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
박노혁 시인의 신작시 3편을 소개합니다.
<눈빛>
---박 노 혁---
바라본다는 것은
눈빛을 보내는 일이다.
우연히 스친 그녀의 눈빛이
온종일 가슴에서 빛날 때가 있다.
돌아서 가는 그녀의 차가운 눈빛에
온 마음이 얼어붙을 때가 있다.
그 빛은 존재의 중심에서 솟아올라
아무도 숨길 수 없다.
부디, 나의 눈빛이 가닿는 곳이
봄 햇살 가득한
꽃밭이 되기를 기도한다.
<봄>
---박 노 혁---
바람이 스쳐 지나고
산수유가 피었다.
노란 불꽃들이 산을 밝히고
오솔길 지나는 작은 짐승들이
나무 아래로 몸을 숨긴다.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겨울나무 숲에
꿈틀거리는 생명이 지천으로 피어나고
움켜렸던 숨을 내쉰다.
그래, 모든 것은 기다려볼 만한 일이다.
눈앞에 없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길>
---박 노 혁---
큰 눈이 오고 난
아침
그토록 명료했던 길들이 사라졌다.
길이 사라지면
보이는 것들
길도 언젠가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것
아무도 그 길이 거기 왜 있었는지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다.
내가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길이 우리를 데리고 가는 삶.
눈이 온 아침
그토록 명료했던 길들이 없어지고
길의 기억을 따라
발자국들이 길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