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 든 • 손

in zzan3 years ago

철따라 꽃피고 이파리 우거져
노을빛 살구가 익고 새들이 깃들이는
너른 그늘을 만들어주던 나무

어느 날부터
철도 아닌 누런 살구를 떨어뜨렸다
벌레가 먹었다고 발로 굴리면서도
나무를 살펴보지 않았다

파란 잎이 살구색으로 떨어지고
극성스럽게 오르내리던 벌레들이
찢겨진 가지에서 바글거릴 때
개미굴처럼 속이 빈 나뭇가지를 보았다

골다공증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아픈 삭신을 끌고 다니다 마루 끝에 누워
발가락에 걸쳐진 신발을 놓치지 않으려고
속치마 밑으로 빠져나온 어머니의 정강이를
처음 본 날처럼

내가 갈아엎기 전의 봄 흙에게/고영민

산비알 흙이
노랗게 말라 있다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 푸석푸석 들떠 있다

저 밭의 마른 겉흙이
올봄 갈아엎어져 속흙이 되는 동안
낯을 주고 익힌 환한 기억을
땅속에서 조금씩
잊는 동안

축축한 너를,
캄캄한 너를,
나는 사랑이라고 불러야 하나
슬픔이라고 불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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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이나 나무처럼 주기만하는 존재가 어머니 아닐까요?

그래서 어머니를 대지에 비하기도 한답니다.
방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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