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추린 오늘의 역사 12월 4일

in zzan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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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조선 고종21)년 갑신정변 일어남
갑신정변(甲申政變)은 1884년(갑신년)에 김옥균을 중심으로 한 급진 개화파가 서구식 근대화를 목표로 일으킨 정변이다. 일본공사와 일본군의 지원을 받아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에서 난을 일으켰다.

고종을 속이고 새 내각을 구성해 정강 14조 등 개혁을 추진하려 했으나 청군이 창덕궁에 주둔한 일본군을 공격하고 민중들이 일본공사관을 공격하자 퇴각하는 일본군을 따라 일본으로 망명하여 삼일천하로 끝났다.

이 정변에서 급진 개화파는 여러 온건 개화파들을 살해한다. 윤태준, 한규직], 이조연 등 영선사 출신이나 민씨 척족 중에서 개화에 적극적이었던 민영목, 민태호, 그리고 조영하 등 여러 온건 개화파들이 살해 당했다. 개화파 상당 수의 인재들이 사라져 향후 근대화에 걸림돌이 되고 청의 내정간섭이 심해지는 등 큰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

1950년 한국전쟁중 국군 평양 철수
북한의 수도 평양을 점령했던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개입과 잇따른 패전으로 전세가 불리해 짐에 따라 평양을 다시 내주면서 38선까지 대대적으로 후퇴한 사건을 말한다.

평양 탈환작전 이후 평양시는 역사적 정통성과 대한민국 헌법상 당연히 대한민국 영토이어야 했다. 그러나 당시 유엔의 입장에서는 대한민국이 평양을 실효지배를 한적이 없고 국군 역시 유엔군 소속이므로 대한민국이 단독으로 통치하는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이에 국군과 유엔군 사이에 평양의 통치권을 놓고 갈등이 있었다. 결국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전쟁 중에 대한민국의 통치권은 38선 이북인 평양에는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유엔이 10월 21일 평양 시정위원회를 설치하고 유엔군이 평양을 통치하였다.

북한의 지원 요청에 중국은 6.25 전쟁에 개입하기로 결정하고, 10월 19일 펑더화이 예하 30개 사단과 38만 명의 대병력이 압록강을 넘어 한반도로 들어왔다. 중공군은 전면적 공세를 펴며 60만 병력의 인해전술로 총반격전을 전개하였다. 이 전투로 청천강 전투가 발발하였고, 유엔군이 이 전투에서 대패하면서 중공군은 유엔군이 평양에서 물러나도록 강요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 한국에 3년간에 걸쳐 210억달러 지원 발표
IMF와 한국 정부는 협약에 서명했다. 총 지원금은 550억 달러. 이중 IMF가 210억 달러를 지원하고, 세계 은행 100억 달러, 아시아개발은행(ADB) 40억 달러, 기타 미국, 일본 등 제2선 지원금 200억 달러였다. 「제2선 지원금」이란 IMF, 세계은행등 공공 자금 지원이 끝나고 나서도 위기가 심화될 때 지원하는 금액을 말한다.

350억 달러로 일단 한국 위기가 진정되면 미국은 한국에 돈을 빌려주지 않아도 된다. 그나마 제2선 지원금중 일본이 100억 달러로 가장 많이 배당받았고, 미국은 이의 절반인 50억 달러, 다른 나라들이 50억 달러였다. 미국은 IMF의 배후에서 사사건건 간섭하면서 돈 내는 문제에서는 아주 인색했다.

미국 재무부는 의회의 반대를 피하기 위해 50억 달러를 「외국환 안정화 기금(ESF:Exchange Stabilization Fund)」에서 조달할 생각이었다. 이 기금은 지난 1930년에 창설된 것으로, 재무부가 달러가치 안정을 위해 의회의 승인을 받지 않고 행정부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다.

IMF의 한국 지원금은 사상 최대 규모였다. 태국 170억 달러, 인도네시아 180억 달러를 합친 규모보다 크고, 1995년 멕시코에 대한 530억 달러보다 많다. 한국에 대한 IMF의 자금 지원은 국제적인 논란을 낳았고, 미국 내에서는 의회가 IMF 지원법안을 보류하는 결정적 동기를 제공했다.

2000년 1인시위 첫 등장
1인 시위의 첫 등장은 2000년 참여연대의 국세청 앞 시위로 알려져 있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변칙상속 의혹을 제보한 참여연대는 국세청이 무반응으로 일관하자, 국세청 앞에서의 시위를 계획하였다. 그러나 국세청 주변은 외국 대사관 밀집 지역이라 시위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이에 꾀를 내서 고안해 낸 방법이 1인 시위였다고 한다.

사람이 피켓을 드는 것에서 더 나아간 방식이 등장했다. 시위의 본질인 압박을 가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1명이 들고 있는 것으론 힘들다. 그러다 보니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 되기위한 방식을 채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2017년 한미공군 역대최대규모 비질런트 에이스 훈련 시작
비질런트 에이스 훈련은 한미 연합 전력의 전시 임무수행능력과 대비태세를 강화하기 위한 연례적인 훈련이다.

비질런트(Vigilant)는 ‘경계를 늦추지 않음’을 뜻하며, 에이스(ACE)는 ‘Air Component Exercise’의 약자다. 훈련은 한미 공군의 오랜 우정과 굳건한 신뢰,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시아 안정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상징하며, 전시와 같이 주야간에 걸쳐 24시간 출격이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훈련에는 한국 공군작전사령부 예하 11·19·20전투비행단, 29·38·39전투비행전대와 미7공군 및 태평양사령부 예하 제8·51전투비행단, 해병항공단, 제35방공포병여단 등이 참가해 총 230여 대의 항공기를 동원한 실전적 전투훈련을 벌인다.

한미 공군은 유사시 공중작전을 총괄하는 한국항공우주작전본부(KAOC)를 중심으로 실전적인 훈련을 운영, 일선 비행부대의 연합항공작전 절차 숙달 및 군수 지속지원능력 향상 등 전시 임무수행능력을 총체적으로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1899(대한제국 광무3)년 독립신문 제4권 278호 종간
1922년 조선사편찬위원회 설치
1954년 해인사 팔만대장경 보수
1969년 제주도서 당나라 엽전2만개 발굴
1970년 서울 남산2호터널 개통
1979년 육군본부 계엄보통군법회의 10.26 관련자 공판 개시


IMF 구제금융 합의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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