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추린 오늘의 역사 9월 30일
1910년 일제 토지조사사업 착수
일본제국은 대한제국을 병합한 뒤 식민통치의 경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실시했다. 대한제국은 농업국가였고 그 기반은 토지였기 때문에, 우선 토지 소유현황을 파악해야 했다. 그래야 조세(세금)를 정확히 매겨 재정 기반을 마련하고, 토지로 자본을 마련할 수 있게 함으로써 경제 개발을 촉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에서도 토지 소유권은 존재했으나 이를 증명할 제도가 취약했다. 아니 제도가 있기는 했으나 자주 쓰이지 않았다. 세종 때 지방관청이 발급하는 입안이라는 제도가 만들어지진 했으나 증명은 주로 계약서인 문기로 이루어졌다. 입지라는 더 간략된 제도가 생겨났지만 마찬가지였다.
물론 조선 조정이 주기적으로 토지조사작업인 양전을 하고, 토지문서인 양안을 만들어 각 관청에 배치하였지만, 20년에 한 번씩 이루어지는 데다가 측정방법 때문에 근대적인 관점에서 신뢰성이 떨어졌다.
문제는 1720년 경자양안 이후 대한제국의 광무양전까지 무려 179년간 실시되지 않았고, 그나마 가장 최근에 있었던 광무양전때는 토지의 실소유주와 실제 면적을 정확히 조사하지 못하여 큰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일제는 통감부 시절부터 결수연명부를 작성하여 치밀한 사전조사를 거친 뒤, 병합이후에는 조선민사령을 통해 사유재산권을 확립하고 1912년부터 토지조사사업에 착수했다.
1963년 이준 열사 유해 환국
905년 11월 일제가 무력으로 위협하여 국권을 박탈하자 전덕기, 최재학 등과 함께 을사조약폐기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여 이준이 그 상소문을 짓고 서울시내에서 격렬한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1906년 국권회복을 위한 실력양성을 목적으로 국민교육회를 조직하여 보광학교를 세웠고 함경도 출신 유학생 장학회인 한북흥학회를 조직, 뒤에 이를 서우학회로 발전시켰다.
1907년 6월 헤이그에서 개최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의 밀령으로 이상설, 이위종 등과 합류, 헤이그에 도착했으나 일본의 방해로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였다. 세 특사는 일제의 침략을 규탄하고 을사조약이 무효임을 선언하는 한편 신문에 알려 국제여론을 환기시켰다. 그러나 서구열강이 냉담하였으므로 이에 격분하여 헤이그에서 자결로 생을 마쳤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고, 1963년 환국후 서울 수유리 묘지에 안장되었다.
1981년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제24회 하계올림픽 서울 개최 의결
태양의 얼 올림픽 성화가 서울에서 역사적인 불길을 올리게 됐다.
온세계 젊음의 정예들이 꿈에 그리는 올림픽. 88년 대회를 밝혀줄 그 숭고한 불길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서울 하늘에 타오르게 됐다. 30일 하오 11시 45분(한국시간)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는 비밀투표를 통해 52-27로 이번 총회 최대의 관심사인 88년도 여름철 올림픽 개최지로 서울을 선정했다.
이제 서울시민들은 명실공히 세계 굴지의 도시에 산다는 긍지를 가져도 좋게 됐다. 한국동란이 안겨준 전쟁의 상처가 아직은 아련한 우리로서는 꿈에나 그릴 수 있었던 일이 현실로 그 얼굴을 나타낸 것이다.
IOC 총회는 이날 투표에 앞서 비밀회합을 갖고 서울과 나고야 두 도시를 지지하는 상반된 견해를 다시 논의한 다음 투표에 들어갔다. 서울보다는 나고야라던 당초의 예상을 뒤엎고 서울이 승리를 거두자 박영수 서울시장은 역시 IOC는 올림픽헌장과 대회의 기본 정신에 입각, 올바른 판단을 내려주었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투표에 참가한 79명의 IOC 위원들과 수많은 보도진, 그리고 국제 체육계 인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52-27로 서울 유치결정이 공식발표되자 장내는 놀라움과 환호로 술렁거렸다.
1999년 AP통신, 6·25 전쟁 당시 미군의 노근리 양민 학살 특종 보도
입으로만 전해지던 미군의 무차별 양민 학살이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미국 언론에 의해 사실로 밝혀졌다. `전직 병사들이 한국의 학살에 대해 말하다''라는 제목의 29일(우리 시간으로 30일)치 기사는 1950년 7월27일부터 29일까지 사흘동안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에서 일어난 주민 떼죽음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다.
미군이 이 마을사람 500여명을 피난시켜주겠다는 구실로 꾀어 철길에 모아놓고, 공군기를 띄워 포탄과 기관포를 퍼부어 살상했고, 심지어 쏟아지는 포탄을 피해 다리 밑으로 달아나던 어린이와 부녀자들을 향해 기관총으로 무차별 사격을 가해 수백명을 사살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AP통신에 보도된 이후 전국 도처에서 미군에 의하여 학살당했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주민들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미군에 의해 숨진 주민 수는 마산 곡안리 83명,창녕 초막마을 40∼50명, 사천 조장마을 70여명, 의령 정동마을 33명, 함안장지리 30∼100명, 익산역 50여명, 단양 영춘면 상2리 300여명, 영춘면 노동리 500여명 등이다.
2016년 국방부 사드 배치 부지로 경북 성주 성주골프장 최종결정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의 대체 부지로 경북 성주군 초전면 롯데스카이힐의 성주골프장이 30일 최종 결정됐다. 성주골프장이 고도가 높은 곳에 위치해 있고 기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다른 후보지에 비해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평가다.
그러나 주민반발과 비용문제 등이 남아있어 사드 배치를 둘러싼 논란과 잡음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성주골프장, 내년 말 배치 목표에 가장 적합 국방부는 이날 한·미공동실무단이 대체부지에 대해 평가한 결과 성주골프장을 사드 배치의 최적합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성주골프장은 국방부가 제시한 부지 선정의 6가지 기준을 대부분 충족한 것으로 전해졌다. 평가 대상이었던 대체부지는 성주골프장과 금수면 염속봉산, 수륜면 까치산 등 3곳이었다. 한·미 군당국이 내년말 실전배치를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부지 조성을 위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드는 적의 미사일을 종말 단계(미사일이 포물선으로 날아오다 목표물을 향해 낙하하는 단계)에서 요격하는 미사일 방어체계다. 미사일을 포착하는 레이더 각도는 5도 정도 하늘을 향하게 돼 있다. 사드 포대가 높은 곳에 위치하면 그만큼 민가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1932년 충남도청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김
1948년 한글전용법 국회 가결
1961년 공업표준화법 공포
1966년 광화문지하도 개통
1988년 김수녕 서울올림픽 여자양궁 개인전 우승
1988년 88서울올림픽 양영자·현정화조, 탁구 여자복식 에서 금메달
1990년 한국-소련 국교관계정상화
1995년 5.18관련자 기소촉구 가두시위 확산, 5.18특별법제정촉구 전국대학서명교수모임 발족
2000년 박찬호 샌디에이고와의 최종전서 완봉승 18승(다승5위)
2001년 경의선 문산역~임진강역 구간, 51년 만에 재개통
2009년 영산재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
2014년 세계무역기구(WTO)에 쌀관세율 513% 양허 수정표 제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