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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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이에 마사시 -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나와 아내는 그때 삼십대 초반으로, 인생이 어디로 갈지는 아직 밝은 안갯속, 미래에 대한 불안도 없고 이렇다 할 문제도 없었다. 건강했고 바깥에서 어쩌다 은근한 유혹을 받아도 부부 생활에 자극을 더해주는 양념 정도로 여기고 즐기는 여유마저 있었다.

이삿짐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새 양모 냄새가 나는 카펫 위에 누워 싸늘한 공기를 뺨에 느끼며 오랜만에 긴 키스를 했다. 창 아래로 이웃 고급 주택의 손질이 잘 된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포켓치프 같은 하얀 목련을, 어깨를 맞대고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새 가구도 속속 들어왔다.

아르플렉스에서 소파를, 야마기와에서 르클린트의 조명 기구를 구입했고, 노르딕폼에서 덴마크제 테이블과 의자, 캐비닛을 골랐다. 중고라도 1960년대 후반의 덴마크 빈티지 가구이다 보니 아르플렉스만큼 비쌌다.

작년에 집을 꾸며볼까 싶어 인테리어 소품을 마구 찾아본 일이 있다. 벽지와 가구들을 생각하니 그 어떤 것도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마음에 드는 가구를 사려면 일단 비싸야 할 것 같았고, 비싼 가구를 들이려면 집이 지금보다 훨씬 더 깔끔하고 좋은 곳이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그 아쉬움 때문인지 새로 알게 된 여러 소품의 명칭과 소재를 곱씹으며 주인공이 자신의 거실을 꾸미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소설을 짧게 쓴 적이 있다.

이 소설에서도 주인공에게 집을 꾸미는 행위가 중요한데, 그래서인지 가구를 찾아보던 그 날의 기억이 떠올라 더욱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아르플렉스, 르클린트가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하나하나 자신이 원하는 가구로 집을 채워가는 모습을 보며 대리 만족의 행복을 느꼈다. 오래전부터 마쓰이에 마사시의 글을 읽어보고 싶었다. 예상과는 달랐지만 소소한 일상의 차분함이 있었다. 올여름에는 그의 대표작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꼭 읽을 것이다. 어영부영 2년이나 미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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