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추린 오늘의 역사 3월 31일

in zzan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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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신유사옥
신유교난이라고도 한다. 조선 후기에 집권자들은 성리학을 한층 교조적으로 신봉하면서, 그 사회 질서에 위협이 되는 이념을 배격하고 있었다. 그러나 천주교는 하나의 학문에서 신앙으로, 소수의 지식인들로부터 민중 사이로 널리 퍼졌다.

특히 중국 북경교구에서 주문모 신부를 조선에 파견한 이후, 약 4,000명이던 신자가 수년 만에 1만 명으로 증가할 정도로 교세가 확장되었다. 당시 남인들은 정치적·이념적으로 노론 집권세력과 지향점이 달라 갈등이 깊었는데, 그들 중 일부가 천주교를 탐구하고 신앙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많은 공격을 받고 있었다.

1800년 순조가 즉위하여 김구주(金龜株)의 누이인 영조 계비 정순왕후가 수렴청정하면서 벽파가 일시에 정권을 잡았다. 벽파 정권은 먼저 시파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벌였으며, 이단의 배격이라는 원론적 입장에서 천주교와 남인에 대해 탄압을 가했다.

그리하여 천주교에 관여했던 남인 인사와 당시 교회를 이끌고 있던 인물들이 대거 체포되어, 그해 2월에 정약종(丁若鍾)·최창현(崔昌顯)·최필공(崔必恭)·홍교만·홍낙민·이승훈(李承薰)이 서소문 밖에서 처형당했다. 권철신(權哲身)·이가환(李家煥)은 옥사했으며, 이존창은 충청도 공주로 압송되어 처형되었고 정약전(丁若銓)·정약용(丁若鏞) 형제는 유배당했다.

황주까지 피신했던 주문모 신부도 자수하여 효수되었다. 가을에는 황사영이 탄압의 전말을 보고하고 중국이나 서양의 힘을 동원하여 천주교 신앙의 자유를 얻게 해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베이징의 교회에 보내려 한 일이 발각되어, 이에 관계된 인물들이 처형되었다.

이 사건은 신자 약 100명이 처형되고 400여 명이 유배된 같은 해 12월에 척사윤음이 공표되면서 일단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천주교 박해는 계속되었다.

1902년 정동 손탁호텔 건립
손탁호텔의 창립자인 손탁(본명:마리 앙투아네트 존타크(Marie Antoinette Sontag))은 독일인으로 1885년 러시아 공사였던 베베르를 따라 대한제국을 방문하게 된다. 손탁은 베베르의 처형 혹은 처제였다고 한다.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등 각종 언어에 능통했던 손탁은 한국어도 빠른 속도로 습득하면서 명성황후의 신뢰를 얻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궁궐에서 양식 조리와 외빈을 접대하는 임무를 수여받게 된다.

고종과 명성황후는 손탁에게 궁내부와 러시아공사관 사이 사이의 접선이라는 임무를 맡겼다. 손탁은 한러밀약으로 대표되는 반청운동을 주도하는 등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훌륭히 수행해냈고, 이를 기특히 여긴 고종은 1895년 한옥을 1채를 그녀에게 선사한다. 이 한옥은 을미사변 등으로 혼란스러웠던 당시 대한제국의 정세속에서 각국 외교관들의 각축장이 되면서 아관파천과 같은 각종 정치적 책략의 진원지가 된다.

손탁 자신이 이런 계획에 깊이 관여했고, 아관파천 이후 고종은 그녀에게 기존의 한옥을 방 5개짜리 양옥으로 업그레이드(?)시켜주는 것으로 보답한다. 이 양옥을 손탁이 서구풍으로 인테리어하고 각종 투숙객을 맞이했던 것이 바로 손탁호텔의 출발점이다.

2층이 VIP실로 사용됐고, 1층은 일반 외국인 객실 또는 식당, 커피숍으로 이용했다. 특히 정동구락부로 위시되는 개화파 관료들과 서구 외교관들의 회합장소로 자주 이용되었다. 한편 손탁은 1909년 모국인 독일로 돌아갔고, 이후 이화학당이 이를 사들여서 기숙사로 사용하다 1922년 철거하고 새로운 건물을 설립한다.

하지만 이 건물도 6.25 전쟁 당시 폭격으로 붕괴되었고 프라이홀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재건되었지만 1975년에 화재로 전소된 뒤 철거되었고, 한동안 빈터로 남아 있다가 2004년에 이화여자고등학교 백주년 기념관이 새로 들어섰다. 백주년 기념관 주차장 입구 앞에는 이 자리에 손탁호텔이 있었음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1906년 대한자강회 조직
장지연·윤효정·심의성·임진수·김상범 등이 발기인이 되어 헌정연구회를 확대하여 1906년 3월 발족했다. 독립협회 회장이었던 윤치호가 초대회장이었다. 보호국체제 아래에서 계몽운동은 정치운동의 성격보다는 사회문화운동·교육활동·산업진흥운동을 중심으로 발전했는데 대한자강회는 바로 이러한 대표적 단체이다.

교육개발과 식산흥업(殖産興業)·외세배격을 표방하고 전국에 25개의 지회를 조직했으며 〈대한자강회월보〉를 간행하는 한편, 정기적인 연설회를 열면서 그 영향력을 넓혀 나갔다. 의무교육 실시, 악폐의 금지, 단발시행 및 유색(有色)복장의 착용 등을 정부에 건의하기도 했다.

1907년 고종의 강제퇴위와 순종 즉위를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나자 통감부는 그해 8월 27일부로 공포된 보안법 제2조의 규정을 적용시켜 이완용 내각의 내무대신 송병준으로 하여금 8월 21일 대한자강회를 강제 해산시켰다. 이에 따라 이 회는 11월 김가진을 회장으로 하는 대한협회로 바뀌었다. 한편 대한자강회의 활동에는 고문으로 있던 일본인 오가키[大垣丈夫]가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러한 점이 배일성(排日性)을 약화시키는 큰 요인이 되었다.

1928년 오늘 불교전수학교(동국대 전신) 설립
중앙교무원은 1925년 말 평의원회를 열어 ‘불교전문학교(가칭)’를 설립하기로 하고 총독부로부터 빌려 쓰고 있던 불교중앙학림 부지를 불하받았다. 자체 부지가 확보되자 중앙교무원은 총독부에 전문학교 설립에 필요한 인가신청서를 제출하고 1926년 말부터 본격적인 건축공사에 착수하였다.

불교계는 전문학교 설립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주장하였으나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중앙교무원은 전문학교로의 인가를 포기하고, 불교전수학교로 재차 인가를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중앙교무원은 1928년 1월 총독부에 불교전수학교 설립인가를 신청하여, 그해 3월 31일에 인가를 받았다.4월 30일에 문을 열었다.

불교전수학교는 1928년 개교 첫해에 입학한 학생은 모두 36명이었다.
불교전수학교의 학부는 기존의 본과와 예과 외에 선과(選科)과 특과(特科)를 증설하였다. 이 두 과는 불교 현대화를 위하여 기성 승려들로 하여금 불교과목을 이수토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편 이 시기에는 각종 학생활동과 학술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1981년 언론중재위원회 발족
언론보도로 인하여 발생한 언론과 개인의 법익(法益) 사이의 충돌을 적절히 중재함으로써 법정투쟁을 거치지 않고도 언론사와 침해받은 개인의 중요한 이해관계를 균형 있게 처리하는 것이 목적이다.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중재를 거쳐야만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위원회의 주요 업무는 정정보도(訂正報道)의 청구에 의한 분쟁을 중재하고 있으며, 그 밖에도 <언론기본법>과 <언론침해시정권고기준 言論侵害是正勸告基準>(1981년 제정)에 따라 현저하고 명백하다고 판단되는 언론침해의 내용을 심의, 필요한 경우 그 발행인 또는 방송국의 장(長)에게 시정을 권고하고 있다.

각 중재부와 사무처에서는 정기간행물과 방송에 공표된 사실적 주장에 의하여 피해를 받은 자가 그 공표가 행해진 날로부터 1개월 이내에 중재를 신청하면 이를 접수하고, 14일 이내에 해당 중재부에서는 접수된 날로부터 7일 이내에 중재기일을 정하여 당사자간에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중재절차를 진행한다.

중재결과 당사자 쌍방간에 합의가 성립될 경우에는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있다. 중재가 성립되지 않을 경우에는 신청인은 14일 이내에 법원에 제소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또한 1995년 12월 30일에는 정기간행물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의 개정으로 이 위원회에 중재결정권이 부여되어 언론중재제도가 보다 강화되었다.

1999년 대구 가천동 고분군서 신라 금동관 출토
대구가천동고분은 금호강의 남쪽 강변에 맞닿은 구릉 위에 있다. 이곳에서는 고산지구의 핵심인 선상지가 산에 가려져 보이지 않고, 금호강변의 북쪽 끝자락과 성동토성만 조망할 수 있다. 대구선 철도를 이곳으로 옮기게 되어 영남문화재연구원이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삭평되는 구릉을 발굴하였다. 조사는 삼국시대 분묘와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공방지로 나누어 이루어졌다.

삼국시대 분묘는 석곽묘 204기, 석실묘 7기였으며, 다양한 질그릇과 철기류 그리고 금동관을 비롯한 장신구 등 3,500여점이 수습되었다. 분묘는 대부분 수혈식 석곽묘였으며, 묘광을 등고선과 나란하게 판 것이 주류이지만 직교되거나 엇비슷한 것도 일부 있다. 단곽식뿐만 아니라 주부곽식도 확인되었다. 주부곽식에는 이혈주부곽과 동혈주부곽이 공존한다.

부장품은 장신구뿐만 아니라 질그릇들도 신라양식 일색이었다. 이 고분군에서 특히 주목을 끄는 부장품은 168호분에서 출토된 ‘금동제 나뭇가지모양 대관[金銅製樹枝形帶冠]이다. 이 금동관은 신라양식에 속하지만, 물결무늬와 돌대 무늬처럼 전형적인 것에서 벗어난 퇴화단계의 요소를 지녔다. 또한 철탁과 함께 부장되었는데, 이러한 양상은 신라의 중앙에서 대관의 유행이 사라지고 지방에서 오히려 모방 제작하던 게 늘어나는 6세기 중엽이후의 모습이다.

대구가천동고분은 5세기 후엽부터 6세기 중엽까지 조영되었다. 168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과 철탁은 신라 마립간기에 중앙에서 확립된 고유한 제의가 불교공인 이후인 신라 중고기에 지방에서 새롭게 부각되는 과정과 양상을 살필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2004년 향고래떼 70여년 만에 동해안에서 목격
소설 ‘백경’에 등장하기도 했던 향고래. 국립수산과학원 사진 제공.
2004년 3월 31일 우리나라 동해안에서 70여년 만에 향고래 무리가 목격됐다. 국립수산과학원은 4월 8일 “지난달 31일 경북 포항 구룡포 앞 10마일 해상에서 어미와 새끼들로 구성된 8마리의 향고래 가족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향고래는 이빨고래류 중에서 유일한 대형 고래로 몸 길이는 13~ 19m, 무게는 최대 57t에 달하며 창자 속에서 생기는 방향성 물질이 고급 향수의 재료로 쓰이면서 과거 무분별하게 남획됐다. 또 향고래는 체내의 기름이 윤활유와 완전 연소유 등으로 쓰이면서 18세기 미국 포경산업의 비약적인 발달 원인이 됐고 소설 ‘백경’의 소재로 등장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소재 반구대 암각화(신석기시대 말기부터 청동기시대에 그려진 바위 그림)에 두 마리의 향고래가 그려져 있고, 1930년 울산 근해에서 다섯 마리가 포획된 기록이 마지막으로 남아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관계자는 “앞으로 새끼들이 회귀 본능으로 계속 동해로 돌아와 개체수를 증가시킬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2009년 제2롯데월드 건설 최종 허용
10여년 동안 논란을 거듭하던 제2롯데월드 건설이 최종 허용됐다.
정부는 민관 합동 행정협의조정위를 열고, 제2롯데월드 초고층 신축을 허용하기로 최종 확정했다. 이에 앞서 지난 2007년 7월 개최한 행정협의조정위 본회의에서 “초고층 건물을 건립할 경우 비행안전에 지장을 줄 수 있다” 는 국방부의 의견을 수용, “제2롯데월드 건축고도를 203m이내로 제한한다” 며 112층(555m) 높이의 제2롯데월드 신축 계획을 허가하지 않기로 했었다.

서울시는 이에 따라 향후 체결될 예정인 ‘공군본부 롯데물산 간 합의서’ 의 이행을 조건으로 100층 이상의 제2롯데월드 초고층 신축을 허가할 수 있게 됐다. 공군과 롯데 측은 이에 앞서 서울공항 동편활주로 방향 3도 변경과 이에 따른 장비·시설물 보완, 서울공항에 배치된 경공격기 KA-1대대의 원주 이전에 대해서도 사실상 합의했었다.

국방부와 서울시는 대신 롯데물산의 합의서 이행 여부를 수시로 점검하고, 롯데물산이 합의서 내용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건축법상 건축공사 중지, 건축물 사용 불승인 등 적극적으로 대처키로 하는데 합의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서울구치소 수감
31일 새벽 구속영장이 발부된 박근혜 전 대통령(사진)이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박 전 대통령은 미결수용자 신분으로 수감되며 독방이 배정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맡은 강부영 영장전담판사는 “주요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면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전날 오전 박 전 대통령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나와 영장실질심사를 받았다. 전직 대통령이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것은 사상 처음으로, 피의자 입장에서 결백을 주장했으나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이 줄곧 각종 혐의를 일체 부인한 탓에 증거 인멸 우려를 낳았다는 점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은 지난 10일 헌법재판소가 탄핵 인용 선고를 한 지 3주 만에 구속 수감됐다. 그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뇌물수수를 비롯해 직권남용, 공무상 비밀누설 등 총 13개 범죄 혐의를 받는다.

박 전 대통령은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미결수용자 신분으로 즉시 수감 절차를 밟게 된다. 서울구치소 측은 '신입자'로 분류된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사진촬영, 지문채취, 수용자 번호지정 등 법률이 정한 조치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백희나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수상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심사위원회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백 작가를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시상식이 연기되면서 스웨덴 스톡홀름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집’에서 수상작이 발표됐다.

심사위원회는 “백 작가는 소재와 표정, 제스처에 대한 놀라운 감각으로 영화 같은 그림책을 통해 외로움과 결속력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며 “작품은 경이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이며 감각적이고, 아찔하면서 예리하다”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이어 “백 작가의 기법은 팝업북 뿐만 아니라 종이 인형과 종이 장난감 책이라는 오랜 전통과도 연결된다”며 “고도로 독창적인 기법과 예술적인 해법을 통해 이 장르를 개발하고 재탄생시켰다”고 평가했다.

이 상은 <삐삐 롱스타킹>을 쓴 스웨덴의 유명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기리기 위해 스웨덴 정부가 2002년 제정한 국제문학상이다. 올해는 67개국 240여명이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상금은 50만 크로나(약 6억원)다.

백 작가는 스웨덴 일간지 DN과의 인터뷰에서 “믿어지지 않는다. 매우 놀랍고 행복하다”며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 자신이 아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소감을 말했다.

2004년 출간된 <구름빵>은 고양이 남매가 하늘로 떠올라 아침을 거른 채 허둥지둥 출근하는 아빠에게 구름으로 만든 빵을 전해주는 내용이다. 텔레비전 시리즈와 뮤지컬로도 제작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백 작가는 이 작품으로 2005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3년에는 한국출판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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