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한 조각

in zzan5 years ago

며칠전 우연히 오래 된 전화번호부를 뒤져보게 되었다. 지금은 번호가 바뀐 사람도 있고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도 있고 이미 유명을 달리한 사람도 있다. 번호 하나 하나를 넘기면서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 사람 특유의 몸짓이나 사연이 어제 일처럼 뭉게뭉게 피어난다.

그러면서도 결혼해서 가정을 이룬 사람들은 벌써 뒷 번호가 같은 가족이 생겨나고 그들만의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특히 요즘은 전화번호도 모계사회로 가고 있어 딸이 결혼하면 아내의 번호를 따라가기도 하고 처가 형제들과 번호를 공유하기도 하고 단톡방을 만들어 자주 소통하는 것 같다.

나만 해도 구식이라 결혼하고 핸드폰이 없고 집에 유선전화 하나로 살던 시절이라 친정집과 통화도 어려웠다. 그러다 핸드폰이 생기고 당연히 뒷번호를 그 번호로 했다. 당시에는 어느 집이나 별 다를 바 없이 대부분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지금은 강아지도 스마트폰이 있다고 할 정도로 누구랄 것도 없이 손에서 스마트폰을 떼지 못하고 산다. 그렇다 보니 전화번호 끝자리가 생일인 경우가 많고 젊은 연인들은 자기들이 만난 날을 번호로 하는 커플도 있다고 한다.

얼마 전 어디서 본적이 있는 것 같은 발신번호가 떴다. 오래 전에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었다. 뜻밖에도 이혼을 했고 아이는 친정에 맡기고 악착같이 일을 했다. 우울한 사춘기를 보내던 아들이 가출을 했고 전화번호까지 바꾸었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지금 전화번호도 자기 신세와 똑같은 외톨이라고 한다. 그래도 아들을 기다리느라 옛날 번호를 바꿀 수가 없다고 한다. 대신 아들을 찾으면 똑 같은 번호를 갖고 싶다고 한다. 사람도 외로워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싶어하듯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전화번호도 누군가와 짝을 이루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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