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100] 너의 해방일지, 참 지루하다
미안하다. 1도 공감하지 못하겠다. 작가의 전작들을 워낙 열광하고 보았던 터라 4년 만의 신작을 얼마나 목빼고 기다렸는지 모른다. 4년 전 그 아저씨는 이 공간에 나를 주저앉히기까지 했으니. 그런데 이번 드라마는 쩝..
아, 다음 회는 뭔가 있을 거야. 그리고 그다음 회, 아직 시작이잖아. 그리고 중반, 아마도 결말에는 반전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끝. 헐~
호평이 쏟아진다. 호평과 혹평이 갈린다는 말도 있던데 마법사 말고 춘자 말고 이 드라마에 혹평한 이를 도통 찾아볼 수가 없다. 우리는 이 드라마에 관해 이야기했다. 말이 돼?
말이 안 되는 삶을 살고 있나 보다. 사람들이 말이다. 호평하는 사람들. 기껏 쥐어짜 내봐야 '그래도 살아' 이상의 메시지를 찾지 못하겠는데. 염미정의 회사생활과 구씨의 자구책이 그저 그래 보이는 마법사와 달리 사람들은 '그래, 나만 그런 게 아니야,' 하나 보다. 아니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겠다. 왜 호평하는지, 왜 공감하는지, 왜 눈물 쏟는지.
어쩌면 우린 너무 멀어진 듯하다. 호평의 세계와 혹평의 세계는 삶을 대하는 자세와 삶을 해석하고 있는 준거가 태양계와 안드로메이다 만큼 이격이 생겨난 듯하다. 아! 이럴 수가, 그런데 우리는 하나라고? 우리는 공동체라고? 우리는 인류라고? 그건 아니지. 그건 달나라 얘기라니까. 그건 저기 지하세계 어딘가의 이야기가 아닌 거야? 내가 이상한 거야? 내가 별세계에 살고 있는 거야? 그런 거야?
결국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어. 너무들 호평하니 말이야. 그러면 어쩌겠어. 아 난 이방인이구나. 나야말로 뒤집힌 세계에 살고 있는 Stranger구나. 주인공들에게, 호평하는 이들에게. 그러면 물러나야지. 환타지를 살고 있는 나는 그대들에게 무엇으로 느껴질까? 도대체 '나의 아저씨'의 지안이 얻은 평안과 성장, 구원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난 이 드라마에서 그런 단서와 희망을 단 하나도 찾을 수가 없다. 그러니 난 별에서 온 그대. 그대들은 지구에 살고 있는 정상인.
그러나 그렇다면 너무 불행하다. 그렇게 산다고? 아직도 저렇게 산다고? 그건 마법사가 깨고 나온 지하세계. 침 탁 뱉고 돌아 나온 뒤집힌 세계. 희망도 소망도 없이 소확행을 구원이라고, 적당히 아닌 절실히 붙들고 있는 그대들과 나는 무중력 속 우주공간에 둥둥 떠다니다 우연히 만난 무지와의 조우일 뿐인 것.
그래서 드라마의 끝에 이 작가는 천재구나, 할 수밖에 없었다. 전편들의 세계와 이 드라마의 간격이 이렇게나 큰데 여전히 호평을 이어가는, 이 우주와 저 우주를 마음껏 넘나드는 천재적인. 그래서 추앙의 반열에 오른 듯. 그러나 나는, 마법사는, 이런 세계를 추앙할 순 없다.
"(서울이라는) 노른자' 안에 못 들고 외곽서 밀려나는 우리네 인생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했다."
"인생은 실은 별거 없다는 걸 깨닫게 해 줘서 고마운 드라마."
"동화는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로 끝나지만, 실제 인생은 다르지 않나. 아름다운 종점이란 없다. '해방'의 순간에 다다른다 해도 또 다른 해방을 꿈꾸기 마련인 게 인간이니까. 드라마 속 염미정이 '몇 초씩의 설레는 순간이 모여 5분만 되어도 하루를 버틸 수 있다.'고 말하는데, 그 메시지를 보면서 나 또한 일상이 주는 순간순간의 행복을 느끼며 살기로 했다."
"비싼 차를 향한 갈망, 승진 욕구 같은 세속적 욕망을 넘어 자기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는지를 보여 줬다. 현실의 벽에 번번이 부딪혔지만, 좌절하고 남 탓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해탈의 경지까지 오르는 염창희를 보면서 많이 배웠다. 진정으로 해방된 캐릭터가 아닌가 했다."
해탈이라.. 아 그런거 였구나. 흰자가 노른자 되는 걸 포기하는 걸 해탈이라고 부르는구나. 열망하던 외제차 포기하고 장례지도사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걸 해탈이라고 해방이라고 부르는구나. 해탈 참 쉽다. 그 욕망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세속적 욕망, 속물적 욕망 그건 다 어디로 간 걸까? 그건 그냥 Delete 키를 누르면 저절로 삭제되는 그리 쉬운 건가? 그리 쉬워서 그간 지옥철 타고도 버텼나? 상호적 사랑과 존중이 아닌, 사랑을 가장한 추앙으로 변환된 건 아니고?
뭔가 잔뜩 잘못되었다. 그리고 그런 게 바꿀 수 없는 현실이라면 나는 뒷짐을 지고 물러나겠다. 그리고 그대들의 해방일지를 조용히 덮겠다.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처럼 '참 볼 거 없다' 싶은 그대들의 일지는 하품이 나올 게 뻔하다. 애들아 그러자고 80, 90 사는 거 너무 볼품 없지 않니? 그렇게 쉽게 해탈이 되는 거면 저 수행자들은 다 뭔 짓거리라니.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아니? 그게 그냥 일지 몇 줄 쓰면 컴퓨터 코드처럼 바로 실행되고 그러는 줄 아니?
개폼이라고, 없는 이들의 자기 합리화라고 비아냥거려 주고 싶다만, 뒤집힌 세계의 문법이라면 존중해야지. 그리고 가만히 덮어야지. 그러나 노른자를 꿈꾸었던 흰자가 아무리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들 그 삶이 쉽게 아름다워질 리 없고, 몇 초씩의 설레임을 모아 5분의 행복을 만든들 비겁한 버티기로는 해탈은 불가능하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소확행 뒤에 애써 꽁쳐 놓은 너의 욕망은 불현듯 튀어나와 해탈한 줄 알았던 속물근성을 열배 백배로 펼쳐놓을 테니, 뒤집힌 세계의 괴물이 되지 않고서야 그 들개들의 폭주를 막을 방도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대들의 말처럼 실제 인생은 다르다. '해방'의 순간을 지나면 또 다른 도전이, 또 다른 모험이 펼쳐지고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의 뒤집힌 욕망과 마주하며 성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의 동화는 '그리고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지 모르지만, '엄마 또 해줘. 또 읽어 줘.'하며 보채는 아이의 세계에는 수많은 동화 속 모험담들이 계속해서 지도처럼 새겨지는 거야. 귀신 이야기, 공포 괴담을 이불 뒤집어쓰고 무셔무셔하면서도 피하지 않고 마주하고, 찾아서라도 읽고 들어 자신의 세계에 통합시켜 가는 거야. 환상과 공포를 모두 마주하고 성장해 가는 거지. 자신의 이야기를 동화로 만들어가는 거지. 후손들이 두고두고 읽을 모험담으로.
그런데 해탈한 너의 해방일지,
참 지루하다.
[위즈덤 레이스 + Movie100] 042. 나의 해방일지
저는 아직 마지막화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멀린님 글에 공감하면서도 저는 전작(나의 아저씨)를 안 봐서인지 이건 이대로 괜찮다는 느낌입니다.
원래 삶이란 그런 거야라는 걸 그냥 소소하게 보여준 드라마도 가끔은 하나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서요. 맨날 재벌 나오는 막장 드라마에 질린 대중들이 위안받고 힐링할 수 있었다면 그것 자체로도 큰 의미가 아닐지요. ㅎㅎ
그렇다고 포기와 해탈을 멋지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쉼'은 필요할 테니까요.
드라마는 드라마이고 리뷰는 리뷰죠 ㅎ 암튼 작가의 스펙트럼이 놀랍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