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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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 -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레이먼드 카버의 글이 읽고 싶어 무턱대고 빌려왔는데, 빌려오고 보니 사후에 발견된 미발표작, 서평, 에세이, 소설의 편린을 엮어 발간한 책이었다. 초반에 수록된 미발표 단편 소설들이 너무 좋았던 덕에 뒤로 갈수록 몰입이 느슨해지긴 했지만, 다양한 장르의 글 덕분에 레이먼드 카버에 대해 폭넓게 알 수 있어 기뻤다.

그의 글은 읽는 이의 마음으로 미끄러지는 글이라고, 읽는 내내 생각했다. 몇 개의 글은 차마 키보드로 필사할 수 없어 오랜만에 노트를 꺼내 글을 옮겨 적었다. 그중에서도 어떤 글은 너무 좋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적을 수밖에 없었다.


불쏘시개

마이어스는 계속 자기 방에 머무르면서 아내에게 편지를 한 통 썼다. 긴 편지였고, 마이어스 생각에 중요한 편지였다. 아마 마이어스가 평생 썼던 그 어떤 편지보다 중요할 듯했다. 그 편지에서 마이어스는 그동안 있었던 모든 일에 대해 미안하다 말하려 했고, 언젠가는 자신을 용서해주면 좋겠다고 썼다. 무릎을 꿇고라도 용서를 구하겠어. 그게 도움이 된다면.

<내가 전화를 거는 곳에> 대해

나는 십오 개월 동안 <대성당>을 썼다. 이번에는 그중 여덟 편이 다시 포함되었다. 하지만 그 단편들을 쓰기 전 이 년 동안 나는 앞으로 무얼 쓰든 그걸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지, 그리고 어떻게 쓰고 싶은 건지를 알아내기 위해 이전에 썼던 글들을 살펴보았다. 그전에 낸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여러 면에서 분수령이 되어준 책이었지만, 그런 책을 또 쓰거나 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기다렸다. 시러큐스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시와 서평 몇 편, 에세이를 한두 편 썼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뭔가가 일어났다. 잠을 푹 잔 뒤, 나는 책상으로 가서 <대성당>을 썼다. 이게 그동안 내가 써온 이야기와는 다른 종류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어찌어찌 나는 내가 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쪽으로 갔다. 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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