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화된 시험에 대한 생각

in #busy6 years ago

"선생님 저 몇 점이에요?"

1학기 1차 지필평가를 치른 후 시험 피드백의 마지막 시간이었다. 여지없이 1:1 피드백을 받기 위해 나온 몇 학생은 여전히 저 질문을 던진다. 씁쓸하면서도 결과가 궁금한 것이 당연한 것이리라 생각하고 넘기고 자신이 쓴 답에 대해 물어보고 어떤 부분이 잘 못 되었고 어떤 부분이 탁월했는지 시험에 대한 환류를 시작한다. 그런데 듣는 둥 마는 둥이다. 마지막으로 혹시 채점이나 피드백 부분에 질문이나 이의가 있으면 말하라 하지만 대부분 자신의 점수를 다시 확인하는 선에서 그친다. 분명 자신의 점수는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아는지, 지난 번에 비해 얼마나 성장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일 뿐이라 이야기하지만 돌아서서 들어가는 길에 그 아이의 점수를 묻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점수를 떠벌려 이야기한다. 성적표에서도 석차가 사라졌고 공개적으로 교사가 다른 사람의 점수를 공개하지도 않지만 아이들은 서로의 성적을 공유하며 비교를 하는 것이다. 물론 공개적으로 성적이 공개되고 석차가 성적표에 찍혀 나오던 나의 학창시절보다는 덜하지만 아직도 그렇다. 한 날, 한 시에 같은 공간에서 치르기 때문에 이 시험이 자신들을 줄 세우는데 공정하다 여기는 걸까? 과연 이러한 표준화된 시험(일제고사식의 수능, 중간, 기말고사 같은)은 공정한 것일까?


표준화 시험은 어떻게 교육불평등을 심화시키는가?라는 칼럼을 읽었다.(한번 읽어보심을 권하고 싶다!) 이 칼럼에서는 6가지의 이유를 들어 표준화된 시험이 교육불평등을 증가한다고 그 이유를 말하고 있다. 그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부모의 경제력이 개입될 가능성이 크다.
#2. 진도빼기 수업을 강제시킨다.
#3. 교사별 평가가 불가능하게 한다.
#4. 인지적 능력만을 평가한다.
#5. 문제풀이의 속도를 측정하는 시험이다.
#6. 문화적 편향이 존재한다.


요즘 시험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는 지점을 잘 꼬집고 있다. 그리고 이런 많은 문제점들을 해소 또는 감소시키기 위해 학교 선생님들이 머리를 맞대고 노력하고 있다. 일단 학교에 각 과목별 선생님이 1명인 관계로 시험은 최대한 그 선생님의 역량과 수업한 것에 바탕하여 출제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학생들과 함께 수업하고 활동한 내용만을 출제하며 그 외의 것에서는 출제하지 않는다. 교과서는 많은 유능한 사람들이 교육과정의 내용을 집대성해서 내놓은 책이다. 그럼에도 지식의 수록에 치중된 면이 있어 맥락이 결여되어 있고, 그것을 배우는 지역이나 학생의 삶과 연계되지 않은 보편적인(어쩌면 중앙화된) 이야기와 예를 바탕하고 있기에 그 내용에 몰입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 많은 성취기준 중 핵심성취기준을 중심으로 학생들의 수준(지적 수준만이 아닌 삶을 이해하는 수준도 포함)과 지역이야기 등을 고려해서 활동지를 만들어 수업하고 있다. 예전처럼 교과서라는 표준화된 교재를 바이블처럼 꼼꼼히 가르치고 이에 바탕해 시험을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과서는 하나의 보조재로 사용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학원에서는 싫어한다. 표준화된 문제가 출제되는 게 아니라 수업을 했던 내용들이 출제되기에 나를 이상한 선생님이라고 이야기한다는 말을 아이들에게 전해들은 적도 있다. 부모의 경제력이 학생들의 교육불평등에 개입하는 가장 큰 통로가 사교육이라고 하면 그런 개입이 줄어들 수 있으리라 본다. 이는 사교육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교육만으로 학교의 시험을 치를 수 있고 수업에 열심히 활동한 학생보다 더 높은 성적을 얻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에 근간한 것이다. 성적을 높이기 위해 학원을 가지만 정작 학교 수업에선 자버리고 마는 모순을 없애려는 것이다. 현재 모든 시험에서 서술, 논술형 문항을 출제하고 있다. 흔히 객관식이라 일컬어지던 선택형 문항은 없어졌다. 단순히 외운 것을 쓰는 것은 지양하고 본인의 생각이 담긴 답을 쓰도록 하려하고 있다. 26문항을 45분 만에 풀어내던 것을 10문항 안쪽으로 줄이고 시간은 60분으로 늘였다. 그럼에도 중간, 기말 고사 식의 단발성 시험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어 과정형 수행평가를 늘이려 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부터 수행평가가 전체 성적 비중의 60%를 넘기면 한 학기에 1번의 시험을 봐도 된다고 교육청에서 결정한 바가 있어 나의 경우 다음 학기나 내년부터는 기말고사만 치를까 고심하고 있다.


이런 고민과 노력들이 앞서 짚은 표준화 시험이 교육불평등을 야기 시키는 내용을 완벽히 해소시킬 수는 없다. 그리고 수능이라고 하는 거대한 벽 앞에 어쩌면 부질없는 것으로 치부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수능이라는 것도 변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없어지던지. 그 대안으로 생각되는 것이 바로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이다.(사실 한국의 대입논술전형이 이를 벤치마킹한 것이기도 하다.)


(바칼로레아에 대해서는 이곳저곳에서 얻은 피상적인 정보가 다여서 한번 자세히 알고 싶은 생각이 든다. 프랑스에 사시는 분들은 이를 잘 알고 계실라나?)
이 바칼로레아가 국제적 대학 입학 자격 시험으로 변형된 것이 IB(국제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ureate)이다. 우리나라 대학에서도 이 IB를 인정하는 대학이 늘어나는 추세이고 국내에 있는 국제학교나 외국인학교에서는 이미 IB를 위한 교육과정을 운영 중에 있다. 올해 제주교육청에서 IB를 공교육에 도입하겠다고 밝히고 추진 중에 있기도 하다. 이는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IB교육과정을 도입한 사례가 된다.(관련기사)


시험이라는 것은 경쟁을 담보로 해야하는 것일까? 그를 통한 줄세우기 혹은 특정이상의 선발을 목적으로 한다면 그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하기에 표준화되어야 하고 객관성, 공정함이 크게 요구되게 된다. 같은 시간과 공간에, 같은 문제를 풀고, 같은 기준으로 채점하고(그러기에 선택형(객관식) 문항을 사용하고)... 시험이라는 것이 한 개인의 성장을 알아보거나 그 개인이 모르는 것을 인지하고 시험 시간을 통해 배우는 목적으로 받아들여진다면 표준화된 시험이 아니어도 될 거라 생각된다. 나아가 선발이라는 용도에서도 표준화된 형태가 아닌 다면적이고 심층적인 방식이 차츰 더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 더 그러리라 생각된다. 표준화된 시험이라는 것에 이미 익숙해진 아이들을 보며 아직 많은 변화가 필요하고 많은 시간과 노력이 있어야 하리라 생각하며 여기까지 글이 써졌다.


거북토끼2.jpg

<캘리그래피를 그려주신 @dorothy.kim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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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관련내용 잘봤네요. 참 기쁘네요

읽어주셔서 저 역시 기쁩니다.

재미있는 생각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에도 사교육이 존재합니다. 보통은 엘리트 코스를 밟는 애들이 다니긴 하지만요. 바칼로레아가 가능한 것도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쭉 해 온 게 자기 생각을 쓰고 말하기거든요. (물론 암기할 건 합니다) 대학 진학 후에는 또 다른 전쟁의 시작이죠.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쭉 해 온 게 자기 생각을 쓰고 말하기거든요.

바로 이 부분이 안 되기에 되게 바꾸려는 것이지요. 사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저부터 제 생각을 쓰고 말하는 거에 익숙치 못 하니 말이죠.

자본주의, 개인주의가 있는 한 사교육이 존재하리라 생각합니다. 덴마크에도 사교육 시장이 성장하고 있단 이야기에 놀랐지요. 다만 그 방향이나 영향력이 문제인 거 같아요. 학교 수업을 듣지 않아도 성적을 얻게 하는 사교육이란 무언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니까요. 프랑스의 사교육은 아떠할지 궁금하네요.^^

글에 첨부된 지식채널e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바칼로레아가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그 철학 문제를 논해보는 것이 흔히 일어나는지가 궁금하네요. 무언가 과장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정말 그렇다면 너무 부럽달까 그렇네요.^^;;

동영상의 내용은 사실입니다. 안경 가게가 담배 가게보다 많은 나라입니다. 시립도서관은 미취학 아동부터 80 고령의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세대가 모이고, 카페나 공원 벤치에서 모르는 사람과도(심지어 나이차가 많이 나더라도) 대화를 트는 게 가능한 나라죠. 대학생들이 주도하는 날밤 시위는 광장에 모여 삼삼오오 그룹을 짓고 갑론을박하는 형태로 진행되구요. 어느 세대든 말 거침없이 정말 잘합니다. 우리보다 산업적 발전은 느리지만 훨씬 건강한 사회라고 봅니다.

프랑스 하면 여러 건축물과 박물관, 음식들을 생각했는데 그걸 떠나서 한 한달이라도 살면서 그 곳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어 보고 싶네요. 홍세화 씨의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라는 책을 읽으며 프랑스에서 사는 것에 동경을 가졌던 것이 기억나네요. ^^ 그 책에서 ''나는 당신에게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난 당신이 주장할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라는 볼테르 평전의 문장을 들어 프랑스의 똘레랑스를 이야기할 땐 정말 부럽고 가고 싶었는데 말이죠.

사실 프랑스는 음식 문화는 별로입니다ㅋㅋ (와인과 디저트류는 인정) 볼테르 평전에 쓰인, 그러나 볼테르가 말한 건 아니라고 하는, 그 문장은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정말 딱 그런 문화입니다. 저는 한 번도 방문하진 못했는데 철학 카페도 있다고 하죠. 근데 딱히 그런 곳이 아니더라도 모여서 토론하고 이야기할 기회는 많습니다. 아직까지도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나는, '구식'을 좋아하는 사회라서 소모임과 프로그램이 다양하거든요. 마음에 드실 겁니다 :)

문제는 불어라 하면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배운(지금은 기억 저편으롤 사라진...) 것이 다라는 거죠. 심도있는 대화는 언어가 뒷바탕 되야 하는데 이제부터라도 불어를 배워야 하는 걸까요? 하하...
근데 프랑스 하면 음식문화가 발전된 나라로 생각했는데 말이죠. 그것으로 영국인들을 야만인 취급했다고 알고 있죠.

영어를 쓰시는 게 더 낫지 싶습니다 :D 프랑스는 의외로 먹을 만한 데가 없다고 할까요. 미슐랑 별 3개의 최고급 식당이 아닌 이상 현지인들도 비스트로에서 제공하는 '오늘의 요리'를 제외하면 피자, 파스타 같은 이태리식이나 스테이크를 즐겨 먹고, 점심에는 샌드위치나 패스트푸드 햄버거로 때우는 일이 많습니다. 음식 기대하고 온 분들은 대부분 실망하죠ㅋㅋ

(그리고 예전에는 프랑스인들이 음식을 지저분하게 먹는 걸로 정평이 나 있었죠. 빵도 식탁 위에 그냥 올려놓고 뜯어 먹는 일이 허다해서 ㅋㅋ)

참 어려운 사안이네요.
어렵다기보다 쉽게 변하지 않을 문제 같습니다.
'표준화 되지 않은' 것들이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도,
그 성공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겠죠.
그 시간을 더디게 하는 '표준화 되지 않은' 것을 다시(?) '표준화'하려는 시행착오도 분명 나올 것으로 보이고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네요.

오랜 시간이 걸릴지언정 변해야 하는 게 맞기에 변해가야 겠지요. 인간의 배움 정도를 표준화할 수 있을꺼라는 것은 판타지에 가깝겠죠. 그리고 아짜면 세상을 움직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의 표준화된 시험(학교의 일제고사나 수능)을 본다면 미달자일지도 모를 일이죠.(위인 전기의 내용들이 사실이면 분명 그럴거에요.) 사실 지금의 학교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이 제가 학생일 때는 상상조차 못 했던 것들이니 그렇게 시나브로 변해갈 것입니다. 물론 그 변화를 위한 노력이나 협의, 협력이 있어야 하겠지요.

무한경쟁 사회에 요즘 아이들이 너무 물들어버리는건 아닌가 걱정됩니다. 본질은 잊혀지고 경쟁만 남아버리는 것 같아서요. 교육이 바뀌려면 사회가 먼저 바뀌어야 하는데, 쉽지 않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학교에서 수업공개를 했는데 국어교과 였고 문학비평에 관한 내용이었어요. 그 소재로 박용주 시인의 '목련이 진들'이라는 시를 사용했지요. 5.18과 시기가 맞고 이 시가 시인이 15세에 지은 것이라 의미가 있기에 정했습니다. 수업을 보러 오신 분 중에 이 시가 수업 중에 소재로 쓰임에 놀랐다고 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이미 사회도, 교육도 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을 바라보면 쉽지 않은 변화의 길에 답답하겠지만 뒤돌아보면 어느결에 이정도로 변해 있네 하고 느낄 때가 있지요. 쉽지 않지만 변해야하는 것이 맞다면 결국 변해갈 것입니다. 교육이란 것이 미래를 살아갈 사람을 기르는 것이라면 어쩌면 사회의 변화에 앞서면 어떨까 싶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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