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아버지의 국민학교 생활기록부

고향에 갔더니 아버지가 종이를 하나 내미셨다. 갑자기 본인의 국민학교 시절이 궁금하여 고향의 초등학교에 들러 본인의 생활기록부를 볼 수 있냐고 물어서 발급받아 오셨다는거다.

아버지의 고향은 인구급감으로 소멸위기에 처한 곳이다. 지금도 고향마을에는 하루에 버스가 6회 지나간다. 왕편 3회, 복편 3회로 시골 중에서도 시골이기에 아버지의 국민학교는 이미 문을 닫았고 가장 가까운 초등학교 가니 발급을 해주더란다.

많이 떠드는 애들에게는 '활발하다', 입 한 번 떼지 않고 죽은듯이 가만히 지내는 애들에게는 '성격이 신중하다' 따위로 최대한 예쁘게 포장해서 기록해주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당시의 담임들이 너무나도 솔직하게 휘갈겨 쓴 내용들이 우스웠다. '성격이 제멋대로이며 허언이 많음'이라는 3학년 담임의 기록, 요즘 같으면 누가 감히 이런 내용을 쓰겠느냐면서.

출결상황에는 1~6학년 내내 매년 20일 이상은 농사일 때문에 결석했다고 기록되어 있었으나 그마저도 선생님들이 절반으로 줄여서 써 준 것이라는 아버지의 말씀, 그리고 생기부 가장 구석자리의 졸업 후 진로예정 항목에는 중학교 진학이 아닌 '가사조력'이라고 쓰여있는 걸 보면서 웃음이 사그라들었다.

중학교 다니던 친구들을 부러워했지만 '집에서 농사나 지으라'는 말에 자력으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수십년간 집안의 기둥 역할을 하셨던 아버지의 삶이 다시 읽혔다. 그 기둥 역할은 결혼 전부터 시작되어 본인의 빚으로 여동생의 혼수를 장만해주고 정작 자신은 결혼직후에 연료비가 없어 추위에 떨었다는 것으로 시작되어 은퇴 후에도 끝나지 않아서, 퇴직금으로 시골집을 다시 지으셨다는 것도 떠올랐다.

그러나 여전히 아버지의 표정은 밝아서, 본인이 지나온 삶에 매우 만족하시는 모습이었다. 아이고 아부지, 수고하셨습니다. 인자 좀 놀러도 댕기고 맛있는 것도 사묵고 돈 많이 쓰이소. 옆에서 어머니가 한마디 거드신다. 야야, 저 양반은 입에 뭐가 들어가든 배만 부르면 만족하는 사람이다. 본인한테 돈 쓰는 거 얼마나 아까워하는 줄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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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의 일생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의 삶이 존경스러워지네요.

숙연해 집니다.

그 시대를 살아오신 부모님들은 대부분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이 아니었나 생각이 드네요. 제가 그 책임감의 절반이나 닮을수 있으려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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