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아, 바르샤바, 아 클럽 2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4 years ago

존과 발락 둘 사이에서 어느 순간부터 춤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클럽을 갈 모양인가 보다 싶어 강 건너 불구경하듯 심드렁하게 듣고 있는데 카리나가 툭툭 날 치더니 묻는다.

“젠, 너도 같이 춤추러 갈거지?”
“아니, 난 내일 새벽에 런던가는 비행기를 타야 해.”

한 3년 전만 해도 비행기 시간 같은 건 염두에도 두지 않고 ‘콜’을 외쳤을 거다. 하지만 이제는 춤이 예전만큼 재밌지도 않고 체력이 받쳐주지도 않는다.

“너, 비행기 시간이 언젠데?”
“새벽 7시, 숙소에서 5시에는 나가야 해.”
“너 위즈 에어지?”
“어떻게 알아?”
“나도 같은 비행기 거든. 난 밤새고 가려고.”

춤추러 갈 생각은 정말 1도 없었지만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애절하게 나를 바라보는 카리나와 경쟁심을 자극하는 존의 말에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의기투합한 넷은 클럽 원정대를 결성하고 클럽을 찾아 나섰다. 폴란드를 수십 번도 더 왔다는 존을 철썩 같이 믿고 폴란드 초심자 셋은 그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 다녔지만 어째 그리 믿음직스러운 가이드는 아니다. 택시를 타고 걷고 좁은 골목길을 누비며 그가 데려간 클럽은 문을 닫았거나,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헤매자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존은 클럽은 포기하자며 다양한 폴란드 맥주를 파는 펍으로 우리를 끌고 들어갔다.

"그냥 여기서 맥주나 마시는 건 어때?"
“난 좋아.”
“그래, 맥주나 마시자.”

존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발락과 나와 달리 카리나는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다시 펍에서 나왔다.

“여기 클럽이 있어.”

혼자 구글 지도를 뒤져보던 카리나를 따라 우리 셋은 또 우르르 이동했고 도착한 곳에는 세련되지 않은 건물에 CLUB 이라 적힌 글자가 큼지막하게 빛났다. 그 앞에는 호객하는 여자들과 기도 보는 남자가 서 있다. 딱 봐도 안에 손님이 없을 것 같은 곳이었다. 모두가 망설이고 있는데 존이 먼저 나선다.

"입장료가 얼마예요?"
"여기는 스트립 클럽이에요."
"아 역시..."

이미 예상했던 존과 달리 나는 이 클럽이 스크립 클럽일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 그저 시대에 떨어진 촌스러운 클럽이라고 여겼을 뿐이다. 알고 나니 문 앞에서 호객하는 여자들 손에 들린 전단지의 헐벗은 사진도 눈에 들어온다. 스트립 클럽이라는 걸 알고도 우리는 바로 자리를 뜨지는 못했다. 침울했던 카리나의 표정에 화색이 돌았기 때문이다.

“이런 카리나. 넌 스트립 클럽이라도 갈 작정이야?”

존은 질렸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지만 카리나는 춤을 출 수 있다면 스트립 클럽이 아니라 파이트 클럽까지도 갈 정도의 굳건한 의지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라는 다수결의 의견에 따라 우리는 보드카 샷을 마실 수 있는 작은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두 시간 정도를 헤매고 나서야 드디어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벽에 걸린 메뉴판에는 형형색색의 보드카 샷의 사진이 있다.

KakaoTalk_20221027_182334305_01.jpg

핑크색, 파란색, 초록색, 무지개색, 총천연색의 보드카들이 줄을 서있었다. 춤을 추지 못해 한껏 침울해진 카리나를 달래기 위해 딸기 우유맛 보드카 샷을 하나 사주고 나는 파란색에 생크림 모자를 올린 스머프라는 이름의 샷을 마셨다. 생크림 양이 너무 많아 속이 금세 느글해졌다.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우리 넷은 소강상태였다. 서로의 의견이 부딪혀 갈팡질팡 헤매면서 감정이 상했는지 마치 대판 싸우고 난 친구 사이처럼 서먹했다. 그때 나타난 구원자가 마요였다. 우리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영국인 마요와 그 친구들은 이색적인 조합인 우리에게 호기심을 가져 합석을 하게 되었고 보드카샷을 몇 잔 마신 뒤 마요는 우리에게 클럽을 안내해주겠다고 했다. 그 때 이미 시간은 2시를 훌쩍 넘어 있었다.

“난, 안되겠어. 조금이라도 자고 공항에 가야겠어.”

누워서 자지 못한 지 30시간 가까이 되어가고 있었다. 춤 한번 추려다 골로 가겠다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그런 나를 다들 만류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춤을 추려고 기다린 거 아냐? 같이 가자.”
“그래, 어차피 지금 자면 못 일어나.”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어서 다시 넘어간 귀 얇은 내게 또 한번 난관이 봉착한다.

“걸어가면 30분 정도라 공유 킥보드를 타고 가야 해.”

KakaoTalk_20221027_182334305_02.jpg

마요의 말에 다들 공유 킥보드를 결제하는데 나는 핸드폰도 꺼졌는데다가 킥보드를 타는 방법도 몰랐다. 어쩔 수 없이 집에 가겠다고 재차 말하니 굳이 굳이 마요가 자기의 뒤에 나를 태웠다. 우둘두둘한 길을 거침없이 운전하며 맹목적으로 움직이는 마요의 킥보드 뒤에서 나는 쉴새없이 새된 비명을 질러댔다. 새벽 세시, 런던 시내는 나의 비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클럽 원정대의 모든 멤버는 무사히 클럽에 입성했다. 클럽은 멕시코 컨셉의 바였고 적당한 음악에 적당한 사람들에 적당한 춤에 적당한 분위기였다. 별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그제야 활짝 웃는 카리나의 얼굴에 덩달아 같이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카리나를 위한, 카리나에 의한 클럽이었다. 예견되지 않았던 클럽행으로 결국 나는 한숨도 자지 못하고 바르샤바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았지만, 그 소란스럽고 엉망진창이던 그 밤이 싫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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