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의 초대 - 75. 공깃밥 한 그릇의 미학(美學)

in #busy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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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空器)에 들어있는 밥을 가리켜서 공깃밥이라고 부른다. 공기그릇이 각양각색이고 크기도 다양하기 때문에 공기 하나에 담겨지는 밥의 량이 어느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식집의 밥공기를 기준으로 삼으면 한 공깃밥에는 대략 2천~2천 500개의 쌀알이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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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한국인에게 주식이다. 밥을 중심으로 해서 각종 반찬과 어울려서 하나의 식탁을 완성시키는 것이니, 밥만 먹는 수준이냐 혹은 밥 이외에 얼마나 더 많은 반찬을 먹을 수 있으냐의 차이에 따라서도 그 사람의 사회적 수준을 가늠할 수 도 있다.

밥은 쌀만으로도 짓지만 다르게는 콩, 팥 등의 곡류를 넣어서 잡곡밥을 짓기도 하고, 감자와 고구마 등을 넣어서 채소밥을, 굴이나 홍합등을 넣어서는 해물밥을 짓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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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엽에 서유구가 지은 조리,가공서인 '옹희잡지' 라는 책에서는 우리나라의 밥짓기에 대해서 설명 하기를, " 밥 짓는 것이란 별다른 것이 아니라 쌀을 정히 씻어 뜨물을 말끔히 따라버리고 솥에 넣고 새 물을 붓되, 물이 쌀 위로 한 손바닥 두께쯤 오르게 붓고 불을 때는데, 무르게 하려면 익을 때쯤 한번 불을 물렸다가 1, 2경(頃) 뒤에 다시 때며, 단단하게 하려면 불을 꺼내지 않고 시종 만화(慢火:뭉근한 불)로 땐다'고 하였다." 라는 설명을 하고 있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아궁이에 걸쳐진 쇠솥에 밥을 지어 본 한국의 아낙네들은 위 설명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겠지만, 서양인들에게는 이해하기가 아주 어러운 방법이다. 위의 밥짓는 방법 부터가 서양인의 주식인 밀을 이용한 빵 만드는 방법과도 비교해보았을 때에 상당히 예리한 감각적 능력을 필요로 함을 알 수 있다. 물론 지금시대에야 전기밥솥이 대부분의 밥짓기를 대행하고 있는 시대여서 전통적인 밥짓기 방법은 거의 사라졌지만, 빵을 만드는 과정보다는 확실히 여러번 손이 가고 감각적인 눈썰미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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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잘 지어진 밥을 먹을때에는 갓 지어진 따뜻한 상태로 밥을 먹어야 그 맛을 최고로 느껴볼 수 있음이니, 빵을 만들어 놓고서 두고 두고 오랫동안 먹는 것과는 또 다른 맛이라고 할 수 있겠다.

쌀이 거둬져서 우리의 입으로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을 한 번 살펴보자. 겨울동안 얼어있던 논에 봄이 오고 녹기 시작하면 땅을 일구고 거름을 주어서 기름지게 만들고, 모를 심어서 농사를 시작하게 되면 봄과 가을까지 벼가 자라나서 수확을 할 때까지 농부가 하루도 쉬임없이 물길을 내어주고 병해충을 막아내며, 가물거나 홍수가 나거나 하지 않을까 노심초사 논을 바라보면서 정성을 들이게 되니, 농사짓는 것들 중에서 이처럼 농부의 애틋한 정성과 사랑을 받는 것도 없을 정도이다.

더구나 거의 봄부터 시작하여 가을녁까지, 일년 농사의 한 사이클이 시작되고 끝남을 알려주는 상징적인 대표자이기도 하다. 그렇게 정성을 들여서 만들어진 벼를 추스려서, 도정을 하여 껍질을 까고 포장을 하여 일반 소비자인 우리의 주방까지 오기까지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의 정성이 스며들어 있음이니, 쌀에는 이토록 많은 감사드려야할 기운이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우리의 주방까지도 들어온 쌀은, 여러번의 깨끗한 세척과정을 거친 후에 밥솥에 들어가서 은근한 열기속에서 익혀지면서 드디어 밥이 완성되어지고 그것이 공기 한 그릇 안에 담겨져서 우리 밥상 위에 놓여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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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깃밥 한 그릇, 이것은 대자연의 햇빛과 물과 바람과 열기와 흙의 영양분의 모두 결합되어진 최상의 거룩한 에너지 덩어리이자, 농부가 일년동안 정성드렸던 그 거룩한 마음의 작용이 고스란히 묻어져 있는 것이며, 주방에서 밥을 지어주는 사람의 손길에서 나오는 정성의 에너지가 다시 한 번 더해져서 그 훈훈한 김을 모락모락 피워올리면서 내 앞에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일상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것들 중에서, 이토록 감사의 마음을 한 없이 담아내야 할 만한 것들 중에서, 공깃밥 한그릇 만한 것이 또 어디에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한국인들은 왜 "밥을 짓는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을까? 밥을 한다, 밥을 만들다 라는 표현도 사용하지만, 예로부터 밥을 짓는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던 것은, 밥을 아주 우러러 보면서 소중한 것으로 여기려는 애틋한 마음을 담아내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마치 집을 짓는다고 하면, 그 과정이 어렵고 난해하고도 고달픈 과정을 거치는 것처럼, 밥을 짓는 과정 역시도 그 만큼 쉽게 할 수 없는 아주 정성스러움이 담겨짐을 내포한다는 의미의 표현법이라고 생각이 되어지는 것이다.

현대에는 비속어로서 " 정말 밥 맛이야" 라는 말이 사용되어진다. 밥의 맛이라는 것은 너무 일반적이고 흔한 것이지만, 그 밥의 가장 거룩한 값어치를 너무 평이하게만 생각하는 것처럼, 마치 형편없는 것 보잘것 없는 것이지만, 매일매일 먹어야만 하는 지루함이라는 의미를 가진 비속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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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알고 보면, 공깃밥 한 그릇 안에는 대자연의 한 싸이클 동안의 모든 기운의 변화가 다 스며들어 있음이요. 밥을 지어주는 사람의 애틋한 마음도 투영되어져 있는 정성과 감사의 마음이 뭉쳐진 에너지임을 알기에,
또한 비록 남들은 '밥 맛"이라고 천대하는 말을 할려는지는 몰라도, 그 맛이 가장 소중한 "밥 맛"임을 이미 알기에, 나는 오늘도 공깃밥 한 그릇의 뚜껑을 열고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의 훈기를 향하여 그 안에 담겨진 모든 이들의 거룩한 정성에 대하여 감사의 축원을 올린다.

공깃밥 한 그릇은 거룩한 대자연의 풍성함이 오롯이 함축된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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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엽에 밥 짓는 법에 대한 상세한 레시피가 있었군요. 과학이 지금처럼 발달되지 못했던 시대의 선조들의 지혜를 보면 감탄할 때가 너무 많은 것 같네요.소통하고 싶은 이웃이라서 뉴비가 맞팔 신청합니다. 외화 벌어서 부자되고 싶은 dollarlove입니다.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사실 우리가 보편적으로 먹는 "흰 쌀 밥"은 그 자체로만은 맛이 없을 수 있지만, 또 그 "밥 맛" 이라는 밥이 없이 다른 산해진미가 있어도 우리는 그 때는 "밥 어디갔어" ? 찾을 테니 아이러니네요

2천~2천 500개의 쌀알이라는 내용이 참 신기하네요.
아무튼 짓건 만들건 마음이 담긴 우리들의 주식이 아닐까 합니다.

공기밥 한 그릇으로 작품을 쓰셨습니다. 어린 시절 시공에서 모시기 잡초 쳐내기 벼베기 타작하기 등등의 모든 과정을 어른들과 함께 하며 자란 터라 글을 읽으며 그 시절이 따올랐습니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님이 알쓸신잡에 나와서 밥 한 공기에 얽힌 역사에 대해 남겼던 짤막한 단상 또한 떠오르는 글입니다^^

공깃밥 한 그릇에 담긴 철학적인 의미를 듣는 시간이네요.. 감사합니다.

글을 참 재미있게 잘 풀어내시네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공깃밥 진정 정성을 들여야 하죠.. 그래서 만들다와 짓는다의 차이가 있다고 어디에선가 읽어본 기억이 나는군요
옛 어르신 아니 엄니가 그러셨죠 밥알을 남기면 저승가서 다 먹어야 한다 그렇게 말씀하셨죠 그건 아마도 농사짓는 분의 정성을 헛되게하지 말라는 말씀과 다르지 않았을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희 집사람은 남은 밥 모조리 버리더라구요..ㅋㅋㅋ

밥을 짓는다 라는 표현.. 이런 깊은 뜻이 있었네요
아무런 생각도 없이 사용했던 표현인데 많이 배우고 갑니다

뭐니뭐니 해도 밥은 남기지 말고 싹싹 다 먹어야죠~

공깃밥 한 그릇, 이것은 대자연의 햇빛과 물과 바람과 열기와 흙의 영양분의 모두 결합되어진 최상의 거룩한 에너지 덩어리

이부분 정말 마음에 듭니다 ㅠㅠ 친구들 맨날 공깃밥 보면 그걸 왜 먹냐고 하는데, 이 글을 꼭 보여줘야겠습니다~ 다들 감동할 것 같습니다.

글 잘 보고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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