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작가 응모작- 시] 빈 들

in zzan4 years ago (edited)

손바닥 발바닥에 옹이가 박히도록
쫓아다니며 쓰다듬던 논배미도
발가락만 남은 밑둥들끼리 줄지어 눈을 맞는다

모처럼 배를 비운 흙은 이제야 깊은 숨을 쉬면서
한가하게 내리는 눈을 바라본다

생살을 파고드는 아픔을 견디며
뙤약볕도 퍼붓는 소나기도 뇌성벽력도 모두 잊었다

품안에 길러 낸 벼 포기들이
눈물 한 방울 비치지 않고 떠난 뒤
허망한 마음도 야속한 마음까지도 다 비우고

다만 한 가지
남겨진 그루터기마저 매달리는 뿌리를 떨치고
한 몸이 되어 뒹굴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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