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추린 오늘의 역사 1월 16일

in zzan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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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독립운동가 편강렬 의사 순국
편강렬 의사는 1907년 8월 군대가 해산당하고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자, 16살의 어린 나이에 직접 의병에 참여한다. 이때 이강년(李康年) 의병장을 찾아가 군사를 모집하는 소모장으로 발탁되었다.

1923년 7월 산해관(山海關)에서 김이대(金履大), 백남준(白南俊) 등과 함께 의성단(義成團)을 조직하고 단장이 되었습니다. 의성단은 장춘(長春), 길림(吉林) 등 대도시를 활동무대로 삼아 남만주철도주식회사 파괴, 조선총독과 관동장관 암살, 조선 내 관공서 파괴, 군자금 모집을 주된 활동을 했다.

그러다 의성단에 잠입하여 밀정 활동을 하던 승정윤의 밀고로 하얼빈에서 체포되었고, 신의주경찰서로 압송되었으며, 9월 27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제1회 공판이 열렸는데 이때 편 의사는 “처음에는 동지를 규합할 결심이었고, 그다음에는 20만 명의 부하를 인솔하고 원수를 갚겠다는 결심, 마지막으로는 나의 목숨이 떨어질 때까지 싸우고 싸워 동경에 조선인 총독을 두려고 결심했다.”라고 호언했다고 한다.

1925년 3월 16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7년이 확정되었고, 신의주형무소 독방에서 수감생활을 하였는데 옥중에서 척수염이 악화하여 1927년 4월 15일 형집행정지로 풀려나 치료를 받았지만, 1929년 1월 16일 순국했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1944년 시인·독립운동가 이육사 순국
그의 시는 식민치하의 민족적 비운을 소재로 삼았다. 죽는 날까지 독립운동을 펄쳤던 그로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독립운동단체 의열단에 가입한 그는 중국과 한국 일본을 오가며 조국독립에 헌신했다.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류되.3 년형을 받고 투옥됐다. 그때의 수인 번호가 264 였다.그의 호 육사(陸史)는 이 수인번호에서 따온 것으로 자신의 호에도 독립의지를 굳건히 담았다.

출옥 후 다시 중국 최고의 문인들과 사귀었다.1933 년 귀국한 그는 육사라는 이름으로 황혼. 등의 시를 발표해 시단에 게뷔했다. 시쓰느것에 몰두할수록 독립의지는 더욱 강해졌다. 동인지에 그 유명한 "청포도" 를 비롯 교목. 광야 등을 발표했다. 1943년 중국으로 건너갔다가 어머니와 형의 소상을 치르러 일시 귀국 했다가 형사들에게 체포 되었다. 며칠 후 베이징을 압송된 그는 현지의 일본 영사관 감옥에서 갖은 고문에 시달리다가 1944년 1월 16일 새벽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의열단 단원이자 친척이었던 이병희가 수습하여 화장했다. 연락을 받은 동생 이원창이 유골을 서울로 가져와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장 했다. 1960년에 그의 유해는 고향 안동 원촌의 뒷산으로 이장 되었다. 1968년 안동시에 그의 시비가 건립되었다. 2004년에는 이육사 문학관이 세워졌다. 한때 이육사가 서울 성북구 종암동 62번지에 거주했기에 그곳에 이육사 기념관이 있다. 1990년 건국 훈장 애국장을 수훈하였다.

1982년국전을 대한민국미술대전으로 개편
1949년부터 1981년까지 30회를 이어진 대한민국미술전람회(國展)를 1982년 1월 16일 대한민국미술대전으로 개편하면서 기성작가전과 분리하여 순수한 작가 발굴 및 육성을 위하여 새로운 제도를 실시하였다. 초기에는 반관반민(半官半民) 형태로 운영되다가 이후 한국미술협회가 주관하였고, 1986년부터는 기존 국전의 10개 부문 중에서 사진과 건축 부문은 각 해당협회가 독자적으로 운영하도록 이관하였으며, 동양화 ·서양화 및 조각의 구상 ·추상 구분을 폐지, 통합하였다.

전시회는 봄과 가을로 나누어 개최되는데, 봄에는 서예(사군자 포함) ·공예 부문, 가을에는 회화 1-한국화, 조각 및 회화 2-양화(洋畵) 부문으로 구분하여 열린다. 시상은 각 부문별로 대상과 우수상을 각 1점씩 뽑고 상금과 매입을 일원화하여 매입 상금제로 시상한다. 또한 대상 수상자는 해외연수의 특전이 주어진다.

특징은 회화를 동양화 ·서양화로 구분했던 것을 공식적으로 한국화 및 양화로 개칭한 것과 민간단체에서 주관하는 순수한 작가 발굴을 위한 미술대전이라는 점에 있다. 1993년 제12회때부터는 1부 비구상(봄 개최), 2부 구상(가을 개최) 계열로 분리 실시하고 시상도 전부문에서 1명의 대상 수상자만을 선정하였다. 한국 최대 규모의 신인미술작가 등용문으로 국전의 맥을 잇고 있다

1992년 김우중 대우 회장 북한 방문
1992년 상반기 가동을 목표로 아시아 최대 규모의 남북합작 봉제 공장을 해주에 건설키로 북과 합의했다.

평남 만포에 남한 기업이 진출할 2백만평 규모의 대규모 경공업단지를 조성해서 의류, 컬러 TV, 냉장고, 신발, 양식기, 가발, 봉제완구, 면방직 등 8개 품목 공장 세우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서에는 김달현 부총리 겸 대외경제위원장이 서명)

김우중 회장은 92년 12월에도 북경에서 김달현과 남북경협문제를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부부 강간죄 첫 인정 판결
우리나라 법원이 처음으로 부부간의 성폭행을 인정했다. 결혼하면서 한국으로 온 필리핀 아내 가 생리 중이라며 성관계를 거부하자 흉기로 협박해 강제로 관계를 가진 한국인 남편에 대해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폭행과 협박에 따른 강제적 성관계는 부부 사이라도 일반적인 강간죄와 다를 것이 없다”면서 법이 강간죄로 보호하려는 대상은 여성의 정조가 아니라 성적 자기 결정권이며, 아내 또한 이런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판시했다.

1926년 김봉룡과 김성규의 작품 2점 파리 만국박람회 입상
1948년 오페라 ‘춘희’ 첫 공연
1965년 동양텔레비전 VTR에 의한 녹화중계 시작
1988년 대검 박종철군 고문치사 은폐조작사건 관련 강민창 치안본부장 구속
1995년 삼성그룹 방북조사단 나진-선봉지역 개발합의 발표
2013년 여성 납치살해범 오원춘 무기징역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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