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추린 오늘의 역사 5월 18일
1452년 조선왕조 단종 즉위
문종이 승하하고 4일이 지난 뒤 단종은 근정문에서 즉위교서를 반포하고 조선 6대 임금으로 즉위하였다. 즉위교서에 24개 항목의 세부지침을 덧붙였는데 가장 핵심으로는 국정 운영을 의정부 중심으로 하겠다는 것과 부정과 청탁을 뿌리 뽑기 위해서 분경(奔競)금지법을 확대 적용하겠다는 내용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분경금지법 확대에 있었다.
분경금지법이란 청탁과 부조리를 방지하기 위하여 하급관리가 상급관리의 집을 사사로이 방문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말한다. 드디어 단종에 이르러서는 의정부 대신들뿐만 아니라 모든 종친에게도 이를 확대 시행한다고 발표를 한 것이다.
수양대군은 도승지 강맹경을 불러 강하게 항의하는 형식을 취하고 강맹경은 조정에서 공론화하는 역할을 했다. 다음 날도 수양대군은 안평대군을 데리고 가서 의정부에 항의했다. 결국 명분에 밀린 단종은 하루 만에 분경금지법을 철회하고 말았다.
태종은 분경금지법을 가장 엄하게 시행한 왕이었다. 분경금지법은 부정 청탁 방지라는 본래의 취지를 떠나 왕권 강화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임이 증명된 셈이다. 분경금지법을 철회하지 않았더라면 수양대군의 세력은 원천 소멸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숙부에게 죽임을 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조선 왕조를 통틀어 단종만큼 완벽한 정통성을 지닌 임금은 아무도 없다. 그는 적장손으로 태어나 임금이 된 유일한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양대군이 세조로 등극하여 임금에 오르긴 했지만, 정통성 문제로 내내 고생을 했다. 그런데도 세조라고 붙인 이유는 형식적으로나마 새로운 정통성을 만들어 보려 한 흔적이다.
1968년 하일레 셀라시에 에티오피아황제 한국방문
가거라! 살아 돌아올 생각을 하지말고,
전부 거기에 가서 모두 맹렬하게 싸워서 전사하거라!
만약 사지가 멀쩡하게 돌아온다면, 짐의 이름을 걸고 절대로 용서치 않겠다!
너희들의 죽음의 대가로 저들에게 "자유"라는 것을 저들의 손에 꼭 안겨주거라!
우리 민족이 과거에 이탈리아인들에게 무엇을 당해왔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그 고통은 뼛속까지 알고있을 것이다.
그렇다! 짐도, 너희 모두도 잘 알고 있다.
그걸 알면서 모른척 한다면, 침략자들보다 못한 더러운 위선자일 뿐이다.
1951년에는 한국에 황실 직속 병력을 포함한 군대(총 3518명)를 파병했다. 이후 1963년 한국과 공식 수교하였고, 1968년에는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직접 방한하기도 하여 박정희와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기념우표까지 나왔다. 춘천에는 에티오피아 참전비가 있으며, 당시 황제가 심었던 상록수도 지금까지 잘 자라고 있다. 덕분에 춘천과 아디스아바바 시와 자매결연할때 이걸 계기로 삼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6.25 전쟁 당시 멀리서 파병을 하고 이후 한국에도 방한한 것 때문인지 괜찮게 보는 사람들이 꽤 많았으며, 공산정권을 세운 반란군에게 살해당한 점을 들어 당시 반공적 이념까지 더해져 그의 최후에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지만. 그래도 한국전쟁 파병으로 생긴 인연 덕분인지 21세기 한국 NGO의 구호개발사업이나 한국기업의 경제협력 등에서 어느정도 에티오피아가 특혜를 보는 점은 있다.
결국 하일레는 1974년, 쿠데타로 폐위되어 궁전에 유폐되어, 그 다음해인 1975년 8월 27일 갑자기 사망하였다. 당시 황제의 나이는 83세였다. 1992년에야 궁전 내부에서 발견되었고, 암살당했을 가능성도 있어보인다. 그나마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유해는 2000년 11월 5일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가 황실의 예법에 따라 장례식을 거행하고 아디스아바바 성 삼위일체 대성당에 안치되면서 안식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1970년 금산 위성통신지구국 첫 중계 실시
체신부의 위성통신 금산 지구국이 1970년 5월 18일 오전, 일본 오사카 엑스포 한국의 날 기념식 실황을 TV중계로 성공, 한국통신도 위성시대에 접어들었다. 6월 2일 개국을 앞두고 이날 문공부 요청으로 조심스럽게 중계방송을 한 지구국의 기능은 거의 완전했고, TV에 비친 화면도 아주 선명했다.
이날 중계는 일본 NHK-TV의 협조로 일본의 위성지구국을 통해 통신위성 인털새트 3호로 보낸 기념식 실황화면을 금산지구국이 받아 마이크로웨이브로 대전근교 중계소로 송신, 다시 서울시외전화국의 회선을 통해 서울의 3개 TV방송국에서 각 가정의 수상기에 보낸 것이었다.
금산지구국 개국으로 지금까지 일본을 경유해야 했던 미국 등 각종 국제통신도 미국의 통신위성 인털새트 3호를 통해 직접 송ㆍ수신할 수 있게 되었으며 세계적 뉴스와 사건도 직접 위성중계를 통해 볼 수 있게 됐다. 한국이 통신위성중계국이 된 것은 세계에서 44번째인데 금산 지구국엔 높이 35m의 지주에 직경 6m의 원형안테나가 장치되어있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1980년 5월 18일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광주민주화운동이 시작됐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되자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세력은 12ㆍ12사태를 야기해 권력을 장악하고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민주인사에 대한 대대적인 투옥을 감행했다.
이에 항의하는 산발적인 시위가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으나 특히 광주에서는 투입된 계엄군과 전남대 학생들과의 충돌로 유혈사태가 빚어졌다. 시위군중에 대한 계엄군의 초기 과잉진압은 시민들의 반정부감정을 폭발시켜 시위가 급속도로 확대됐다.
계엄군의 발포로 사상자가 속출하자 시위대는 시민군을 체계적으로 조직, 계엄군에 대항했으나 27일 새벽 0시 외곽도로를 봉쇄하고 탱크 등으로 무장한 계엄군이 총을 난사하며 광주 전역의 시위를 진압함으로써 광주민주화운동은 수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비극적인 막을 내렸다.
이 운동은 광주사태, 광주항쟁 등으로 불려오다가 1988년초 민주화합추진위원회의 건의에 따라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됐다.
1987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폭로
당시 군부독재 정권시절에는 교도소에 들어온 반독재 민주화운동가들에게 우호적인 교도관들이 상당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교도관과 경비교도대원들의 폭압적 통제가 기승을 부렸던 1986~87년 당시 상황에는 더더욱 그랬다. 대놓고 표현은 못 해도 이런 교도관들이 은근히 여러 가지 편의를 봐주었다.
그리고 이런 교도관 중에 한 명이 사건이 축소은폐됐다는 것을 이부영에게 알려주었고, 이부영이 은밀하게 사건의 전말을 기록한 문서는 또 다른 교도관 1명을 통해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김승훈 마티아 신부에게 전달되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
또한 당시 검안의는 박종철이 물고문에 의해 죽었다는 것을 알고, 거기에 박종철은 남영동 대공분실이 아닌 병원에서 숨졌다고 조작하여 은폐하려는 경찰의 음모를 알아채고 당연히 같은 죽음이라도 고문실에서 사망과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 중 사망은 뉘앙스 자체가 다르다. 결과적으로 박종철의 시신은 경찰병원에서 사망판정을 받는다.
검안의는 화장실에서 잠입하고 있던 기자를 만나서 박종철이 고문으로 죽었음을 알렸다. 소리소문없이 은폐될 수도 있었던 박종철 사건은 한 의사의 양심으로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정권 내 알력이 이것의 은폐를 막았다는 견해도 있다.
2002년 김대중 대통령 3남 김홍걸씨 알선수재 등 혐의로 구속
김대중 대통령의 3남 홍걸씨가 2002년 5월 18일 구속됐다.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로비 청탁 등 각종 명목으로 기업들과 최규선(미래도시환경 부사장)씨로부터 주식과 현금·수표 등 36억7000여 만원을 받은 혐의다.
검찰은 이 중 대가성 등 범죄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가 인정된 액수는 15억9000만원이라고 밝혔다. 홍걸씨에게는 최씨로부터 받은 돈 중 9억4914만원을 차명으로 관리하면서 증여세 2억2474만원을 포탈한 혐의(조세범처벌법 위반)도 적용됐다.
한편 검찰은 최씨 등의 부탁을 받고 2001년 4월, 6개 계열·협력사들에 시가 2만원이던 타이거풀스 주식 20만주를 주당 3만5000원에 매입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배임)로 포스코 유상부 회장과 김용운 부사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또 김희완(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씨가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로비 청탁과 함께 타이거풀스 주식 2만3000주(시가 4억6000만원)와 3개 계열사 주식 3만4800주를 받은 혐의를 잡아내고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이미 기소된 최규선씨에 대해서도 타이거풀스 주식 2만6000주(시가 5억2000만원)를 받은 혐의 등을 추가로 잡아내고 이 부분을 추가기소했다.
1990년 광주민중항쟁 10주년을 맞아 광주에서는 망월동 5·18 묘역에서 추모제 및 기념식'5·18 항쟁 계승대회’
1927년 제1회 연희전문대-경기의전 정기야구전 열림
1961년 군사혁명위원회 이름 국가재건최고회의로 변경 치안국 전국 폭력배1,500여명 검거
1990년 한국여성단체연합․서울지역여대생대표자협의회 반일시위, 노태우 대통령 일본방문에 앞서 일본정부가 위안부문제에 대한 사실은폐 중단과 진상규명, 공식사과를 촉구
1993년 일제하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생활안정지원법안 국회통과
1998년 박세리 동양인 최초로 LPGA 메이저대회(맥도널드 LPGA챔피언십) 우승, 2007년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 명예의 전당과 미국여자프로골프 명예의 전당 헌액
2007년 태안 앞바다에서 주꾸미 낚던 어부 김용철 씨 고려시대유물 발견, 문화재청이 7월24일 12세기중반 침몰된 배 인양해 국보급 고려청자, 고려시대 목간 등 유물1만9천여점 찾아냄, 고려시대 목간은 첫 발견
2009년 오늘 서상희 충남대교수 연구팀 신종플루의 인체백신 세계최초로 개발
2017년 오늘 손흥민(토트넘) 시즌21호골, 한국인 유럽리그 한시즌최다골(차범근 19골 1985-86시즌) 31년만에 갱신, 영국진출2시즌만에 29골로 잉글랜드무대 한국인통산최다골(박지성 27골) 갱신
2020년 오늘 코리아 소사이어티 2020년 밴플리트상 수상기관으로 대한상공회의소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