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짧은 소설 - 케이의 출근길

in dclick •  11 month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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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국도를 타야겠다. 운전대 위에 손바닥을 올려 시계방향과 반시계방향으로 번갈아서 돌렸다. 원심력이 몸의 안정감을 튕겨내지 않는 범위에서 가속과 감속 페달을 밟았다. 아무렇게나 풀어 놓은 실타래처럼 2차선 도로는 번민으로 엉켜있었다. 엉킨 실타래는 케이의 머리속에도 있다. 풀어낼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하나씩 쌓아 올린 블럭이 완성 직전에 무너졌다. 케이는 널브러진 블록들 앞에서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잊은 어린아이였다.

케이는 익숙한 솜씨로 구불구불한 길을 기어올라 야산을 넘었다. 과속 방지턱 몇 개를 연달아지나 앞서가는 덤프트럭의 꽁지에 따라 붙었다. 우뚝 솟은 덤프트럭은 천천히 움직이며 육중함의 의미를 몸소 보여주었다. 오늘은 추월하지 않기로 했다.
두껍고 투명한 유리 벽에 부딪혀 전진하지 못하는 꿈은 새벽까지 잠 못 이룰 때면 어김없이 찾아왔다. 잠을 청할수록 검은 눈두덩에 생경하고 복잡한 미로가 그려졌다. 살아 움직이는 시신경이 미로를 좇다가 날이 밝을 즈음에야 스르륵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면 두꺼운 유리 벽에 가로막힌 채 깨어나곤 했다.

시간에 그을릴 대로 그을린 중 늙은이 케이는 언제나 기다림이 문제 해결의 열쇠였음을 잘 알고 있다. 삶은 책장을 넘기는 것과 같아서 새로운 챕터가 자신을 반기고 과거는 밑줄 친 부분만 남으리란 걸 알고 있었다. 오늘과 내일은 같아 보여도 일주일 후나 한 달 후의 자신은 전혀 다를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늘의 번민이 가벼워지지는 않는다. 순식간에 불어닥치는 태양풍이 몇 번이고 케이의 마음을 훑고 지나가 그의 몸에 있던 회로란 회로는 모두 먹통이 되어 버렸다. 덤프트럭이 우회전으로 시야를 벗어나자 케이는 깊게 심호흡했다.

회사라고 해서 해야 할 일이 쌓여 있는 건 아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의무적인 일을 손 가는 대로 처리하고 나면 케이는 을씨년스러운 가을 풍경처럼 잠잠해진다. 근래 출근하는 일은 까끌한 음식을 삼키는 기분과 같았다. 눈 시리게 알싸한 바람을 맞는 출근길 30분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 생각했다. 케이는 작은 읍내를 지나 논 사잇길을 달렸다. 편대 비행을 하던 기러기 수십 마리가 일제히 논바닥에 앉았다. 반대편에서는 다른 기러기 떼가 창공을 선회하고 있었다. 주워 먹을 이삭이 남아 있는 것인지 논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케이는 문득 날고 싶었다. 속박이 그를 옥죄어서가 아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본능처럼 내비치는 타인에 대한 경계와 대승적 논리로 치장한 보신주의가 그에게는 못마땅한 것이었다. 이런저런 이유가 한 도가니에 들어가 점잖지 못한 자기 연민으로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끈적하고 미끄런 생명체를 조몰락거리는 기분이었다. 훌쩍 날아올라 모든 것을 넌지시 내려다보는 새가 되고 싶었다.

태양은 벌써 중천을 향하고 있었다. 케이는 태양을 마주 보며 달렸다. 유리창을 통과해서 손등에 앉은 햇볕이 따사롭지는 않았다. 가로수마다 달린 마른 낙엽이 늦가을의 정취를 품고 있었다. 곧 눈이 올 테고 그다음엔 꽃이 피겠지. 머지않아 끝날 가을처럼 케이의 출근길도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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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피터팬처럼 날고싶다는 생가 가끔하네요.

아찔하지 않을 정도로만 날 수 있다면 가장 먼저 덩크슛에 도전하겠습니다..ㅎㅎ

사람도 날아다니면 얼마나 좋을까요!!ㅎㅎㅎ
보클하고 가요 좋은하루되세요 피쉬님~~~^^

보클 감사합니다. 조만간 개인용 비행체가 출시되지 않을까요..ㅎㅎ

보클왔어요~

보클 사랑 감사합니다.

정말 문제 해결은 조급함 보다 기다림이 답인 듯 합니다.
여유로운 한 주 되세요.

나이하고도 관계가 있나봐요. 나이들수록 자연스럽게 기다리는 게 어지간해서는 정답인 거 같거든요..

여러번 읽었는데도 모든 게 완벽히 이해되지는 않아요 -;;ㅎㅎ 다 이해할 순 없어도 그래도 좋아요. 케이의 얽힌 실타래가 뭔지 궁금해요. 분명 일은 아닐 것 같아요.
케이는 출근의 목적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출근길 자체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네요. 겨울이 와도 케이는 또 다른 출근길에 있겠죠?

좋은 문장이 너무 많지만 전 아래 문장이 가장 인상 깊어요. 어떤 과거에 밑줄을 칠 지는 저에게 달려 있겠죠.

삶은 책장을 넘기는 것과 같아서 새로운 챕터가 자신을 반기고 과거는 밑줄 친 부분만 남으리란 걸 알고 있었다

쿠바 여행에는 굵은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으셨죠..ㅎㅎ
구체적인 사실을 쓰지 않아서 글이 좀 두리뭉실 합니다. 그냥 이미지로만 이해해주심 좋겠습니다. 케이의 실타래가 술술 풀어졌으면 합니다..ㅎㅎ

  • 삶은 책장을 넘기는 것과 같아서 새로운 챕터가 자신을 반기고 과거는 밑줄 친 부분만 남으리란 걸 알고 있었다.
  • 눈 시리게 알싸한 바람을 맞는 출근길 30분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 생각했다.

차암 공감이 되는 문장이예요.
케이의 실타래처럼 얽힌 문제들이 쉬이 풀렸음 좋겠네요~^^

케이가 마음 편하게 회사에 다니면 좋겠네요.
제가 조금 어린 듯 하지만 대략 저와 비슷한 연식이시라 공감이 쉬운 듯 해요...ㅎㅎ

잘 봤습니다~
보클 응원드려요~

응원 감사합니다.

이번주도 즐건 시간되세요:]
오늘도 디클릭!

디클릭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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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의 머리속 실타래가 잘 풀리길 바라요.
출근길 생생한 묘사 잘 봤습니다.

저도 케이의 실타래가 잘 풀리길 누구보다 바라고 있습니다..ㅎㅎ
선선한 날씨에 감기 조심하십시오..

시간에 그을릴 대로 그을린 중 늙은이 케이는 = 겨울 처럼 느껴졌어요, 제가 제대로 이해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케이의 생각이 하나씩 해결되길 바래요,

케이의 복잡한 심경을 구체적 사실 없이 썼기 때문에 아마 조금 갑갑하셨을 거에요..
그저 복잡한 마음이 정리되길 기다려 봅니다.ㅎㅎ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혹은
단편 영화 한 컷 같은...

케이의 복잡한 심사를 표현해 보고 싶었는데 잘 되었나 모르겠네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필체가 대단하십니다. 혹시 소설가아니신가요?

과찬이십니다. 요식업계에서 조리종사자로 일하고 있어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