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추린 오늘의 역사3월 30일

in zzan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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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6년 원효대사 입적
불교를 대중화하여 중생을 구하는 일에 힘을 쏟은 원효대사가 686년 3월 30일 입적했다. 신라 진평왕 39년(617년)에 태어난 원효는 소년시절 화랑도에 몸을 담았으나 깨달은 바가 있어 31세 되던 648년(진덕여왕 2년) 황룡사에서 머리를 깎았다.

원효는 34세 때 의상과 당나라에 불교를 배우러가다 고구려군에 붙잡혀 귀환했다. 그는 10년 뒤 다시 의상과 도당길에 오르지만 여행도중 해골에 고인 물을 식수인줄 알고 먹고는 깨달음을 얻어 유학을 포기하고 서라벌로 돌아간다. “진리는 결코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는 깨달음을 얻은 이 일화는 유명하다.

또한 원효는 생전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현존하는 것만도 22권이며, 전하지 않는 것까지 포함하면 2백40권이나 된다. 그의 ‘금강삼매경론’ 은 중국 고승들로부터 세계적인 대작이란 절찬을 받았고, ‘대승기신론소’ 역시 중국 승려들이 ‘해동소’ 라 부르며 즐겨 인용한 명저였다. ‘십문화쟁론’ ‘유심안락도’ 등도 당과 일본에 큰 영향을 미쳤다. 원효의 사상은 화쟁사상, 일심사상, 무애사상으로 모아진다.

1108년(고려 예종3) 오늘 윤관 여진족 물리치고 개선
여진족이 고려의 국경을 침범하여 많은 백성들이 집과 재산을 잃고 죽임을 당하였다. 왕은 여윤관에게 여진족을 물리치도록 명령을 내렸다.

윤관은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서, 우선 여진족 추장 우야소에게 사신을 보내어 꾸짖었다.
여진족은 이웃 나라로 대접해 주면 물러가겠다고 했다. 힘들이지 않고 여진족을 물리치고 개경으로 돌아온 윤관은 왕에게 건의 하여 별무반을 설치하였다. 별무반은 기병과 보병, 승병으로 이루어진 특별한 군대다. 즉 말을 잘 타는 사람들로 구성된 신기군, 20세 이상의 장정들로 이루어진 신보군, 젊은 승려들로 이루어진 항마군이다.

1107년, 예종 2년에 여진족이 다시 고려 국경을 침범하였다. 예종은 윤관을 북벌군 도원수로 임명하여 여진족을 물리치도록 명하였다. 윤관은 20만명의 대군을 이끌고 북쪽 국경지대로 나아가 여진족을 몰아냈다. 그리고 윤관은 그 곳에 성을 쌓고 남쪽 지방 백성들을 이주시켰습니다. 이때 윤관이 쌓은 성이 바로 ‘윤관의 9성’입니다.

9성을 쌓은 뒤에도 굶주린 여진족은 끈질기게 9성을 침입했다. 이러한 침입을 고려는 계속해서 막아냈지만 9성 지역이 하루도 편할 날이 없자 예종은 신료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9성의 반환 여부를 논의했다. 대신들은 9성을 여진에게 내주자고 하였다.

예종은 다수의 의견을 들어 9성을 내주고 편안함을 쫓기로 했다. 결국 윤관은 피땀 흘려 쌓은 9성을 여진에게 돌려주고 쓸쓸히 말 머리를 돌려 개경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벼슬도 사양하고 서재에 파묻혀 책을 읽으며 지내다가 예종6년(1111년) 5월에 눈을 감았다.

1450년 세종대왕 붕어(崩御)
세종은 1418년 왕위에 올라 1450년 54세로 붕어(崩御)할 때까지 32년 동안 보위에 있었다. 그의 재위 시절은 수구세력인 개국공신들이 거의 세상을 떠난 뒤여서 과거를 통해 발굴된 신진 두뇌들이 마음껏 국정에 참여한 시기다. 집현전을 통해서 평생 학문에만 전념토록 뒷받침해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인 훈민정음 창제라는 역사적 대업을 이뤄 놓는다.

세종의 업적은 필설로 형언할 수가 없다. 국가의 오례(吉·嘉·賓·軍·凶禮)와 서민의 사례(冠·婚·喪·祭禮)를 새로 정립해 간소화 했고 농사직설 삼강행실도 팔도지리지 의방유취 등과 법률 역사 유교 문학 어학 천문 지리 의학 농업기술에 관한 수많은 서적들을 발간했다.

또 성곽수축과 전함수리로 국방을 튼튼히 했고 두만강과 압록강 유역에 4군과 6진을 설치해 오늘날의 국경으로 확정짓는 한편 일본 대마도도 정벌해 항복 받았다. 세계 최초의 측우기와 혼천의 해시계 물시계 등을 제작하고 박연으로 하여금 아악을 정리케 하는 한편 세금을 공평하게 했으며 노비들에 대한 사형도 금하도록 했다.

세종은 중년 들어 소갈증(당뇨)으로 고생했다. 말년 들어 건강이 악화되자 세종 27년(1445) 세자 문종에게 정사를 맡기고 정치일선에서 거의 물러났다. 1450년 2월 17일 아끼던 막내왕자 영응대군 사저에서 세종이 승하하자 만조백관 신하와 백성들은 물론 하늘도 울고 땅도 울었다.

1994년 뇌사자 심장 첫 원거리 이식성공
뇌사 환자로부터 적출한 심장을 구급차로 이송, 3시간이 지난 뒤 다른 병원 환자에게 이식하는 수술이 1994년 3월 30일 국내최초로 성공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같은 병원내에서 심장적출과 동시에 심장 이식을 한 적은 있었어도 이처럼 원거리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는 국내 전지역이 헬기 등으로 3시간 이내의 거리라는 점을 감안할 때, 심장 제공자의 지역과 관계없이 이식수술이 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 구로병원에서 이루어진 심장적출 수술은 서울대병원 김기봉 교수가 실시했으며, 대동맥 절단 후 심장근육의 산소 소모량을 줄이기 위해 적출한 심장을 영상 4도로 냉각된 심근보존용액에 담아 이송했다.

2004년 한국 ‘고속철 시대’ 개막, 고속철(KTX) 개통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경부고속철도 1단계 구간 개통식 이후 서울역을 출발했다. 1992년 착공 이후 12년 만에 경부고속철도(KTX)가 완공돼 2004년 3월 30일 오전 서울역 광장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인 고건 국무총리와 강동석 건설교통부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통식을 가졌다.

이날의 고속철도 개통은 경부선에 열차가 달리기 시작한 지 꼭 100년째를 맞는 날이라 그 의미가 더했다. 고속열차의 실제 상업운행은 4월1일을 시작으로 대구·부산은 물론 전철화한 호남선을 이용해 광주·목포로도 운행됐다.

KTX는 ‘예약대기제’를 도입해 예약·예매가 끝나 구입할 수 없는 이용자들의 불편을 덜어주었다.1905년 경부선 개통 당시 서울~부산 주행에는 무려 17시간이나 걸렸다. 이날 개통된 KTX는 서울~부산을 2시간40분에 주파했다. 100년 전의 첫 열차에 비교하면 6.4배, 현재의 새마을호보다는 1.6배 빠른 속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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