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100] 광합성 인간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2 years ago (edited)



내가 다니는 필라테스 스튜디오에는 천장과 3면의 벽 전체가 유리창과 유리문으로 이루어진 넓은 레슨실이 있다. 전면 거울이 붙은 나머지 벽 덕분에 실제보다 훨씬 더 넓게 느껴지는 이 유리 온실이 내가 이 스튜디오를 선택한 단 하나의 이유다. 사실 당시의 나는 모든 것이 귀찮았고 많은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몇 군데를 돌아보며 스튜디오 컨디션과 강사진 수준을 체크하고 가능하다면 시범 수업까지 들어본 후에 내게 맞는 곳을 골라야 한다는 선배들의 충고를 새겨들을 여력이 없었다. 친절한 상담 직원은 귀가 녹아내릴 것 같은 달콤한 목소리로 지금 계약서에 사인하면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그녀에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그중 내게 와닿는 말은 하나도 없었는데 다행히도 그 유리 온실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다른 곳을 방문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 안에서 팔다리를 이리저리 뻗으며 움직이면 온실 속 벵골고무나무처럼 위로 위로 자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게 2월의 시작이었는데, 봄이 오고 청명한 날들이 이어지면서 유리 온실 구석구석에는 따뜻한 빛이 빈틈없이 들어찬다. 어려운 동작 없이 스트레칭만 해도 얼굴이 10분 만에 벌게진다. 힘들어서 그런 건지 햇볕에 그을리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다. 누워서 하는 동작들이 많다 보니 매번 중천에 뜬 태양을 맨눈으로 마주해야 하는데, 구름 없이 맑은 날에는 직사광선에 눈이 멀 지경이다. 가끔 너무 눈이 부셔서 천장에 차양이라도 쳐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어림없는 소리. 유리 온실의 존재 가치에 실례가 되는 생각이다.

어제 오전에는 다행히 구름이 살짝 끼었다. 브릿지 자세를 하기 위해 바닥에 누웠다. 숨을 쉬며 옅은 구름 뒤로 숨은 해를 관찰했다. "업!" 강사님이 외쳤다. 구름이 지나가는 속도에 맞추어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윗등부터 하나씩 다운." 눈을 감고 하나씩 바닥에 닿는 척추뼈를 헤아렸다. "다시 업!" 해는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눈을 찡그렸다가 살며시 뜨면서 숨을 내쉬었다. 해가 숨바꼭질을 반복했다. "끝까지 힘 풀지 말고 다운." 구름으로부터 완전히 멀어진 태양이 햇살을 쏟아냈다. 바닥에 닿은 티셔츠에 땀이 배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 업!" 목소리가 전보다 멀리서 들려왔다. 음악 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눈을 감아도 눈앞이 훤하게 밝았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배꼽에서 빤딱빤딱하고 도톰한 초록 잎사귀 하나가 뽁 하고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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