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군 제5차 전역(반격) : 1951. 4.22~6.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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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의 제4차 전역은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역동적인 공격과 방어의 마지막 전역이라 할 수 있다. 이후에는 진지전, 소모전의 양상을 보인다. 이는 군사적으로 상대방을 이길 수 없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1. 일반상황
미군은 본토에서 제40,45사단을 4월 상순부터 한반도로 증원하여 제16군단을 편성하였다. 이는 북한쪽의 어느 지점에 상륙하여 정면의 공격부대와 "한반도의 허리에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 하려 한다는 것으로 중공군은 인식하고 있었다.
중공군은 제4전역을 통해 시간을 확보하여 한반도에 새로 투입된 제3,19병단과 포병부대가 전개하였다. 이 부대들은 중공군의 고질적인 문제인 화력, 보급 측면에서 부족한 면이 많이 있었다.

2. 유엔군의 의도 및 배치
중공군은 전쟁 기간 내내 유엔군이 후방으로 상륙할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유엔군의 상륙을 저지하기 위한 작전개념, 부대배치, 역량 할당을 고민하고 있었다.
유엔군은 방어로 전환하여 문산, 연천, 지포리, 화천, 양구, 원통, 간성 지역을 고수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제1방어지대, 제2방어지대, 제3방어지대를 편성하였다. 이를 위해 미 제1군단을 서부전선, 미 제9군단을 중부전선, 미 제10군단을 동부전선 그리고 한 제3, 1군단을 미 제10군단과 함께 동부전선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미 제1기병사단과 제187공정연대, 한국군 제2사단은 미 제8군의 예비대로서 각각 춘천, 수원, 원주에 위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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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의 인해전술은 부족한 화력, 보급을 다 이겨내버렸지요. 무섭습니다.

'인해전술'은 중공군의 전술과 전투수행 과정을 폄하 하는 의미가 있는 용어라고 평가합니다.

아무래도 '적'군이었기에 우리나라에서 보편적으로 쓰고 있는 듯 합니다. 폄하하는 단어라면 쓰지 않는게 맞겠네요. 감사합니다.

숫자로 밀어 붙이는 전투법에 대한 대응은 '고구려'가 사용했던 이른바 '청야전술'이지요. 먹거리를 전부 없애버리는..보급이 가장 중요하니까 시간을 끌어서 힘을 빼는 탁월한 전략이라고 봅니다.

중국군이 아니라 중공군이라고 부르는게 맞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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