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추린 오늘의 역사 1월 17일
1864(조선 고종1)년 이하응 흥선대원군 섭정 시작
흥선대원군은 일단 19세기 초부터 시작된 세도정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안동김씨 주류들을 대거 정계에서 몰아냈다. 그는 조선 후기 오랫동안 계속된 붕당 간 갈등과 국가 재정 파탄의 일부 원인인 중요한 서원을 제외한 모든 서원을 철폐했다.
법전간행을 통해 적합한 법률 제도를 확립하였고 비변사를 폐지하고 양반에게도 세금을 징수하였으며 지방관리의 부정을 막고 민생을 안정시켰다. 양반들은 크게 반발했지만, 흥선대원군의 개혁으로 상류층의 권리만 누렸던 양반층에게 그 부담이 일부 돌아감으로써 국고는 풍족해졌고 양인의 부담은 줄어들었다.
왕권의 강화를 도모하는 정책을 위주로 개혁을 주도해 나갔는데 이는 조선이 세계사의 커다란 물결 속에 휩쓸리지 않았다면 일정 정도는 주효한 개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서세동점의 위기 속에서 흥선대원군의 왕권강화에 대한 집착은 일부분 시대착오적인 면이 없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왕권강화의 상징으로 무리하게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당백전과 원납전으로 경제구조를 흐려 백성의 삶을 다시금 피폐하게 만들었으며, 천주교도들을 박해하고 쇄국정치를 펴 국제관계 악화시키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일 기회를 놓쳐버렸다. 서구의 세력과 평화롭게 수교할 기회를 놓쳐버린 사건이기도 하였다. 1873년 고종은 친정을 선포하였으며 흥선대원군은 원치 않는 정계 은퇴를 했다.
1974년 항일투사 박열 사망
항일투사 박열이 1974년 1월 17일 북한에서 사망했다. 박열은 경북 문경출신으로 1919년 일본에 건너가 무정부주의 운동에 뛰어들었고 1921년 사회주의 비밀결사 흑도회를 조직했다.
1922년 비밀결사 불령사(不逞社)를 조직하고, 다음 해 일본인 애인이자 동지인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와 함께 일왕 히로히토 암살을 실행하려다 체포돼 1926년 3월 사형선고를 받았다.같은 해 4월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가네코는 그해 7월 옥중에서 자살했고, 박열은 1945년 해방과 함께 22년 2개월 만에 석방되어 조선 건설 동맹을 조직하고 재일거류민단 단장이 되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때 귀국, 6·25 전쟁 때 납북돼 1974년 오늘 북한에서 사망했다.
저서로는 ‘신조선 혁명론’이 있다.
1990년 치안본부, 범인식별위해 유전자(DNA) 지문감정 방법 도입
우리나라의 경우 2000년부터 유전자 감식 기법이 보편화되기 시작하였다. 현재 국제적으로 장비나 방법이 표준화되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중합효소연쇄반응기법(PCR)을 활용하고 있는데, PCR 기법이 도입되면서 검출할 수 있는 유전자 마커들이 매우 다양해졌다. 최근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좀더 효과적인 방법을 검토하면서 유전자 감식 기법에 있어 최적의 방법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이제는 현장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얼마나 빠르게 결과를 얻을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앞으로는 실험을 거치지 않고 현장에서 직접 결과를 밝혀내는 방법들을 추진하고 있으며, 보다 정확한 식별, 처리속도, 정확도 등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한편 최근에는 DNA를 이용, 고생물학이나 고고학과 관련하여 과거와의 관계성을 조명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강력 범죄자들을 중심으로 DNA를 채취, 데이터베이스화하여 관리, 운영하고 있는 유전자정보은행은 '95년 영국이 처음으로 도입하였으며, '98년 미국 역시 FBI에서 도입하였으나, 현재 입법화를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2004년 유전자정보은행을 설치하였으나, 관리적인 문제와 인권 관련 문제로 인하여 현재 유보 상태에 있습니다. DNA 데이터의 경우 연쇄 사건의 범인을 잡아내는 데 활용될 수 있다. 특히 미해결 사건이나 연쇄 살인의 중복된 용의자를 알아내는 데 매우 유용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전의 수사를 지원하는 형태에서 현재는 수사를 리드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1998년 북한, 드라마 ‘진달래꽃 필 때까지’ 중단하지 않으면 보복조치 협박
북한은 17일 KBS가 방영중인 연속극 ‘진달래꽃 필 때까지’ 를 즉각 중단하지 않을 경우 이에 대한 보복조치를 취하겠다고 위협했다.
내외통신은 이날 북한이 대남선전용 평양방송 논평을 통해 “남조선괴뢰들이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에도 불구, 끝내 텔레비전 연속국 ‘진달래꽃 필 때까지’ 를 만들어 방영하고 있다” 면서 “우리는 이것을우리에 대한 또 하나의 도전, 정치적 선전포고로 간주해 도발자들에게 이미 필요한 계산을 해놓고 있다” 고 방송이 계속될 경우 보복을 가할 것임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평양방송은 이어 “남조선 당국이 우리의 방송중단 요구를 무시하고 새해 벽두부터 반북 모략극을 만들어 방영, 남북관계를 또 다시 대결의 극한점으로 몰아가고 있다” 고 비난하며 “연속극 방영이 중단되지 않고 계속될 때 그로부터 생겨나는 후과는 남조선 당국과 당사자들이 책임을 져야 할 것” 이라고 주장했다.
2019년 법원 제주4.3 재심에서 무죄취지로 공소기각
제주지법 제2형사부는 17일 제주4·3 수형인 18명이 청구한 '불법 군사재판에 대한 재심' 선고 공판에서 피고인들에게 ‘사실상 무죄’라는 공소기각 판결을 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17일 ‘공소기각’구형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당시 이들이 받은 군사재판은 과거의 국방경비법에 따라 진행돼야 하는데 기본적인 예심조사도 거치지 않았고, 피고인을 위한 변호 등도 없었다는 게 공소기각 사유다. 제주4.3 수형인 18명은 2017년 4월 군사재판이 불법이며, 제대로 된 재판을 통해 죽기 전에 명예 회복시켜달라며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을 주도했던 양동균 4·3 도민연대 대표는 “이번 판결이 불법군사재판에 대한 원천무효 선언 등이 담긴 제주 4·3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청구인들은 제주 4·3 사건이 진행 중이던 1948년 가을부터 이듬해 7월 사이 당시 고등군법회의(군사재판)에 의해 내란죄나 국방경비법의 간첩죄 혐의로 수형생활을 했다. 일부는 연좌제 등으로 가족들도 함께 피해를 입었다. 양근방(86·제주시 조천읍) 씨는 "과거, 좋은 회사에 취직한 아들이 나의 전과 때문에 3개월 만에 잘려 마음이 아팠는데 이번 판결로 마음이 후련하다"고 말했다.
4·3 당시 고등군법회의는 1948년부터 1년에 걸쳐 제주에서 진행된 군사재판이다. 당시 상황이 기록된 수형인 명부에는 2530명의 명단이 게재돼 있으며, 대부분 행방불명되거나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한편 제주지검은 판결 직후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 판결문 신속히 검토해 항소 포기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BC37(신라 혁거세21)년 경성을 쌓고 금성이라 명명
1930년 서울학생들 제2차 만세시위운동
1951년 정부와 국회 유엔 정전안 반대(중국도 정전 거부)
1992년 방한한 미야자와 일본총리 일본군위안부문제 포함 과거사문제 사죄
2005년 한일협정(1965년 체결) 관련문서 일부공개
2020년 영화‘기생충’(편집감독 양진모) 미국영화편집자협회(ACE) 장편영화 드라마편집상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