰 바다로 막히고 압록강으로 경계를 삼아서 일찍이 옛날에는 따로 나라를 이루었으나..
옛날에는 한문을 깊이 배워야 읽을수 있었을 사료들이지만, 국가기관과 뜻있는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번역이 되어있으니 마음만 있으면 이처럼 쉽게 읽을 수 있다.
우리가 배운 역사(?)에 의하면,
고려의 주장에 대해 홍무제가 무시하고 '철령위'를 설치하려 했고
격분한 우왕이 요동토벌을 결심한다.
이성계가 출정했다가 '회군'해서 조선을 멸망시킨다는..
'철령위'라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명칭이다.
'철령'에서 따온 이름일 것이고,
위치가 어디냐에 따라 고려의 영토가 달라진다.
이제막 원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난 고려가
근거도 없는 주장을 했을리는 만무하고..
'철령'을 구글에서 검색하면'铁岭(鐵嶺:철령,테린)'이 나온다.
참고로 지도에서 진한 초록색은 '논밭'이 아니라
높은 산악지대다.
테린시의 좌측은 평야지대이고 우측은 산악지형이다.
테린이 '철령'의 중국어이므로,
고려사에 나오는 지명이 그곳이라면 간단한데
역사서에서 '지명'들이 계속 변했다는것을 알고있으니 더 살펴본다.
'철령'에 대한 논쟁에는 '開源路(개원로)'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명나라의 주장은,
"개원로는 원나라가 다스리던 땅이었으니, 당연히 명나라의 것이다"
라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고려의 주장은,
"개원로의 이남은 대대로 우리 땅이었다."라는 것이다.
그럼 개원로는 어디인가?
구글에서 검색해본다.
중국에서 작성한 설명이다.
100%믿으면 안된다.
항상 아전인수격으로 기록한다.
하지만 참고하지 않을 수 없다.
'원 4년 (1267년) 개원만호현을 '요동로' 로 개칭 하고 행정 구역은 황룡주 (현재의 길림성 농안현 )였다. '
1286년에 '개원로'로 바뀌었다.
원나라때 '개원로'라는 이름이 생겼다.
계속 읽어보자.
명나라 태조는 개원로를 대체하기 위해 '鐵嶺衛(철령위,톄링웨이)'를 건설했다 .
고려가 개원로에서 한반도 북부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자 ,
명나라 는 조선반도 북부의 개원로 영토를 포기하고 (明朝放棄了開元路朝鮮半島北部的領地)
톄링 수비대를 요동 풍지성(今遼寧瀋陽東南奉集堡 )으로 옮겼다.
<출처:위키피디아>
현,요령심양의 동남에 있는 '奉集堡(봉집보,풍지성)'으로 옮겼다는 이야기다.
지도상에 표시된 곳이다.
鐵嶺衛又從奉集堡移至銀州今遼寧省鐵嶺市)
1393년, (철령위:톄링위)는 풍지보에서 인저우(현재의 랴오닝 성 톄링시 )로 이동했다.
나중에 좀더 북쪽으로 이동했다는 뜻이다.
이게 무얼 의미할까?
여러가지 해석이 있겠지만,
결국 조선반도에서 철령위까지의 영토가 고려의 것이었음을
인정했다는 이야기다.
사실 그곳이 문전옥답도 아니고,
여러 유목민족들이 활동하는 곳이었으므로
명나라로서도 굳이 분쟁거리로 남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이상한 지도는 이제 치우고
새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오래전 이야기라지만,
남들은 다들 그걸 자기것으로 만들려고 혈안인데
내다 버리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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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평안한 휴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