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100] 피구왕 서영

book 002

피구왕 서영


황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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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아는 이서영은 자연스레 말수는 적지만 어둡지는 않은, 어쩐지 조숙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크게 벽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중략) 서영은 자신만 아는 이서영을 데리고 노는 시간이 가장 편안하다.
-19p


통통 튀는 제목의 소설, ‘피구왕 서영.’ 뇌리에 박히지만 선뜻 읽기에는 망설여졌다. 혹시 유행같은 소설일까봐. 기우였다. 간결한 문장과 짧고 빠른 장의 흐름. 그러나 어쩐지 섬세하다 못해 동심이 흐르는 분위기, 지난 시절의 현실을 소환하는 메시지. 다 읽고 나면 이 소설의 제목은 피구왕 서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납득하고 만다.

한 장을 읽는 순간 서영에게 동화되었다. 그는 눈치껏 적응해 사회와 타협할 줄 아나 어린 왕자 같은 순수함을 남몰래 간직하고 있다. 혼자 있는 나와 누군가의 앞에서 사회적 존재로서 내가 다르다는 걸 일찍이 깨우치고 철저히 그 세계를 분리하는 방식으로 적당히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던 서영.

전학을 가고, 반을 지배하고 있는 포식자 ‘현지’와 의도치 않게 얽히면서 피곤하고 갑갑한 학교 생활이 시작된다. 현지에게 쓸모를 증명한 덕에 ‘피구왕’이라는 호칭이 서영에게 붙는다. 피구는 경쟁이고 임무이며 부담이다. 소설을 좋아하던 서영을 실력을 키우기 위해 억지로 피구 연습을 하게 된다.

서영의 짝꿍이자 이 반의 먹잇감 왕따 ‘윤정’과 학교 밖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이 둘은 함께 피구연습을 하게 되고, 학교 안에서는 티낼 수 없는 은밀한 우정을 쌓아간다. 살얼음을 거닐듯 숨 막히는 교실 생활에서 벗어나 두 사람이 비밀정원에서 동화처럼 차곡차곡 우정이 깊어지는 장면을 보고 너무 아름답고 고마워서 눈물이 핑 돌았다. 이게 바로 사랑이지 싶어서.사려 깊고 솔직하고 편안한 윤정과 함께 하며 서영은 이제 자신이 피구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된다. 윤정은 서영에게 피구를 재미이자 놀이이고 취미이며 다른 무엇도 아닌 피구라는 사실을 돌려준다.

마치 사회 속 자신의 모습을 들키지 않을까 숨겨오던 서영에게 네 모습 그대로 존재해도 괜찮다고 손잡아주듯이 말이다. 사회의 압력과 동조를 강요하는 규칙 속 개인은 힘 없이 쪼그라들고 존엄성을 잃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의 모습을 지킬 줄 사람과의 위로와 애정, 연대를 통해 작은 용기를 내어 조금씩 자신 답게 살 수 있다.

‘어린왕자’, ‘족구왕’ 그리고 ‘우리들’이 떠오르며 미소를 짓게 된다. 피구와 윤정과 함께이기에 서영은 괜찮을 것이다.


서영은 윤정을 보며 자신의 방을 바다라고 상상할 때마다 천장에 둥둥 떠다니던 돌고래를 떠올렸다. 바다가 아무리 깊고 넓어도 즐겁게 수영하는 돌고래의 타고난 여유가 느껴졌다.
-66~67p


윤정과 얘기를 나누며 서영은 교실 내 피라미드가 어떻게 생겼든 간에, 유현지라는 맹수가 자기 옆에 딱 붙어서 감시를 하든 말든 간에 윤정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즐겁다는 사실이 너무나 분명하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피구 대신 소설책을 읽고 싶었다. 다른 건 생각할 필요도 없었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92p


“애들이 뭐라고 하는 것 때문에 좋아하던 걸 싫어하게 되면 너무 슬프잖아. 이렇게 거의 매일 하고 있을 정도로 좋아하는데.”
-107p


2021년 5월 23일, by 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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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구왕 통키보다 잼있을 것 같네요^^

추억의 피구왕 통키, 하하하 네 제겐 그만큼 재밌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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