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100] 소울 - 사랑의 조건이자 대상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3 years ago (edited)

006

소울


soul,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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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아웃과 코코를 좋아하던 나로서는 너무나도 개봉하길 기다렸다가 개봉하자마자 극장에서 보았던 소울, 당연히 음악과 영상은 훌륭했고 재미도 있었지만, 무언가 조금 와닿지 않았다. 무언가 빠진 것만 같고. 극장에서 볼만하고 재밌는데 나는 왠지 인사이드 아웃보다는 별로더라. 그런데 오히려 자꾸 나의 불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돼. 리뷰로도 남기지 않았다.

만원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대가 낮은지 달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달이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건 아냐. 어제는 달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는데 오늘은 아파트 뒤로 흐릿한 달빛이 비추었다.

이상형에 대해 기억하자면, 학창시절 나의 이상형은 '마음이 바다같이 넓은 사람'이었다. 다루기 힘든 나를 견딜만한, 포옹력이 엄청난 상대를 만나야 한다고 믿었다. 나는 아무나 감당할 수 없이 까다롭고 난해하고 비정상적인 사람으로만 느껴졌으니까.

연애를 하면서 구체적인 조건이 하나하나 붙기 시작했다. 내가 무얼 견딜 수 있는지 없는지, 예를 들어 나는 사사건건 내 일에 간섭하는 사람을 못 견뎌했고, 게으른 주제에 성장하지 않고 안주하는 사람을 한심하게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하나둘 조건 조건 조건이 붙다가-또 신기할 정도로 그 조건에 상응하는 상대를 만나고 헤어지고 보니- 정말 내 자신을 알게 되고 사랑이 뭔지 알아갈수록 또렷하고 단순해지는 이상형의 조건이 있었다.

보통 때는 딱히 이상형은 없어요. 라고 말하겠지만, 내 이상형은 너무나 명료하다.
사랑하게 되는 '영혼', 사랑은 영혼으로 하는 거야.

영혼을 사랑하는 경험을 한다면 혹여 싸우거나 상대의 단점을 발견하거나 사이가 삐걱거리더라도 불안하지도 불만을 지니지도 못하고 미워할 수도 없다. 돌아서는 순간 다시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상대에게 어떤 기대도 바라는 마음 없이 사랑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만하고 행복하다. 아니, 사실 누군가의 영혼을 알게 되고 보게 되면 누구든 사랑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사랑과 관계는 조금 별개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알고보면 나쁜 사람없다. 라는 옛말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까. 단지 영혼이 가리워져 있는 것이지. 마치 달빛처럼.

그래서 얼마 전까지는 진짜를 볼 수 있는 사람, 본질을 꺼내 볼 수 있는 현명한 사람이 이상형이기도 했다. 어쩌면 산다는 건 자신이 본래 지니고 태어난 빛의 정수같은 영혼을 찾아내 반질 반질 닦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다. 처음 밝디 밝은 영혼은 사회화가 되고 구르고 상처받으면서 온갖 너저분하고 흐릿한 먼지로 뒤덮여 종국에는 새까매지고 만다. 원래부터 빛 한줌 없는 암흑만이 본질인 것처럼.

지구 내부구조처럼 영혼은 내핵에 갇히게 되는데 보통 사람들이란 지각까지 너무나도 두텁기 마련이다. 점점 외핵이 감싸고 맨틀로 뒤덮이면 결국 사람 눈에 보이는 건 지각밖에 없고 그게 전부처럼 느껴진다. 행동 하나에 서운해지고 그게 내게 이익이 되는지 아닌지를 따지게 된다. 진정 사랑한다는 건 그럼에도 그 안의 정수를 발견하는 거다. 성격도 가치관도 태도도 감정도 외모도 부도 나이도 다른 건 다 변해도 결코 영혼은 빛바라거나 변하지 않고 영원하다. 그걸 서로 발견해주지 못하면 진정한 사랑은 시작될 수 없다.

만약 모두가 자신의 영혼을 잃지 않고 아주 얇디 얇은 맨틀을 지녀 영혼의 본래 모습과 나타나는 에너지에 별 차이가 없다면 세상은 파라다이스였을 것이다. 적어도 정말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에게는 영혼 모습 그대로 드러날 수 있다면 세상을 사는 건 꽤 아름다운 일이다.

세상에 두 가지 종류의 끌림이 있다고 생각한다. 외면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아름답고 매력적인 사람, 이건 분명히 시대의 기준의 따라 서열이 정해지거나 비교를 하고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강한 건 형용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흔히 자신감이라고 불리는 그 사람이 지닌 기운이다. 난 그 기운이 영혼과 실제 삶의 얕은 괴리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영혼을 둘러싼 표피의 겉껍질이 얇고 투명할 수록 반짝반짝한 그 사람의 영혼이 잘 보이는 거라고 믿는다.

내가 사랑하는 건 고유하고 독특하고 변하지 않는 누군가의 영혼이고 내가 사랑할 조건은 그 영혼 뿐이다.

그때는 미쳐 알아채지 못했던 애니메이션 소울의 메세지는 생각보다 더 깊고 강력하고 감동적이다. 야심을 버리고 꿈을 이루지 말고 소확행이나 하고 일상에 만족하라는 정신승리식 체념과 위로의 메시지가 아니었다. 영혼의 핵심은 살아가는 것 자체, 영혼이 이미 드러난 사람은 하루하루의 변화를 자각하게 되고 애쓸 것도 욕심낼 것도 없다. 하루 하루가 경험과 성장의 자양분이고 감동이고 행복이다. 영혼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무기력한 하루를 보낼 수도 없고, 헛되이 살 수도,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평생을 허비할 리도 없다. 살아가겠다는 자발적인 마음이 드는 건 자신의 영혼을 발견한 이후에나 가능하다. 그게 사랑이고 행복이고 자유이고 성장이고 생명이다. 세상 모든 단어는 단 하나이다. 그건 바로 영혼


p.s. 영혼하다라는 오타를 냈는데, 영혼하다가 서로의 영혼을 탐색해내다라는 동사로 쓰이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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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ears ago 

영혼히!

영혼히 영혼해! ㅋㅋㅋㅋ
이제 자야죠 택슨님 좋은밤 되세요

그런 면에서 알고보면 나쁜 사람없다. 라는 옛말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영혼이 존재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단지 영혼이 가리워져 있는 것이지. 마치 달빛처럼.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까.. 가 맞는거죠?^^ 그리고 제목 소울 자리에 더파더가 들어있네요.ㅎㅎ 글이 너무 좋아서 책으로 갖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오 키위님 감사합니다! 원래도 오타가 잦은데 급하게 서두르니 ㅋㅋㅋㅋㅋㅋ 뜻이 반대가 되는 오타를.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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